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마리-킴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푹신한 퀸 사이즈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나른하고 지친 몸이 푹신한 매트리스 한가운데로 파묻히면서 긴장되었던 모든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두 팀장이 언성을 높이며 진행했던 회의, 이브와의 면담과 그의 개인사, 그간 마리-킴을 관찰해 왔던 이브의 시선, 마침내 마리-킴에게 할당된 『직지』의 연구 등 다양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쏜살같이 지나간다. 손등으로 이마 위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연속된 동작으로 검정 뿔테 안경을 벗는다. 늘 그렇듯 강렬한 디자인의 안경 아래로 보이는 마리-킴의 얼굴은 차분하다.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빈 벽을 멍하게 바라보던 마리-킴은 자신도 모른 새 스르르 잠이 든다. 잠시 후 일을 마치고 퇴근한 프랑수아가 열쇠로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 덜그럭 거리는 인기척에도 마리-킴은 잠에서 깨지 못한다. 그런 마리-킴의 얼굴을 프랑수아가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그는 조용히 마리-킴의 신발을 벗겨 주고 묶고 있던 머리끈을 살살 풀러 준다. 얇은 이불을 목 아래까지 덮어준 후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조명을 끈다.
마리-킴은 맑은 연두색의 잔디가 광활하게 펼쳐진 낯선 장소를 배회하고 있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끝없이 펼쳐진 잔디는 무한한 공간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다. 처음 방문하는 장소이지만 언젠가 와본 듯한 공간에서 마리-킴은 주위를 돌아보며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400년은 된 듯한 거대한 은행나무가 등장한다. 밑동이 굵고 잔가지가 많은 은행나무에 빽빽하게 매달린 밝은 노란색의 은행잎들은 산들바람을 만나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다. 사르르 나뭇잎이 바람을 맞이할 때마다 빚어내는 자연의 소리는 고즈넉하면서 아름답다. 주위의 경관을 살펴보던 마리-킴의 눈에 회색 작은 조형물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니 단아한 3층 석탑이다. 회색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석탑은 바람과 세월을 맞아 자연스러운 풍화과정을 거쳤다. 마리-킴은 손을 뻗어 석탑을 만져본다. 돌의 미세한 거친 입자가 느껴진다. 석탑을 지나 좀 더 걸어 나간다. 조금 전에 지나간 은행나무의 잎이 여기까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있다. 마리-킴은 바람이 이끄는 데로 자연스럽게 길을 따라간다. 초행이지만 어딘가 익숙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자연 속에서 마리-킴은 큰 울림이 있는 청동의 종소리를 듣는다. 굵고 안정감 있는 종소리가 은근하게 마리-킴을 부르는 듯하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보니 수려한 곡선의 기와지붕이 보인다. 지붕 아래로는 오색의 단청으로 꾸며진 건물이 보인다. 금색, 초록, 청색의 아름다운 조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단청 아래로 신비로운 향이 퍼지는 실내 공간이 나타난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내부로 들어간 마리-킴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청아한 목탁 소리를 듣는다. 일정한 박자로 울리는 맑은 목탁 소리는 마리-킴에게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라고 종용하는 듯하다. ‘톡톡톡’ 일정한 리듬으로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를 쫓아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사람이 없는 빈 어두운 공간이 나타나고 문살에 붙어져 있는 한지의 뚫린 구멍을 통해 빛이 새어 들어와 나무바닥에 글씨를 새긴다. 황금색의 빛으로 반짝이는 글씨를 읽어보니 '즉심시불(卽心是佛'), 마음을 갈고닦아 도를 깨우치면 누구나 부처의 마음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1]. 마리-킴은 글자를 읽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은 어디지?’ 처음 와보는 장소이지만 알게 모르게 어딘가 익숙한 공간이다.
