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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DG 포스트잇 Jun 29. 2024

[그남자의 지난날-1]자각의 시발점

이사하다 그리고 시골로 보내지다



 손발이 시리다가 못해 아려오는 겨울이었다. 한국 나이로 11살이었던, 그즈음, 나는 의문 투성이의 일들로 혼란스러웠다. 부모님께서 왜 이렇게 자주 싸우시는지 몰랐고, 어머니는 왜 저렇게 하루종일 우시는지 몰랐다.


 수없이 오르내리던 목련나무가 있던 정원이 딸린 우리 집엔, 우리 식구 말고도 세 들어 사는 두 집이 있었다. 나는 양쪽 집을 불쑥불쑥 들어가곤 했는데, 아주머니들께서는 어찌나 나에게 잘해줬던지, 이 집 저 집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철없는 주인집 아들은, 이제 막 결혼한 신혼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들어가서 이것저것 먹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나오기도 했다.


  부족한 것 모르고 누리던 시간들을 보냈고 있었던 나의 국민학교 4학년 시절이었다. 두 달여 전부터 부모님들께서 다투신다 싶더니,  그 집에서 우리는 10평 조금 넘는 연립주택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방 2칸밖에 없는데,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누나,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좁고 또 좁았다. 식구들보다 공간을 더 차지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큰집에서 이사해서 버려야 할 많은 짐들을 작은 방에 차곡차곡 쌓아두셨다.  그 당시의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다시 회복해서 큰 집으로 이사 갈 것이라며, 이전 집에서의 가구와 각종 집기류를 버리지 못하게 하셨다. 심지어, 그 뒤로 한 번도 열지 못했던 누나의 피아노도 작은 방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나는 피아노 다리 사이에 몸을 구겨 넣은 채로 잘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좁은 곳으로 이사를 온 걸까? 의문을 풀지도 못하며 이틀을 보냈는데, 엄마의 사촌 뻘인 외삼촌이 나를 데리러 시골에서부터 왔다. 시골에 종종 가서 놀았지만, 아직 방학을 하지 않았는데, 시골로 간다는 게 이상했지만, 외가로 외삼촌의 손을 잡고 가게 되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도착한 읍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려서, 구불구불 울퉁불퉁 시골길을 달려, 어느 삼거리 앞에 내렸다. 이 길을 따라 보이는 산자락에는 열다섯 집 가까운 집락이 있었고, 거기에 외가 쪽 친척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조그만 구멍가게 하나 없는 이 산자락에서 두 달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왔냐? 거 들어가서 진성이랑 밥 묵어라~ 쯧쯧, 어린 게 불쌍해서 어쩌나?"


 뭐가 불쌍하다는 것일까? 우리 집이 말만 방 두 칸이지 짐이 가득 쌓여서 두 다리 뻗을 곳도 없는 곳으로 이사한 것을 아시는 걸까? 어머니의 숙모이신 외할머니께서 연신 굽은 허리를 펴지도 못하신 채, 장독에서 뭔가를 꺼내시며 혀를 차신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이 산골에는 필요한 마을어귀 가로등과 각 집의 마당과 마당을 가로질러야 쓸 수 있는 야외화장실의 불만 켜기로 약속되어 있는 듯했다. 밤은 그야말로 눈을 떠도 감은 듯 어둡기만 하였고, 들려오는 산짐승 소리는 이 밤의 적막을 더욱 짙게 만들며 나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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