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의《양천팔경첩》과《양천십경첩》
정말 오래간만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두 아이의 방학과 함께 브런치 연재도 쉬었고 반가운 개학과 함께 다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제가 연재를 쉬는 과정에도 많은 분들이 <금강산보다 더 극적인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 현상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겸재 정선이라는 화가는 역사성을 가진 호감형의 인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겸재 정선은 양천 지역과 근방 그리고 양천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을 다수의 작품으로 남겼습니다. 살아생전 양천현의 현령으로 재직하면서 이 지역을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던 그는 《양천팔경첩》과 《양천십경첩》이라는 작품집을 제작했습니다. 비슷한 제목의 작품집이지만 그 내용과 목적은 전혀 다릅니다.
《양천팔경첩》은 양천현 근방의 명승지 8군데의 풍경 그 자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모인 화첩으로 양화진, 선유봉, 이수정, 소요정, 소악루, 귀래정, 낙건정, 개화사가 그려져 있습니다. 명승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 모인 화첩인 《양천팔경첩》은 양천과 연고가 없는 사람들도 소장 및 감상을 할 수 있는 작품집입니다. 반면 《양천십경첩》은 겸재 정선이 양천 현령으로 부임한 뒤 자신의 가문 내에서 전승되기 위해 정선이 기획한 화첩이며 해당 지역의 풍경을 실제로 조망할 수 있는 이에게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이를 좀 더 쉽게 풀이해서 설명하자면 《양천팔경첩》은 작품의 소재가 된 지역의 명승지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사실적인 풍경을 묘사하여 그 장소에 대해 직접적으로 잘 몰라도 하나의 풍경화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고 이어서 소장할 수었다면 《양천십경첩》의 경우 소재가 된 장소와 더불어 멀리 펼쳐진 원경의 풍경까지 한 화면에 어우러지게 표현함으로써 해당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작품에 담긴 실제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가 있는 작품집입니다. 《양천십경첩》은 겸재 정선이 자신의 집안에 소장하기 위해 제작한 작품이지만 양천 지역에 별서를 소유한 이들에 의해서도 감상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겸재 정선이 《양천팔경첩》과 《양천십경첩》에 동일한 소재의 그림을 다르게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양천팔경첩》의 <소악루도>와 《양천십경첩》의 <소악후월도>는 동일하게 지역의 명승지인 소악루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양천팔경첩》의 <소악루>는 소악루를 작품의 중앙에 배치하고 그 주변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푸른색의 안료를 사용하여 묘사했습니다. 반면 《양천십경첩》의 <소악후월도>에서 소악루는 작품의 가운데가 아닌 좌측 하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소악후월도>에서 작품의 정중앙에 묘사된 장소는 바로 유유자적하게 흐르는 한강으로 겸재 정선은 <소악후월도>에서 소악루에서 바라본 한강의 여유로운 정취를 표현하려고 한 듯합니다. 이는 작품의 소재가 된 소악루 근방에 거주하는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풍경으로 겸재 정선은 그 지역이 가진 특유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풀어냈습니다.
비슷한 예로 《양천팔경첩》의 <양화진도>와 《양천십경첩》의 <양화환도>가 있습니다. 《양천팔경첩》의 <양화진도>는 배가 정박했단 양화진 그 자체의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했습니다. <양화진도>는 당시 명소였던 잠두봉에 위치한 양화나루를 화면 중심에 배치하여 묘사했습니다. 웅장한 잠두봉과 그 아래 정박해 있는 나룻배들이 그림 속에 묘사된 장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다르게 《양천십경첩》의 <양화환도>에서 겸재 정선은 작품의 왼쪽 상단에는 양화진을 작게 그려 넣으면서 우측 하단에는 우뚝 솟은 선유봉을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정중앙에는 넓게 흐르는 한강과 얕은 모래사장과 그 위에 힘차게 노 저어 이동하고 있는 나룻배를 묘사했습니다. 겸재 정선은 <양화환도>에서는 양화진 그 자체의 모습보다는 양화나루 근방의 한적한 풍경을 고즈넉하게 표현했습니다. 오늘날 한강 서남부의 엄청난 교통량을 감당하고 있는 양화대교와 당산철교가 위치한 양화진 근방의 모습이 너무나 한가하게 표현된 <양화환도>는 현재의 시각에서 다소 초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는 겸재 정선이 작가로서 감정을 담아 명승지 풍경화지만 당시의 모습을 기록했다는 측면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그림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양천팔경첩》은 세로형의 화첩이고 《양천십경첩》은 가로형의 화첩이기에 화면에서 담을 수 있는 풍경의 구도가 다른 것도 재미있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세로형의 《양천팔경첩》이 좁은 공간을 세밀하게 표현하기에 적합했을 것 같습니다. 《양천십경첩》의 경우 겸재 정선이 그의 벗인 사천 이병언과 시와 그림을 주고받으며 제작한 《경교명승첩》에 속한 시서화의 일부이기에 가로형으로 제작되어 그림의 옆에 이병언의 시가 적혀있습니다. 시와 함께하는 그림이기에 후대에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에게 좀 더 여유로운 해석의 시간을 허락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장소를 보고도 전혀 다르게 작품으로 제작한 겸재 정선의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해석이라는 행위와 그 행위에 동반된 여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같은 장소를 그린 그림들이지만 작품들이 차별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작품의 구도와 관련된 요소들을 차이를 두어 세밀하게 표현한 작가의 의도로 인한 것이지만 작품을 바라보는 감상자가 작품의 정중앙에 위치한 한강이 주는 여유로움을 크게 받아들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조금은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이 우리에게 허락되기를 바라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겸재정선미술관의 학술 도록 『웅건호활, 강서에서 만난 겸재 정선』에 수록된 김가희 님의 "정선의 《양천십경첩》연구: 정선의 새로운 자아 표상과 예술전략"과 네이버 한국 미술 산책에 수록된 송희경 겸재정선미술관 관장님의 "양천팔경첩"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