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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 Jul 27. 2024

02. 고백

내가 그에게 고백을 하다.


2. 고백  

             


.

.

.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40분을 일찍 나왔지만 만나기로 한 건물이 너무나도 익숙지 못한 곳이라 올라가기까지 뺑 돌며 시간을 허비하였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지만. 내 계획과는 일이 다르게 돌아갔다. 그가 늦게 올 것 같아 먼저 기다리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에 방긋방긋 웃었던 나지만 그의 카톡은 나의 정신을 퍽 치고 갔다.     


[나 먼저 와있어요.]

[??]     


당황스러운 카톡 답장을 보내고선 헐레벌떡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걸어 올라갔다. 혹시나 한참 동안 기다렸을까 노심초사했던 나는 숨을 가쁘게 쉬며 올라가 그를 찾아대었다. 이상하게 안 보이던 그는 에스컬레이터 앞 쪽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조차 나는 혼자 보며 웃고 있었다. 참 정말 나는 그를 미치도록 좋아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 님!”

왔어요?”     


왔냐고 반겨주는 그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과연 내가 해맑게 웃었던 건 맞았을까. 좋다고 환하게 표현을 해도 되는 건지 한참을 고민했던 나였는데 과연 그때 내 표정은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 어색한 네모입으로 웃고 있는 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뭐 안 마셔도 돼요?”

“어... 네. 뭐 드실래요?”

뭐라도 뭐 먹어요.”     


뭘 먹기보단 지금 당장 그와 있다는 사실이 내겐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뭐가 들어가기엔 내 사랑니가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았었다. 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겠다고 헀었다. 고민하던 나는 똑같이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무언가를 마시는 건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서 받나?”   

  

멀뚱멀뚱 어색하게 둘이 서서는 픽업대 앞에서 서성였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 나오는지 커피를 직접 만들지 않는 이상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일인데 너무 안 나와 식은땀만 줄줄 흘릴 뿐이었다. 등줄기 가운데로 타고 내려가는 땀이 느껴질 수 있을 정도였다. 알림톡에 뜬 문자를 받고서야 우리 둘은 음료를 들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요즘은 다 무인이네.”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을 캐치해서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런 식으로라도 아이스브레이킹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나였을까? 


“너무... 일찍 온 거 같은데요.”     


표에 쓰여 있는 관으로 가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어느 노부부만 가운데 좌석에 덩그러니 앉아계시는 것뿐. 나는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이 어색함 가운데 하필이면 아직도 영화할 시간까지 10분이나 남았다니. 무슨 말을 해야 덜 어색할지 좌석으로 올라가며 머리를 굴리는 나였다. 자리에 앉으며 나는 아무렇지 않게 오른쪽에 커피를 두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였는데, 오빠는 오른쪽에 커피를 두는 내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손을 잡거나 그러려면 커피를 왼쪽에 두는 게 맞는데 그저 아무 생각 없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였던 것이었다.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다.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고 감에 나는 한아름 안고 있던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이어지는 영화는 둘 사이에 웃음소리가 오고 갈 수 있게 하였다.     


아오 진짜.’     


육성으로 아픔을 내뱉을 뻔한 나였다. 사랑니 자식은 눈치 없게 꼭 이럴 때 아픔을 토로하였다. 입술을 앙다물며 나는 가방에서 약을 찾아 조용히 입으로 넣었다. 절대 소개팅이나 남자를 만날 때 사랑니를 빼지 말 것. 모든 여성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팁이었다.     


모던 하우스에 잠깐 가도 되나요?”     


영화가 끝나고 그가 잠시 모던 하우스에 들리자고 이야기를 건네었다. 뭐든 오케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고 나서 밥을 먹자 하는 그의 이야기에 웃으며 그와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밑으로 내려갔다.

생각보다 우리는 꽤 여러 곳을 거쳐 모던하우스에 도착하여 그가 보려고 한 물건을 보며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건 너무 작을 거 같죠?”

?”     


아니 왜 자기네 집 식기를 나한테 묻는 건지. 순간 당황하였지만 금세 또 열심히 골라주는 내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도 다중인격스럽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그가 원하는 스타일의 식기는 없었지만 열심히 의견을 통합하여 고른 그는 구매를 하였고 우리는 천천히 내려가며 여러 곳을 구경하였다. 그러다가 멈춘 곳은 남성복 매장이었다.     


