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공원은 선유봉의 흔적을 가진 공간이다.
약 2주 전에 두 아이와 함께 선유도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2002년 4월에 개장한 선유도 공원은 울창한 버드나무가 공원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서울 시민들이 즐겨찾는 공원입니다. 한강시민공원에서 선유도를 향해 이동하는 보행자 전용 다리인 선유교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풍경은 정말이지 장관입니다. 눈 앞을 가로 막는 사물 하나 없이 한강 위에서 거대한 한강을 내려다 보며 시원하게 탁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습니다. 선유도 공원은 귓가에 스치는 시원한 한강 바람과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초록이 무성한 장소로 휴식을 찾는 시민들의 공감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9호선 선유도역과도 가깝고 양화대교 한가운데 위치한 선유도공원 버스정류장 덕분에 대중교통으로서의 접근성도 좋은 편입니다. 저도 선유도 공원을 대학생 시절 즐겨 찾았습니다. 결혼 전인 약 11-12년 전에 남편과 친구들과 더블데이트를 하러 선유도 공원을 찾았었고 얼마 전 두 아이와 함께 거의 십 년 만에 다시 방문했습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제가 기억하던 예전의 선유도 공원이 아니었습니다. 10년의 세월 간 나무들은 더 멋있게 자랐고 여름철이라 그런지 과거 정수처리장 자리에 위치한 수질정화원(물의 정원)의 수생식물은 거의 빈틈없이 빼곡히 자라났습니다. 공원 전반적으로 초록 생물들이 웅장하고 무성해진 그곳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노화와 달리 풍성한 최고 전성기의 젊음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늦여름-초가을의 정원은 이렇게 멋있나 봅니다. 2018년생인 저의 딸도 한마디 했습니다. "엄마,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예쁘다."
선유도 공원에 가면 '이야기관'이 있습니다. 이곳은 공원 내에서도 양화대교 가운데 위치한 버스정류장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야기관'에는 선유도 공원의 과거의 모습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선유도의 모습, 일제 강점기의 선유도의 모습, 한강종합개발사업 시대의 선유도의 모습 그리고 지금의 모습이 시각자료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제가 가서 놀라웠던 점은 선유도가 봉우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재 정선이 그린 작품 중에서도 <선유봉>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야기관'에서도 겸재 정선의 <선유봉>의 이미지를 관람객에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유도 공원은 지금 우리가 아는 것처럼 납작한 평면 형태가 아니었던 것이죠.
겸재 정선이 그린 것처럼 선유도는 원래 봉우리였습니다. 한강의 봉우리 섬으로 중국에서 사신들이 조선을 방문하면 즐겨 찾던 관광 명승지였다고 합니다. <선유봉도>를 보면 돛단배가 오가는 백사장 입구에 버드나무가 무성하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유봉은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후에 여의도 개발을 위한 채석장으로 쓰이면서 현재의 모습처럼 평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도시의 공업화와 더불어 시민들의 식수를 공급을 위한 정수장으로 변모했습니다. 2000년에 이르러 정수장은 폐쇄되었고 2002년에 서울시 1호 재활용 생태 공원으로 개장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조경가 정연선 씨가 대표로 있는 조경설계회사 서안이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기획한 청사진대로 시간의 흐름과 함께 공원 내의 초목과 함께 멋진 시간의 정원으로 변모했습니다. 당시 서안은 기존 선유도 정수장에서 사용되었던 철근 콘크리트가 세월과 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풍화되면서 그 위로 자라날 식물의 형상을 머릿속에 그리며 조경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잠시 과거로 돌아와 겸재 정선이 선유도를 그린 또 다른 작품 <양화환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작품의 우측 하단부에서도 우뚝 솟은 선유봉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양화환도>의 좌측 상단에는 절두산과 양화진이 보이고 있으며 화면 중앙의 하단부에는 나룻배가 보입니다. 강 중앙 근처까지 펼쳐져 있는 굴곡진 모래사장을 통해 당시의 얕은 한강의 수심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의 원경에는 버드나무가 흐드러진 잎사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버드나무 꽃'을 의미하는 양화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양화진 근처에 버드나무가 많았나 봅니다. 지금의 선유도 공원에도 버드나무가 멋진 모습을 뽐내며 곳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조경계획을 세울 당시 '양화'라는 지명을 잘 살려 수종을 심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신비로운 현상입니다. 과거의 흔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선유도와 한강의 풍경이 변했지만 과거 양화진 주변의 수종을 지속해서 심어간 서울시와 조경회사 서안의 노력 덕분에 버드나무는 같은 지역에서 멋진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의 선유봉이 명승지였던 것처럼 지금의 선유도 공원도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장소입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과거의 채석장과 정수장으로 사용되었던 시간은 찰나의 순간처럼 흔적(trace)을 남기고 시간의 정원으로 변화했습니다. 프랑스의 해체주의 철학자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차연(differance)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 단어에 '다르다'와 '지연시키다(연기)'라는 의미를 접목시킵니다. 선유봉과 선유도 공원은 외형적으로도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산을 연상시키는 봉우리가 있는 선유봉과 평탄한 평지로 구성된 선유도 공원은 공간을 지칭하는 명칭도 다릅니다. 그러나 이 두 장소는 동일한 공간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공간의 이용목적이 달라면서 이는 흔적(trace)을 남기고 새로운 성격을 가진 장소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데리다는 차연이라는 개념과 함께 흔적이라는 용어도 즐겨 사용했습니다. 현존하는 것도 아니지만 부재하지도 않는 경계선에 걸쳐있는 상태가 흔적(trace)입니다. 선유도 공원은 데리다가 언급한 차연과 흔적을 잘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지명의 차이도 있지만 공원 곳곳에서 과거 정수장의 구조물을 일부 그대로 사용하면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정원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입니다. 선유도 공원은 대한민국 근대사의 흔적을 간직하면서 세월이 지날수록 자연과 함께 더 멋있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시간의 정원입니다. 10년 전의 선유도 공원보다 2주 전의 그곳이 멋있던 것처럼 앞으로 10년 뒤의 선유도 공원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세월이 흐르는 것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이처럼 마법을 부린 것처럼 멋진 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