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지드 케어 실습 1주 차 후기
드디어 3개월 간의 에이지드 케어 수업을 마치고 실습을 나가고 있다.
PCW로 일하려면 최소한 서티 3 자격증이 필요한데
코스 이수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장 실습으로 152시간을 채워야만 한다.
*PCW는 Personal Care Worker로 Support Worker라고도 한다.
운 좋게도 집 근처의 널싱홈으로 배정받았고
2주는 1층에서 2주는 2층에서 모닝 시프트(7시-15시)로 일하게 되었다.
영어로 쓰고 보니까 뭔가 있어 보이지만
한국어로 하면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 보호사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첫날부터 이 일이 너무 잘 맞아서 깜짝 놀랐다.
모닝 시프트 스케줄
7시
- 모닝 미팅 참석: 각 레지던트 별 특이사항 전달
- ADLs(activities of daily living) 지원: 샤워, 옷 갈아입히기, 침구 교체
8시
- 아침 식사 및 ADLs 지원
9시 45분 - 10시 직원 휴식 시간
10시 - 10시 40분
- ADLs 지원
10시 40분 - 11시
- 데일리 미팅 및 교육 사항
11시 45분 - 12시 30분
- 점심 식사 지원
12시 30분 - 1시 직원 점심시간
1시 - 3시
- ADLs 서류 리포트
이렇게 적고 보니 더 별 거 없다.
매일 드는 생각이 이러고 퇴근한다고? 이러고 이 돈 받는다고? 이 생각뿐.
나도 그동안 공부던 일이던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 해봤지
이렇게 몸으로 하는 일은 처음이라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었는데
도대체 하나도 왜 하나도 안 힘들까? 어떻게 이 일이 즐거울까?
첫째, 기본적으로 2인 1조로 일하는 게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거 같다.
보통 한 명 당 하루에 10명을 배정받는데 또 그중 절반은 2인 1조로 지원을 한다.
치매의 정도에 따라 스스로 거동이 가능한지에 따라 지원하는 범위가 다르고
또 치매는 아닌데 단순히 가족 중 돌볼 사람이 없어서 시설에 있는 레지던트도 많다.
착한 치매이거나 거동과 의사소통이 가능할 경우에는
샤워할 시간이다 아침 먹을 시간이다 옷 갈아입을 시간이다 안내만 하고 스스로 하는 걸 지켜봐 주고 옆에서 도와주는 정도이다.
그럼 거동이 안 될 경우에는 어떻게 하냐고?
거동을 도와주는 다양한 기구들이 있다.
그럼 침대에서 기구까지는 어떻게 옮기냐고?
슬링이라는 천(?)을 이용하면 된다.
각 레지던트의 상태에 맞는 슬링과 기구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몸으로 하는 일인데 몸이 힘들지가 않아 버리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가. 도구가 다 있다.
그리고 이런 기구나 슬링을 이미 학교에서 매뉴얼 핸들링 수업을 통해 필수적으로 배우게 돼있다.
둘째, 수업 내용이 정말 실제 근무 현장과 똑같다.
위에 언급했던 기구들 뿐만이 아니다.
모든 과목은 이론 수업과 롤플레잉, 서류 리포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롤플레잉은 말 그대로 시나리오를 받고 앞에 나가서 재현해야 되는 조별 과제이다.
극 내향형 인간인지라 매번 앞에 나가서 롤플레잉 재연하는 게 너무 싫었고
그 시나리오에 맞춰서 각종 리포트 작성하는 것도 너무 귀찮았는데 가장 많이 도움 되는 부분이었다.
(깊은 뜻이 있었을 줄이야.. 꽃이 지나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읍니다..)
셋째, 레지던트와 일하는 사람 모두가 존중받는 분위기다.
학교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배웠던 게 레지던트의 권리이다.
모든 업무에 앞서서 최우선으로 있는 게 레지던트 본인의 의사이다.
즉 레지던트는 샤워를 하기 싫으면 안 할 수 있다.
요일 별로 샤워 리스트가 있고 내 레지던트가 그날 샤워 날이라면 시프트 동안
샤워를 시켜야 하는 게 의무이지만 그걸 권유를 하는 거지 강요할 수는 없다.
따라서 레지던트나 일하는 사람이나 억지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게 없다.
약 한 달 동안 샤워를 거부한 레지던트가 있었다.
치매도 아닌 데다가 가족들이 방문해서 권유를 해도 거부한 게 한 달이 되어서
데일리 미팅 때 어떻게 할 건지 모두가 모여 회의를 한 적이 있다.
간호사부터 모든 직원들이 모여 본인이 해당 레지던트와 겪은 일화들을 공유하고
다 같이 방법을 찾기 위해 편하게 이야기하는데 나는 미팅이 이런 분위기인 것도 놀랍고
간호사든 매니저든 PCW들이 겪는 고충을 깊이 공감해 주고 고마움을 말로 “표현”해주는 것도 놀라웠다.
다른 것 보다 이런 Working culture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사람을 닳지 않게 하는 것 같다.
빡세게 살지 않아도 다 넉넉히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보고 겪은 이상
회사에서 바쁜 척 헛짓거리하며 가짜 노동을 해야만 하는 곳으로는 이제 절대 돌아갈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7시 -15시 모닝 시프트 끝나고 17시 - 22시 레스토랑 일까지 하고 있는데도
한국에서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으로 일할 때 보다 행복하다니. 이게 맞나?
결국 스트레스가 문제였던 거다. 편두통? 그게 뭔가요.
다소 빡셌던 날도 퇴근 길에 맑은 밤공기 한 번 들이 마시면 뇌는 상쾌하기 짝이 없다.
누구에게는 그저 영주권 따려고 시작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나에게는 너무 재미있고 보람까지 있는 일.
만 30세, 천직 찾기 딱 좋은 나이.
막차로 탄 호주 워킹 홀리데이에서 얼떨결에 천직을 찾았다, 아니 찾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