셔츠도 사야 하는데.”

, 결혼식 때문에요?”     


곧 같은 팀에 속해있는 한 명의 결혼식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때 입을 옷을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하긴 나도 고민했는데. 내 결혼식도 아닌데 말이지. 그러다가 그가 옷을 고르며 나도 함께 그가 입음 괜찮을 것만 같은 옷들을 보고 있었다. 그의 옷을 고르는 모습이 매장 속 거울에 비쳤다. 순간 당황하여 옷걸이를 걸며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그만 가죠. 생각보다 비싸네.”

원래 셔츠가 비싸죠.”     


아무렇지 않은 듯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나는 그를 따라 매장을 나와 밥을 먹을 장소를 수색대 마냥 수색하였다. 딱히 먹을 곳도 없었고, 사실 나는 별로 생각이 없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유일하게 생각 난 곳이 저번에 동기와 함께 먹었던 돈가스 집이었는데 그곳에 가야겠단 생각 하나로 건너편에 있는 갤러리아로 걸음을 옮기었다.     


밥을 다 먹고 우리는 한참을 백화점에서 서성였다. 사실 나도 왜 서성였는지 모르겠지만(살 것도 없었는데 그냥 그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열정적으로 아이쇼핑을 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백화점도 너무 걷다 보니 지쳐 내려와 우리는 호수공원으로 통하는 길로 저절로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사실 저절로라기보다는 나의 계획의 하나였는데. 그 남자 꼬시기 대작전 프로젝트엔 다 짜인 루트였던 것이었다.


호수공원을 걷는 우리 사이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커플, 부부, 친구 사이 같은 썸관계... 등등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가까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우리는 그 호수공원 주변을 한참 동안이나 걸었다.     

덥지도 , 춥지도 않은 그 호숫가를 돌며 여러 생각이 오갔다. 과연 나는 오늘 고백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에게 답을 들을 수 있을까.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쿵쿵거리며 떨어질 것만 같은 심정을 아는가?

스마트 워치를 끼고 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 찰나였다. 

    

우리 카페 갈까요?”

좋아요.”  

   

여러 이야기를 하며 오가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야외에 테라스처럼 되어있는 곳도 많았고 그곳엔 술을 마시는 사람, 커피를 마시는 사람,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그리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우리.     


너무 정신없는 곳 말고 좀 사람 없는 곳으로 갈...”     


라고 말을 멈추다가 사람이 유난히 없어 보이는 모 프랜차이즈 카페가 보였다. 분명 안에는 사람이 바글바글 해 보였는데 오히려 테라스에 사람이 없었다.     


저기로 갈까 봐요.”     


내가 그곳을 가리키며 우리는 그 카페로 들어갔다. , 이래서 사람이 없나 싶었던 게 그 안은 푹푹- 찌는 더운 공기가 가득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운 느낌에 나는 밖에 나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었다. 그도 이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앉아있는 거지?”

“그러게요... 뭐 드실래요?”     


그는 주변을 보다가 나의 물음에 포스기를 살펴보다가 결정을 못하는 것이 보여 나는 카모마일 차를 추천하였다. 그는 내게 잠을 푹- 자지 못한다고 중간중간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 그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때부터 나는 그를 좋아했던 것일까?     


요즘 잠 못 잔다면서요. 그럴 땐 카모마일이 좋죠.

그래요?”

, 카모마일이 잠 잘 온다고 했었어요.     


그는 내 말을 듣고선 약간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선 카모마일 아이스로 선택을 하였다. 나는 히비스커스를 선택하고선 우리 둘은 밖으로 나갔다.      


자리를 잡고선 앉아서 둘은 한참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각자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는 솔직히 알 수 없었지만 내 머릿속엔 언제 내 마음을 이야기하지?’였다. 그리고 그가 언제 자신의 마음을 오픈할지도 미지수여서 답답함도 존재하였다. 내가 이렇게나 고민을 하며 이야기를 안 한다는 것은 참으로도 놀랄 상황이긴 했다. 이렇게 신중하게 고민을 한다는 것부터가 굉장히 내가 그를 조심히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부터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머릿속에 온통 그 이야기를 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너무 긴장해서일까. 아님 떨려서일까. 평소에 떨리지도 않던 목소리까지 뭔가 떨리는 느낌이었다. 정말 이날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그는 기억이 날까?


