이 바닥에서 어느덧 1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본래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평생 선명할 것만 같았던 기억도 조금씩 흐려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제자들이 여럿 있다. 그 제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제자들의 얼굴과 내게 남은 기억을 찬찬히 짚어본다. 어떤 아이는 여러 모로 탁월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고, 어떤 아이는 나를 힘들게 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때론 나와 함께 성장한 아이도 있고, 지금 모습이 자꾸만 궁금해져 함께 했던 기억을 더듬게 만드는 아이도 있다. 결국 아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크지 않고, 그 아이들과 내가 각각 쌓은 경험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어릴 때 나는, 너희를 사랑한단 선생님들의 말을 별로 믿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내겐 불량한 학생이었던 과거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열심히 벌 받는 중입니다'라는 나의 지난 글에 서술한 바 있다.) '사랑'이란 말이 다소 낯간지럽게 다가오기도 했고, 언제 봤다고 사랑까지? 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사가 된 후, 나는 비로소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하셨던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우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관심은 그저 그런 관심이 아닌, 아주 자세하고도 세심한 관심인데 이는 곧 '애정'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 했던가? 그러니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선생이라면 그들을 사랑하는 게 맞다.
교사가 되어 알게 된 여러 사실 중 하나.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들보다 더 예쁘고 귀여우면서 때론 더 짜증 난다(!). 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고, 돌아보면 고작 반 뽑기 결과로 맺어진 가벼운 인연이면서도 그렇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담임이 되면 결국 자기가 맡은 아이들을 더 사랑하게 되는 걸까? 우리 반 아이들이 다른 데에서 혼나고 오면 왠지 속이 상한단 선생님들을 보았다. 나는 다른 선생님이 우리 반 아이들을 훈계하실 때 오히려 더 크게 혼내주셨으면 좋겠던데. 아마도 사랑의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짐작해 볼 뿐이다. 그런 선생님들도, 나와 같은 선생님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인상 깊은 그 아이
그 해나는 6학년 담임이었다. 그 해 맡은 아이들은 유독 나를 좋아하고 잘 따랐기에, 서로 즐겁게 한 해를 보냈다. 모든 아이들이 나름의 이유로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유진이었다. (가명이다.) 유진이는 소위 '모범생'의 전형과 같은 여학생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얼굴도, 하는 행동마저도 예뻐서 인기가 많았다. 거기에 인성은 또 어떤지. 절대 나서는 성격은 아니지만 해야 할 말이 있을 땐, 얼굴을 붉히며 조곤조곤 자신의 주장을 밝힐 줄 아는 유진이는 정말 '엄.친.딸' 그 자체였다.
아이들도 그런 유진이를 익히 알고, 인정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유진이는 1학기에는 학급 회장, 2학기에는 학급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유진이는 무엇이든 대충 하는 법이 없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며 큰 눈을 빛내던 유진이의 얼굴과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유진이가 특히 '달리기'를 좋아했던 것도 기억한다. 심지어 유진이의 여동생 이름도 기억한다. 그 해 우리 반 아이들과 나의 관계는 꽤 좋은 편이었지만, 유진이는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좋아하고 잘 따랐던 몇몇의 학생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유진이와의 마지막이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진이가 졸업 즈음에 전학을 갔던가, 아니면 졸업을 마치고 다른 지역으로 중학교 진학을 했던가?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유진이가 썼던 글의 내용뿐이다. 아버지께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래서 함께 이사를 가야 한단 글. 아버지의 도전을 응원하고, 성공을 기원한단 유진이의 글에 나 역시 응원의 마음을 담은 답글을 남겼던 기억이 있다.
반가운 소식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바로 옆에 같은 이름의 중학교가 붙어 있는 구조라서 졸업을 시킨 아이들을 출퇴근길에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스승의 날은 물론, 하교 후에 문득 나를 보러 왔다며 종종 나를 찾아오는 졸업생들이 있어 품을 떠나보낸 아이들의 소식도 간간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 버린 유진이의 소식은 들을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문득 유진이가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저 유진이에요.' 하는 인사로 시작해서 자기를 잘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내게 꼭 전하고 싶은 기쁜 소식이 있어 연락드렸단 내용이 이어졌다. 기쁜 소식의 정체는, 6학년 때부터 이루고 싶은 꿈이었던 선생님이 되기 위해 그간 열심히 노력해 왔고 결국 교대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이가 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는 건, 그 사이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단 뜻이기도 했다. 6년 만에 소식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기쁜데, 심지어 노력의 결실을 맺었단 소식까지 전해주는 유진이가 참 대견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유진이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며, 그간 소식이 궁금했더라는 말을 더했다. 그러자 유진이가 내게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유진이가 보낸 사진은 다름 아닌 6학년 때 썼던 공책의 한 페이지를 찍은 것이었다. 학생 인권 침해,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로 일기 쓰기 지도는 하기 어렵고, 그래도 글쓰기 지도는 하고 싶고 해서 나름 꾀를 낸 것이 '주제가 있는 글쓰기' 지도였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나름 매력적이고, 재밌고, 엉뚱한 주제를 주며 일주일에 한 편씩 꼭 글을 쓰도록 지도했었는데, 유진이는 그 공책을 아직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유진이가 보낸 사진을 보니, 그날 내가 내 준 주제는 '꼭 이루고 싶은 나만의 꿈이 있다면?' 이었다. 유진이의 글을 보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진이는, 원래 자신의 꿈은 의사였는데 6학년이 되고 담임 선생님인 내가 너무 좋아서 초등학교 교사를 꿈꾸게 되었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할 것이란 다짐들과 함께,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면 꼭! 선생님께 바로 연락을 드려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심지어 나는 그런 유진이에게 '성실하고, 끈기 있는 유진이라면 분명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며 유진이를 응원하겠단 내용의 답글을 써 줬었다.