사람은 온데 간데없고 목탁 소리와 빛나는 글씨만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마리-킴은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본다. 오래된 석탑과 단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사찰인 듯하다. 그녀는 사람을 찾아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발걸음을 옮겨본다. 건물의 담장인 듯 담벼락이 보이고 시선을 위로 올리니 기왓장이 보인다. 청아한 목탁소리는 지속적으로 들려온다. 분명 처음 와본 낯선 장소에 있지만 어딘가 알 수 없게 자연스러운 공간 속에 녹아든 마리-킴은 향긋한 흙냄새와 은은한 나무냄새를 맡는다. 이윽고 평온함 속에 고요한 아침이 찾아왔다. 오전 7시 프랑스 파리의 자연광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따뜻하게 데워 마리-킴을 깨운다. 일어나서 옆을 보니 프랑수아가 아직 곤히 자고 있다. 마리-킴은 신비로운 꿈을 떠올리며 스토브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비알레띠 모카포트에 물과 원두를 넣고 향긋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시작한다. 꿈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려 본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잊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꿈이다.
늘 그렇듯 프랑수아와 아파트 로비에서 가벼운 입맞춤으로 헤어지고 마리-킴은 곧장 프랑스 국립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내내 꿈에서 본 네 가지 글자를 생각해 본다. ‘즉심시불’은 만물이 평등하다는 생각이 담긴 문장으로 만물에는 부처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담벼락, 기왓장, 자갈 등 세상의 모든 것에 부처의 마음이 깃들었다는 의미로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라는 가르침이다. 마리-킴은 자신의 연구실로 올라가는 내내 네 글자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꿈에 나타난 네 글자는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을 비운 깨끗한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인 듯하다.
연구실에 가장 먼저 출근한 마리-킴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작성하고 있던 워드 프로세서 파일을 연다. 작성하고 있었던 텍스트의 마지막 문장은 “직지는 깨닫다는 뜻이다”였다. 어젯밤에 꾼 꿈과 『직지』의 뜻을 연결시켜 본다. 자연의 소리와 향이 가득한 그 공간에서 조우한 ‘즉심시불’과 『직지』는 그 뜻이 맞닿아 있다. 이미 업무를 시작한 마리-킴의 뒷모습을 이제 막 출근한 이브가 바라본다. 이브는 마리-킴에게 눈인사를 하고 자신의 자리로 이동해 컴퓨터 전원을 켜고 이메일 박스를 확인한다. 급한 용건에 대한 회신을 신속히 마친 후 이브는 마리-킴에게 1층 카페테리아로 가서 커피 브레이크를 가지자고 권유한다. “마리-킴 지금 바쁘지 않으면 커피 한잔 어때?”
역시나 오늘도 이브는 1층 카페테리아로 향하는 내내 아무런 말이 없다. 마리-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어젯밤의 꿈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고 있다. 이브와 ‘즉심시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갑자기 꿈 이야기를 하면 당황할 텐데 어떻게 대화를 시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의 발걸음은 1층 카페테리아에 위치한 카페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카페테리아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카페 알롱제(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핸드폰을 보는 사람, 노트북을 켜고 일을 보고 있는 사람, 일행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인파가 카페에 앉아 각자의 아침을 시작하고 있다.
흰색의 원형테이블과 심플한 디자인의 의자가 놓인 카페는 단순하면서 소박한 공간이다. 마치 한 장의 종이처럼 화이트 컬러로 꾸며진 카페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저마다 색채를 가진 글자가 되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장소이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콘셉트에 잘 맞게 디자인된 장소라 마리-킴도 생각을 정리하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종종 찾아오는 공간이기도 하다. 역시나 에스프레소 두 잔을 주문한 이브는 자리에 앉아 마리-킴에게 통상적인 안부를 묻는다. “마리-킴, 업무는 잘 시작하고 있지?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에게 말해. 큰 산을 몇 번 넘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텐데 혼자서 다 감당하려고 하지 말고. 힘든 일은 나눠서 하는 게 좋지, 그게 팀이고. 그렇지?”
마리-킴을 배려하는 이브의 따뜻한 배려심이 온기가 가득한 에스프레소 잔 너머로 전해진다. 마리-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브에게 지난밤 꿈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래된 은행나무와 무한히 펼쳐진 잔디밭, 3층 석탑과 목탁 소리 그리고 마지막에 본 네 글자 ‘즉심시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마리-킴의 이야기를 듣는 이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두세 번 끄덕인다. 흰색 셔츠를 입고 경청하는 이브의 두 눈동자는 오늘따라 더 깊은 검은색이다. 마리-킴이 이야기를 다 마치자 이브는 한동안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에스프레소 잔을 다 비운 후 천천히 대답을 한다.