멍하니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 이럼 안되는데. 혼자 마음속에서 외친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괜히 여기서 연기라도 잘못했다간 뭔가 준비라도 한 사람처럼 보일라. 그러기엔 생각해 보면 참 뭔가 뚝딱뚝닥댔던거 같긴 하다.     


왜요? 갈까요?”     


가고 싶지 않은데요. 저는 아직 할 말이 남았다고요!라고 말하는 내 눈빛을 보고 참으로 그가 갈 수 있었을까. 그는 내 얼굴을 한번 보고선 기지개를 켰다.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 나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리신다면 제발 신이시여!     


아니 계속 앉아있으니 좀이 쑤시네. 좀 움직일까요?”

아 그죠, 그래요. 저도 좀 오래 앉아있으니까 그렇네요.”     


나 연기 좀 하는데? 혼자 뿌듯해하며 자리를 정리하고선 나는 또 그다음 계획으로 넘어가기로 하였다. 이제 진짜, 그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할 때가 온 듯하다고 생각이 드는 찰나 그와 호수공원을 다시 걸으며 나는 꽃내음은 기분이 참으로도 좋아지는 향이었다.     


, 향 좋다.”     


때마침 향이 좋다고 하는 그를 한번 보고선 살짝 향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워낙에 향수를 좋아하고 모으는 걸 좋아하던 나는 혹시나 향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싶어서 물어보고 싶기도 하였고 과연 그는 어떠한 향을 가장 좋아하는지 궁금함이 들었다.     


향 좋아하세요?”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이런 꽃향기는 좋더라고요.”

, 정말요? 저는 향수 되게 좋아해서요!”     


아마 이때 나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때 안광이 돈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이날 한순간도 안광이 없던 적이 없었을 테지만. 

그러나 내게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지금 그와 나의 이 순간 모든 이야기들, 그저 스쳐가는 이야기, 모두 좋았지만 그와 좋아하는 것들을 나누는 지금 이 순간이었다.       


아 향수 좋아해요? 그럼 약간 비싼 향수 그런 거 모아요?”

저 향수 콜렉터 수준이에요.”    

 

라고 하기엔 그들에 비해 적긴 하지만요..라고 말을 하려다가 말을 아꼈다.      

향을 좋아하는 이유를 그가 되물었다. 그러게요, 제가 향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속으로 생각하다가 서슴없이 나온 답을 말하였다.     


향으로 사람을 느끼고 기억해서요.”

“아하... 근데 그 살 내음은 아마 못 이길걸요.”

맞아요, 근데 같은 향수라도 사람마다 느껴지는 게 다 달라요. 그래서 신기하더라고요.”     


나의 향수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호숫가의 절반 정도 또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내게 책을 하나 추천하였다.     


그 책 중에 향수라는 책이 있는데.”

?”     


정확하게 그가 말하는 책 이름은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그가 책에 대해 소개를 해주며 말을 하니 이상하게 그렇게 읽고 싶지 않던 책이 읽고 싶어 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알고 추천하는 책이라. 이상하게 구미가 당기는 그런 느낌. 

    

, 흥미롭다. 재밌겠는데요?”     


약간은 로봇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로 흥미롭게 들렸었다. 나중에 읽어보겠다고 답을 하였다.

    

우리 잠깐 앉을까요. 우리 진짜 많이 걸은 거 같아.”

그러게요, 어느새 또 이렇게 왔네.”     


하하-웃으며 우리는 벤치에 앉았다. 사실 우리 둘 다 벌레를 굉장히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데 그때 어떻게 그 난간에 매달려있는 거미를 보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거기서 한 이야기들은 지금도 조금씩 생각이 문득문득 나긴 한다.      

구체적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운전하는 스타일부터 어쩌다 지금 차가 내 차가 되었는지, 왜 운전을 그렇게 하는지...(사실 변명일 뿐)     

그리고 그의 과거 이야기들. 차를 처음 뽑아서 친구와 당일로 바다를 갔다 왔던 이야기. 게임을 했다가 너무 빠져서 위험할 뻔했단 이야기. 그 게임이 와우인데 혹시 아냐고 묻는 그의 모습. 모든 게 다 아직 생생하게 내 눈앞에 그려진다.     


