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향인이다. (MBTI에 관한 나의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정식으로 MBTI 검사를 해도, 간이 검사를 여러 번 해도 절대 바뀌지 않는 나의 습성. 내가 내향인이란 사실은 검사할 필요조차 없이 선명하다. 어릴 때는 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엄마를 많이 걱정케 했다. 내겐 친구가 많이 필요치 않은데 친구 없는 나를 걱정하는 엄마 때문에 나도 가끔은 나를 걱정했다. 그런 경험이 있어 나는 교우 관계로 상담을 요청하는 학부모를 마주할 때, 아이의 성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친구를 원하는데 교우관계가 좁은 경우는 걱정해야 할 상황이 맞지만, 아이가 원치 않는데 괜히 나서서 교우관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내가 자란 곳은 어느 한적한 시골 동네. 폐쇄적이고 인구의 이동이 많지 않은 시골의 특성상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거의 비슷한 아이들과 쭉 함께 생활해야 했다. 단짝 친구를 찾거나 사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음에도 나는 친구를 많이 만들지 못했다.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며 먼저 다가와주는 고마운 친구들도 있었지만 내가 그러질 못했다.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빼앗기고, 금세 피곤해지는 나의 성향 탓이었다. 내게 다가와 준 친구들에게 고마우면서 동시에 미안하고, 더는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 이 거대한 아이러니. 사람도 많지 않은 시골, 나와 같은 내향인을 많이 보지 못한 탓에 나는 내가 '희귀종'이 아닐까 종종 고민했다. 내가 내향인이란 사실을 빨리 알았더라면 조금 더 좋았을 걸.
그럼에도 내향인으로 태어나 내향인으로 자란 사실이 나는 만족스럽다. 내향인이라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나를 더욱 깊이 이해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외향인을 부러워한 적도 많았고 기본적으로 외향성을 띈 초등학생들과 주로 생활하고 있지만, 세상엔 외향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단 측면에서도,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학생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단 측면에서도 내가 내향인이란 사실은 교사로서 나의 장점이다.
도대체 나를 보고 있는 눈동자가 몇 개야?
어릴 적 내가 꿈꾸었던 직업들은 하나같이 내향인에게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작가 혹은 소설가, 번역가, 일러스트레이터, 홀로 무언가 해 내는 직장인 혹은 프리랜서 등등. 교사는 한 번도 나의 꿈이었던 적이 없다. 어쩌다 교사가 되어(그 과정은 '교직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나의 글과 동명의 브런치북에 상세히 서술했던 적이 있다.) 학교에 출근했던 첫날, 나를 가장 긴장케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아이들의 시선이었다.
여러 각오와 준비를 마치고 교단에 섰음에도 나는 순수하고, 호기심 넘치고, 투명한 아이들의 시선에 얼어붙었다. 그 탓일까, 내게 교직 첫날의 기억은 없다. 아이들의 시선이 꽂히는 곳마다 터질 듯 붉게 달아올라 어쩔 줄 몰랐던 기억뿐.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즐기지도, 원치도 않았기에 많은 아이들 앞에 서야만 하는 나의 직업이 내겐 많이 난감하고 어려웠다. 고작 아이들이었는데도 그 앞에만 서면 나는 혼자 잔뜩 빨갛고 딱딱하게 긴장해 거의 자색고구마가 되어버렸다. 긴장하면 말은 또 얼마나 꼬이는지. 나는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거나, 너무 더듬으며 말했다. 내가 그렇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초보라면 모두 그렇듯, 초보 교사인 나 역시 참 많이 서툴렀다.
나는 언제부터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나?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정의하기 어렵지만, 아이들 앞에서 더 능숙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수업 중 내가 볼 수 있는 곳에 '말 너무 빠르지 않게! 천천히!'라고 쓴 포스트잇을 붙여두기도 했고, 아이들이 활동을 하는 중에 물을 마시거나 마음을 가라앉히며 계속 마인드컨트롤을 했던 기억도 있다. 수업 단계나 활동 별로 예상한 시간과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비교하며 나름대로 속도 조절을 하기도 했다.
발전한 내향인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했던가? 아이들 앞에서 바짝 얼어붙곤 하던 내가 이제는 꽤나 뻔뻔하게 외향인 연기를 한다. 타고난 코미디언인 것처럼 아이들의 배꼽을 빼놓을 듯이 웃기기도, 때론 심각한 말과 표정으로 겁을 주기도 하며 원맨쇼를 거뜬히 해낸다. 바로 얼마 전, 온 책 읽기 수업(한 권의 책을 모두 함께 읽으며 생각을 나누고, 책을 깊이 읽는 수업 방식)을 할 때도 그랬다. 책을 소리 내어 읽히자니 아이들마다 목소리 크기나 읽기 유창성이 들쭉날쭉한 관계로, 원활한 수업을 위해 목이 아픔에도 내가 책을 읽어주며 수업을 진행한다.