“마리-킴이 꿈에서 본 공간은 글쎄…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느낄 수도 있는데, 『직지』가 탄생한 흥덕사 아닐까? 지금은 원래 사찰은 없고 터만 남아 있다고 알고 있어. 그 자리에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생겼거든. 흥덕사 터에는 박물관과 예전 사찰을 복원한 금당 건물 하나만 있다고 하더라고. 마리-킴이 본 곳이 흥덕사의 온전한 모습이 아닌 가상의 공간일 거야. 흥덕사의 모습을 본 사람은 지금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 흥덕사의 모습이 그려지거나 묘사된 문헌자료는 지금 존재하지 않거든. 『직지』가 인쇄되고 1년 뒤에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어 [2]. 전쟁이 나면서 불이 났던 것 같아. 그리고 약 6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에 지역택지개발 공사를 시작하면서 우연히 사찰터에서 예전에 사용하던 도구들과 흥덕사라고 적힌 유물이 발견되어서 그 자리가 흥덕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
설명을 마친 이브는 마리-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리-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이브를 바라본다. 이어서 그녀도 에스프레소 잔을 비운 후 말을 이어간다. “팀장님, 그러면 『직지』에서 ‘즉심시불’에 대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적혀 있는 페이지를 찾아볼까 해요. 마음을 비우고 해탈에 이르러 깨달음을 얻는다는 전형적인 불교의 가르침이지만 어딘가에는 좀 더 명확히 적혀 있지 않을까요?”
마리-킴의 질문에 이브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39장의 고려시대 한문을 전부 다 독해하는 과정은 프랑스에서 평생을 살아온 마리-킴에게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프랑스 및 한국에서 진행되어 온 『직지』에 대한 많은 연구가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역사적인 의의에 맞추어져 왔다. 이브는 마리-킴에게 조심스러운 제안을 한다. 『직지』의 제목인 ‘직지심체’에 대해 현대적인 해석을 해보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놀라운 인쇄 조판술 발명으로서 『직지』가 아닌 현대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기존 연구자들이 쌓아온 연구 결과물을 토대로 2024년을 사는 마리-킴만의 연구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부처의 실체를 깨닫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마음을 바르게 깨닫는 행위를 현대적인 명상으로 접근하여 풀이 하면 전시를 보는 사람도 『직지』를 단순히 역사적인 유물이 아닌 각자의 『직지심체요절』로 받아 들 일 수 있을 것이다.
“마리-킴, 이번에는 우리가 새로운 연구 결과물을 세상에 소개하자. 『직지』의 제목에 대해 현시점의 재해석을 하는 과정에 과한 의역을 하게 되면 본래의 뜻이 흐트러질 수 있지만 잘만 하면 모두가 삶을 살면서 적용할 수 있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 될 수 있어. 명상을 기반으로 한 요가가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 듯이, 궁극적인 명상으로 가는 길을 『직지』를 통해서 알아가는 것이지. 어때?”
이브의 명쾌하고 현실적인 제안에 마리-킴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다. 이브의 말대로 과하지 않게 중도를 잘 지키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커피 브레이크를 마치고 자리로 복귀한 마리-킴은 다시 워드 프로세서를 클릭해 『직지』의 제목인 ‘직지심체(直指心體)’에 대해 이어서 써간다. ‘직지심체’는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이라는 오도의 명구에서 따온 말로 마리-킴은 ‘직지인심견성성불’라는 문장을 풀이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마음을 바로 알아야 깨달아 부처가 되며, 마음의 문이 열려야 진실한 수행을 시작할 수 있다.’라는 비교적 쉬운 풀이가 나왔다. 이어서 ‘모든 망념과 미혹을 버렸을 때 본래의 성품을 깨닫는데, 이는 나의 본성에 부처가 있음을 알아간다’라는 문장을 덧붙인다.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현대적으로 ‘직지심체’의 개념을 기술했다. 그러나 무언가 명확하지가 않다. 어딘가 모호한 부분이 느껴지는데 이 모호함이 시대적인 간극에서 초래된 것인지 언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마리-킴은 한참을 모니터 화면을 바라본다. 학창 시절 중국이나 한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통해 한문과 문화를 익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심 아쉬운 생각이 든다.