그날의 온도와 그의 뒤로 그려지는 광교의 배경. 그리고 그의 얼굴. 세세히 하나씩 기억이 난다. 그가 입고 있던 청자켓. 그리고 나만 알 수 있던 바람에 흩날리는 그의 향기와 살 내음.     

나는 그를 느껴보고 있었다. 내 앞에 앉아서 진지하게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눈을, 그리고 쫑긋거리는 입술을.     


우리 이제 그만 집에 갈까요?”

“... 어, . 그럴까 봐요.”     


그가 뭔가 고백을 할 것만 같았는데, 날 좋아하냐고 혹시 그런 거냐고 물어볼 것만 같았는데. 그는 정녕 입 밖으로 고백의 기역자도 꺼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그는 알았을까 내 두 손에 땀이 가득 찼었다는 것을.      


그와 왔던 길을 다시 걸어 올라가며 나는 머릿속에서 대사를 짜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전달할지, 어떻게 해야 진짜 내가 그를 좋아한다고 생각할지. 벌써 호숫가에서 올라가는 오르막까지 도착했을 때 나는 정말 급하게 그에게 말을 꺼내었다.     


“... 저”    


      

-     

우리가 이렇게까지 오게 된 사건의 이야기다. 여느떄와 다름없는 회식 날이었다. 또 어느 날과 다름없이 3시 좀 넘어서 시작한 회식은 무르익다 못해 2차까지 갔다가 겨우겨우 정리가 된 상태로 친한 사람들끼리 나오게 되었다. 뭐 이걸 설명하기 전에 나의 마음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해보자면 난 사실 그에게 예전부터 호감이 생기곤 있었다. 은근히 궁금했고, 그가 은근히 신경 쓰였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얼굴을 보면 살짝씩 피하게 되었었고 그게 어떤 마음에서 기인한 행동인지 사실 알 수가 없었다.     


그날 회식이 애매하게 끝나고, 그는 그날따라 유난히 술에 취해 있긴 하였다. 뭐가 그렇게 속상했던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와 좀 더 시간을 보내주고 싶었었다. 그와 함께 있어주겠다고 했을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뭐 사실 그때는 진짜 그가 너무 힘들어 보이고,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거 같아 그래주고 싶어 했던 거 같다.      


, 보통 사람들은 안 그러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오래전부터 그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던 거였을지도 모른다.     


그와 우리 집 주변을 거닐며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그의 속사정을 들으며 나는 그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참 힘들었겠다. 그런 생각뿐. 정말 힘들었겠구나라는 눈빛이었지. 그 눈빛은 그를 동정할 생각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나도 물론 나의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겪고 있는 이야기들.

물론 차차, 나의 이야기가 점점 나오겠지만 나는 그때 당시 정말, 나 스스로가 너무 우울하고 나 스스로를 사랑조차 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말하다가도 중간중간 울컥,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그가 멈춰 서서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선 내뱉은 한마디.     


머리 쓰다듬어도 돼요?”

? 미쳤,”     


아차차. 말조심.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안된다고 하였다. 근데 왜 이렇게 심장은 뛰는지 진짜 나 스스로가 미쳤다고 생각을 하며 그와 다시 함께 길을 걸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다리가 골절되어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재활을 제대받지 않아 지금도 고생 중이었는데. 오래 걸으면 유난히 발목이 그렇게도 아팠다. 내가 발목을 잡으며 아파하니 그가 갑자기 쭈그려 앉으며 당황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업어줄까?”

“아!!! 진짜 얼른 일어나요!!!”     


새벽 2, 야심한 시각 나의 붉어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날의 이야기는 더 길어질 수도 있지만 중간중간 조금씩 풀어보도록 하겠다. 우리의 썸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게 맞는 거 같다.     

                              

-     


그렇게 오르막길을 걸으며 심장이 뛰쳐나갈 것만 같은 순간 속 나는 질문을 건네었다.     


근데 그날 왜 나한테 업어줄까라고 물어봤어요?”     