유진이는 그간 꿈을 이루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며, 선생님이 축하해 줘서 너무 기쁘고 감사하단 메시지를 보냈다. 6학년 때 자신을 응원해 줬던 것도 감사하고, 선생님 덕분에 꿈을 꾸고 이룰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하다며 즐거워했다. 나는 곧 교대생이 되어 같은 길을 걸을 후배이자 제자인 유진이에게 방학 중 꼭 한 번 만나서 밥을 먹잔 약속을 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유진이의 성취는 교사로서 내가 느낄 수 있는 최고 수준의보람이기도 했지만, 나는 왠지 모를 안타까운 느낌에 심란했다. 분명 축하할 일인데 그랬다. 안타까움의 이유는 찾지 못하고, 나는 유진이와의 대화 내용을 우리 반 아이들(당시 3학년)에게 소개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의 중요성을 지도했다. 유진이의 성공 이야기를 듣는 우리 반 꼬맹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기쁜데 안타까운 마음의 정체
유진이의 성취가 꽤나 신기하여, 나는 엄마와도 유진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도 유진이가 참 대단하다며 교사 딸을 두니 별 얘기를 다 전해 듣는다고 신기해했다. 그런데 엄마가 우스갯소리처럼 '글샘아 그런데 그 학생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렇게 노력해서 이룰 힘이 있다면, 사실 처음 꿈이었던 의사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의대에 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했다.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가 느꼈던 안타까움의 정체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건 일종의 미안함이었다.
내가 뭐라고. 고작 6학년 어린이에게 영향을 끼쳐 한 인생의 방향을 뒤바꾸고 말았나. 물론 유진이에게 교사가 되란 말을 한 적이 없고, 그런 뜻을 비친 적도 없지만 내가 나도 모르게 발휘하는 '영향력'의 무게를 새삼 실감하니 갑자기 큰 부담감이 들었다. 엄마 말처럼 유진이가 처음 꿈꾸었던 의사를 계속해서 꿈꿨다면 어땠을까.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유진이가 내가 아닌 다른 가능성을 만나 다른 미래를 꿈꾸게 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어쩌면 더 나은 미래와 가까울 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이제는 나의 일을 사랑하고, 그 중에서도 수많은 성장의 순간을 목격하는 것을 특히 좋아하지만 비유하자면 이 일이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 위에 떠 있는 '백조' 같은 사람들일 테다. 밖에서 보면 그저 유유히, 고고히 떠 있을 뿐이지만 물아래에서 열심히 발을 흔들며 헤엄치고 있는. 거센 물길에 휩싸이는 것도, 때론 잔잔한 물결에 흘러가는 것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일뿐.어떤 학교에서 어떤 아이들을 만나 어떤 모양과 색으로 한 해를 만들고 그려나갈지 알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심지어 그런 일을 매 년 새로이 시작해야만 하니, 말 그대로 '한 해 살이'를 수십 번 반복하는 게 우리의 삶이다.
나는 기쁘고 보람도 있지만 때론 힘들고 벅차기도 한 이 길을, 사랑하는 나의 제자가 걷게 될 거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거기에 날이 갈수록 가르침을 업으로 삼기가 힘들어지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나를 따라 선생을 하겠다는 제자가 겪게 될 온갖 어려움과 고난이 온통 내 탓인 것 같아 더욱 미안했던 것이다.
내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응원
유진이의 연락 이후, 나는 여러 날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며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유진이가 교사의 꿈을 꾸는 데에는 분명 나의 영향이 작용했지만, 오랜 시간 교사의 꿈을 버리지 못한 데에는 이후에 만난 여러 선생님들의 작용도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이 일은 여전히 일종의 '소명감'을 요구하는 일인데, 오랜 시간 이 일을 꿈으로 삼고 노력해 온 유진이라면 분명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란 확신도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라 쓰고 공상이라 읽는다.)을 잘하는 나는 요즘, '우리 교실 속 어린이들이 선생님이 좋아서 선생님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상상한다. 7년 전의 내가 유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무작정 응원을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 물론 교사를 꿈꾸는 아이가 누구인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내가 갖고 있는 이 '하찮지만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어떻게 잘 발휘해야 하나, 고민한다.
교대에서의 첫 학기를 마치고, 이제 좀 대학 생활에 감을 잡았을 유진이에게 조만간 안부 인사를 전해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유진이가 꿈꾸었던 대학 생활과 교대에서의 생활이 크게 다르지 않길, 교대에 가서 꿈과 더욱 가까워졌다 느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길 바라본다. 교사를 꿈꾸는 유진이에게 내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은 우리 교실 속 아이들에게 열중하는 것,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더 사랑하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유진이가 내 옆 반에서 동료로 함께 근무하며 '역시, 선생님 따라 교사하길 잘했어요.' 할 수 있도록 더욱 떳떳하고 따뜻한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