우리가 2학기에 함께 읽고 있는 책에는 다른 성격을 가진 여러 어린이가 등장하고, 그날 읽을 챕터에는 심지어 어린이들의 부모와 가족들이 함께 등장해 나는 홀로 거의 1인 10역을 수행해야 했다. 그날의 백미는 추가 등장인물들의 서로 다른 성격과 특성을 살리는 데에 있었다. 우악스러운 아빠, 깍쟁이 같은 엄마, 사투리 쓰는 할머니, 얼음처럼 차가운 또 다른 엄마 등등.
나는 불꽃같은 연기력(?)을 발휘하며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우악스러운 아빠 역할을 할 때는 복식호흡의 힘을 빌어 굵은 남자 목소리를 냈고, 사투리 쓰는 할머니 역할을 할 때는 나도 몰랐던 사투리 재능을 발견하여 유창하게 전라도 네이티브 사투리(!)를 구사했다. 깍쟁이 엄마일 땐 가까운 곳에 앉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능청스럽게 엄마 연기를 했고(이 대목에서 아이들이 웃다가 거의 뒤집어졌고, 내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얼음처럼 차가운 엄마일 땐 정말 무서운 엄마의 영혼을 소환해 내어 아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선생님, 진짜 우리 엄마 같아요! 우리 엄마 화났을 때랑 똑같아요!)
아이들은 나의 메소드 연기에 감탄하며 선생님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게 책을 읽는다고 난리였다. 아이들의 칭찬에 뿌듯한 것도 잠시, 마침 교실 밖을 지나가던 동료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쳤는데 물밀듯 밀려오는 커다란 부끄러움. 혹시 내 불꽃같은 발연기(아이들만 볼 땐 메소드 연기였지만, 동료 선생님이 봤다고 생각하니 급 발연기가 되었다.)를 보셨을까, 정글샘 그렇게 안 봤는데 웃기는 사람이었다며 재밌게 여기진 않으셨을까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었다. 정작 동료 선생님은 우리 교실 속 일에 관심도 없었을 텐데, 선생님 덕분에 나는 내가 외향인의 탈을 쓰고 애도 쓰는 내향인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극내향인의 적응기: 어쨌거나 해피 엔딩
그 작은 소동이 있고 난 후에 문득 나는 궁금해진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나는 이토록 발전한 내향인이 된 걸까?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 서거나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주목을 받으면 얼굴은 물론, 귀까지 빨개지는 나의 특성은 여전하다. 교직원 회의에 어떤 목적을 갖고 선생님들 앞에 설 때는 마음의 준비를 한 이후라 괜찮지만, 내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사건을 마주하면 어김없이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광대 역할을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수행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이고 어떤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교사의 의무는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오랜 고민 끝에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들' 앞이기에 내가 마음 편히 나대며 웃길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냉정하지만, 동시에 가장 포용력 있는 관객이다. 그러한 아이들의 특성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한껏 뻔뻔하게 아이들 앞에서 생쇼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향인이지만 교사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떨리면 떨리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걱정하지 말고 무엇이든 그냥 해 보기'라고 답하고 싶다.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무엇이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 순간이 온다. 그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는 겪겠지만, 시행착오의 과정을 아이들과 고스란히 겪는 것도 긴 교직생활에 분명 나이테와 같이 기쁜 기억 혹은 소중한 상처로 남을 테니 괜찮다.
극내향교사인 나의 아이들 한정 생라이브쇼(?)는, 그러므로 오늘도 on-air 중이다. 때론 연극배우가 되었다가, 때론 가수도 되었다가, 미술 선생님이었다가 심지어 얼렁뚱땅 악기 전문가(※주의: 피아노, 리코더, 장구 한정, 아이들 눈높이에서만(!) 전문가다.)가 되기도 하는 나의 바쁜 하루가 싫지만은 않다. 잘 못 해도 잘하는 척, 대단한 척하면 언제든 선생님 최고라며 엄지를 날려주고 박수도 쳐 주는 아이들이 있기에 나는 더욱 뻔뻔할 수 있다.
진심이 담긴 세상 가장 따뜻한 고백
얼마 전, 우리 반 어린이로부터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세상 가장 큰 칭찬을 받았다.미술 시간에 종이로 꽃 접기를 알려주었더니 작은 꽃에 글씨까지 써 와서는 선물이라며 내게 꽃을 내미는데, 내가 느낀 감동보다 더 큰 기쁨이 어린이의 얼굴에 가득 차 있다. 이토록 꾸밈없고 온전한 애정 표현이 또 있을까? 그러니 내가 나의 일을 사랑하지 않을 방도가 있을까? 그날 나는 어린이가 선물한 꽃을 클립에 끼워 하루 종일 가슴에 달고 다녔다. 웃기고 뻔뻔하기 이를 데가 없는 교사래도 좋다. 내게 예상치 못한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고마운 어린이들 앞에서 더욱 뻔뻔하기 위해 극내향인 교사는 오늘도 용기를 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