마리-킴은 다시 한번 자신이 써놓은 문장들을 읽고 그 뜻을 되짚어 본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직지심체'에는 억지로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고 하면 그르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마리-킴도 그 문장의 뜻을 따라 모니터를 바라보며 수려한 문장을 작성하려는 자신의 마음을 비워본다. 한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내쉬어 본다. 요가 수련을 할 때 심호흡을 하듯 선불교의 가르침을 보며 심호흡을 해본다. 순간 머릿속에 번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에 해가 떠오르듯 상기된다. 2011년 고등학생 시절 『외규장각의궤』의 영구대여의 소식을 TV 뉴스를 통해 듣게 된 후 그 뒤로부터 대한민국의 입양아였던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자 동아시아 고문서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고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동양 고문서팀의 연구원이 된 자신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십 수년 전 프랑스인 어머니와 함께 TV 뉴스를 경청하던 지금보다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어린 마리-킴이 모니터 화면에서 성인이 된 그녀를 응시하고 있다.
‘나를 알고자 노력했던 지난 모든 순간들이 축적되어 현재의 나를 완성했는데, 이제는 마음 편히 내려놓아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찰나에 스쳐 지나간다. 모니터 화면에서 반짝이는 커서와 함께 깜빡 거리는 ‘직지심체’는 마리-킴의 마음속을 바라보고 비우라고 말하고 있다. 어젯밤 꿈에서부터 황금빛으로 보이던 문자들은 모니터 속에서도 흰색 화면과 대조를 이루면서 빛을 발하고 있다. 마리-킴은 두 눈을 감고 잠잠히 생각을 해본다. 수많은 생각들이 마리-킴의 머릿속에서 저마다 빠르고 느린 속도로 스쳐지나간다. 유년 시절 자신을 길러 주신 프랑스인 부모님과 다른 외모에서 느꼈던 이질감, 사춘기 때 찾아온 정체성의 혼란, 겉모습은 동양적이지만 내면은 지극히 프랑스적인 자신의 현재 모습, 동아시아의 고문서를 독해하기 위해 한자를 한 땀 한 땀 독해해 가며 의미를 찾아 헤매는 마리-킴의 여러 모습들이 떠오른다. 이 모든 순간들이 이제는 하나가 되어 그녀를 완성했고 『직지』의 전시와 함께 발생된 내면의 불편한 감정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린 마리-킴은 모니터를 향해 두 눈을 뜬다. 그녀의 깊고 검은 두 눈동자가 모니터 속의 글자와 조우한다.
마리-킴은 천천히 『직지심체요절』의 현대적인 풀이를 완성해 나간다. 한 글자씩 타이핑해 가는 그녀의 재해석은 간결하고 이해하기가 쉽다. 현대인을 위한 해석이다. ‘직지심체요절은 마음을 비웠을 때 비로소 마음속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부처를 만난다는 뜻입니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보면 언제나 끊임없이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상념을 버리고 명상을 할 때 비로소 평온한 마음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명상은 마음을 비움으로써 참된 자아와 만나는 행위입니다. 마음을 비웠을 때 부처와 조우하듯, 상념을 버렸을 때 참된 자신과 만나 일상을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문장을 완성하고 나니 한순간 마음이 평온해진다. 마리-킴이 있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동양 고문서 연구실이 별안간 어젯밤에 꿈을 꾸었던 아름다운 은행나무와 바람의 소리가 가득했던 사찰의 향기로 가득 찬다.
“꿈을 꿀 때 꿈속에서 하는 일과 깨었을 때 경계가 모두 없다. 깨었을 때와 꿈꿀 때를 바꿔서 생각하니 전도된 두 가지 견해가 다르지 않네.” - 『직지심체요절』 중 지공화상의 ‘대승찬송십수’ 꿈과 생시
[1] 『우리 책 직지의 소원』, 최은영, 개암나무, 2019, 63p
[2] 직지, 활자의 시간 여행 4부 직지는 과연 발견일까? 발명일까? 국가유산채널. 청주대학교 교양학부 박상일 교수 인터뷰 부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