요란한 광교호수공원 오르막길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블러 처리가 되고 목소리가 웅웅 거리며 울렸다. 그 순간만큼은 나와 그만 오직 이 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내 미친듯한 심장 소리가 그에게 들릴 것만 같아 애써 감추느냐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그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빨려 들어갈 정도로 나는 한참을 쳐다보았다.


찰랑이는 호숫가의 윤슬처럼 그의 눈은 참으로도 매혹적이었다. 그의 목울대가 움직이며 입술이 달싹였다.     


그냥 업어준다고 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럼 아무한테나 다 업어준다고 해요?”     


그의 대답에 나는 역질문을 건네었다. 그 말을 하며 나는 속으로 제발 내가 마음을 물을 수 있게 이 미끼를 물어달라고 빌어댔다.     


그건 아니지.”     


침을 꼴깍- 소리가 나게 삼켰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무슨 고급 휘발유를 넣은 포르셰처럼 시동을 걸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내 마음은 그렇게 일방통행적으로 직진하기 시작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성대를 열고 말문을 트었다.     


혹시 저한테 마음 있어요?”

“...”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베르테르의 슬픔에 가장 유명한 넘버. 발길을 뗄 수 없으면의 음률이 귓가에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물론 가사는 전혀 우리와 달랐지만 이상하게 그 음률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에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왜 답을 안 하는 건지. 너무 초조하고 심장이 벅차서 미칠 것만 같았다.     


잘 모르겠어요.”

“...?”     


차인 것만 같았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동안 그가 한 행동은 누가 봐도 관심이 있는 사람의 행동이었는데. 역시나 내가 헛다리를 짚었구나 싶었다. 일주일 간 내가 열심히 고민한 노력을 모두 다 헛으로 만들어버리는 대답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그러니까. 내가 이래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주어를 빼먹고 말하니 충분히 오해를 할 만한 상황이었다. 나는 꽉 쥐고 있던 주먹을 더 세게 쥐며 당돌하게 말하였다.     


나는 좋아해요. 좋아하는 거 맞는 거 같아요.”     


그 후로 그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그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나이 차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 몇 살 차이인 줄 알아요?”

.”     


그게 뭐가 문제죠?라는 표정을 하며 그를 쳐다보니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하하- 웃기만 하였다. 정말 뭐가 문제인지 단 하나도 모르겠었다.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데 그까짓 게 뭐가 대수랴.      


“하... 이게 맞냐.     


그는 스스로 본인의 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비벼댔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사실 나도 이 문제가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남들 다 많아 보았자 4, 5살 차이인데 12살 차이는 나에게도 쉽지는 않은 문제가 맞긴 했었다. 그래도 그게 뭐가 문제가 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좋아하는데, 내 마음이 그렇다는데. 상대도 오케이면 나는 정말 두려울 것이 하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절대적으로 먼저 좋아한다고 마음을 고백하지는 못할 것만 같았다. 12살 어린 회사 후배에게 좋아한다고 하는 말을 하는 것은 사실상 정말 대담한 일을 떠나 위험한 행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 연애 해봤어요?”

아니, 저 이제 3년 차....”

그래도 주변에 해봤을 수도 있으니...”

없어요.”     


그는 한숨을 푹-내쉬었다. 그의 자신 없다는 표정이 상당히 신경이 쓰이긴 헀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첫 번째 횡단보도 앞에서 나는 안전봉 앞에 서서 그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보았다.     


진짜 많은 일들이 생길 거예요. 싸우기도 할 거고.”

.”

진짜 괜찮겠어요?”     


자꾸만 나의 의중을 물어보았다. 나는 이미 아까 내 마음을 다 이야기한 것 같은데.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이 안되었나 싶었다.     


저도 많이 고민하고 말한 거예요. 쉽지 않았어요. 내가 쉽게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얼마나 많이 고민했겠어요.”

그건 그랬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요, 좋아하는데 그런 거 단 하나 문제없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더 중요한 거고요.”     


나는 내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였다. 한편으론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을 가로막는 그가 답답했다. 그래서 더욱더 절실하게 나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봄 내가 더 그를 많이 좋아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 해서 그게 부끄럽다거나, 싫거나. 미운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나 스스로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지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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