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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홍 Aug 28. 2024

17화 똥기저귀 치우는 게 뭐 어때서?

에이지드 케어 실습 2주 차 후기

Knock knock!

Good Morning, How are you?


노크와 함께 아침 인사를 쩌렁쩌렁 외치며 잠 깨우기부터 시작하는 매일의 하루 일과.


레지던트 대부분 귀가 어둡기 때문에 일부로 크게 말하는 거지만

이렇게 힘차게 아침 인사를 주고받고 나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일상복으로 환복 시키고 까치집인 머리도 빗어서 묶어주고 기저귀 확인하고 갈아주면 끝.


똥오줌 안 더럽나요?


신기하게도 나는 처음부터 더럽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름 어디 가서 부러움 살만큼 곱게 자랐는데 내가 이런 걸 기꺼이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처음부터 내색 없이 척척 하니까 한 동료가 자기는 비위가 약해서

처음 일주일은 밥이 제대로 안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음, 나는 비위가 강한 게 아니라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뭘 생각을 해. 실습 어차피 해야 되는 거 그냥 하면 되지.


똥오줌은 오물이고 오물은 객관적으로 더러운 게 맞다.


그런데 나중에 나도 노인이 되면 누군가의 돌봄을 받을 거란 생각을 해보니까 더더욱 더럽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더라.


치매라고 해서 거동이 불편해서 누워만 있다고 해서 인지가 없는 게 아니다.

보살펴 주는 사람이 더러워하고 혐오스러워하면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내가 다른 사람을 추하게 대하면 나도 그렇게 된다고.


Treat others the way you want to be treated.

우리 모두 결국 노인이 된다.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할 수밖에 없는 게 고맙다는 말을 매 순간 듣는다.


일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말

Thank you, darling.

Thank you, dear.

Thank you, sweetheart.

You are lovely.

You are beautiful.

You are a nice lady.


30년 인생 살면서 고맙다는 말을 지난 실습 1-2주 동안 제일 많이 들었다.

큰 수고가 드는 일도 아니고 속되게 말하면 돈 받고 하는 일이지만

누군가가 나로 인해서 좋아하고 기뻐하는데 어떻게 보람차지 않을 수 있을까?


워낙 이런 걸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문화라 그런지

고함치고 공격적으로 돌변하는 앵그리 치매라도 고맙다는 말은 잊지 않으시는 게

어떻게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칭찬과 고마움의 표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애정과 열정을 샘솟게 하는 주문인 듯.

일할 때 장갑과 마스크 착용은 필수. 장갑이 모든 벽에 다섯 걸음 마다 사이즈 별로 걸려 있어서 굳이 가지러 갈 필요 없이 동선이 정말 편리하다.

아침 식사 시간에는 다이닝룸에서 토스트기로 토스트 대량 생산.


호주 대표 시리얼 위트빅스와 대표 스프레드인 베지마이트는 물론

각자 취향에 따라 계란이 조리되어 나오는데, 베트남 국적의 경우는 국수가 나온다.

(한국인이면 가정식 백반 스타일로 나오려나?)


식사가 끝나면 나를 레스토랑 매니저로 알고

Thank you for your service. The food was so lovely. Thank you.라고 하시는데

일주일 만에 넉살 좋게 다음에 또 와달라고 화답하면서 상황극하면서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


처음에 제일 난감했던 커피도 AI 마냥 타고 있고.

원두 한 스푼에 설탕 두 스푼, 우유는 눈대중으로 대충 따라 잔을 채우면 되는데

설탕을 한 스푼 넣네 두 스푼 넣네 우유를 넣네 마네 각자 고집하는 커피 레시피가 있어서 외우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제는 나의 애착 트롤리. 레몬에이드 오렌지 주스 애플 주스 모두 맞춤형으로 제공해야 되다보니 좀만 정신줄 놓으면 혼이 쏙 빠진다.


그리고 우리 어르신들 체력 대체 무슨 일이신가요.

치매라서 방금 걷고 왔던 사실도 잊어버리셔서 그런지 그렇게 활동적일 수가 없다.


비가 오든 말든 정원을 하루에 수십 바퀴를 돌고 또 돌고.

그러다가 어느 타이밍에 길 잃었다거나 가족을 잃었다 어디를 가야 된다

모두 각자의 레퍼토리가 시작되는데 이걸 케어하는 게 케어러 업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아들 딸 이름까지 다 외워서 주말에 올거라고 어르고 달래는 건 일도 아니지만

이 트리거가 좀처럼 진정이 안 되는 날에는 지옥 시작인데 대부분 한 번에 진정이 안된다.


오피스 앞에 드러누워서 통행 방해는 기본,

더 이상 살기 싫다고 일부러 침대에서 떨어지시는 드라마틱한 행동은 덤.

별 일이 없으면 같이 음악 들으면서 색칠 공부나 퍼즐을 같이 하며 오후를 보내서 크게 힘든 일은 없다. 2주에 한 번 매니큐어도 칠해드린다.

다시 똥기저귀 이야기로.


”너 무슨 똥기저귀 치우러 다니냐?“


놀랍게도 내가 실제로 직접 들었던 말이다. 어느 한국인한테서.

당신과 당신 가족은 늙어서 꼭 추하게 여겨지기를 기원합니다.


정말 이런 사람들 때문에 한국이 안 되는 거다.

반대로 여기서는 누구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호주에서 널싱홈에서 케어러로 일한다고 하면 다들 리스펙 또는 너 정말 가치 있는 일 한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싱어송 액티비티 때문에 오는 분들도 자기는 여기 두 시간만 있어도 힘들다고 대단하다고 하고.

또 간호사 연봉은 매년 오르는 추세인데도 더 높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고 항상 존경해야 하는 직업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높은 페이는 물론 사기를 충전하게 해주는 사회적 인식과 분위기가

돌봄의 한 가운데에서 타인을 위해서 기꺼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 같다.


Happiness is amazing. It's so amazing it doesn't matter if it's yours or not.

A society grows great when old men plant trees, the shade of which they know they will never sit in.

Good people do things for other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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