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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멀끔 Aug 25. 2024

힘들지. 소주 한잔 같이 하자. (너그러움 편)

싸울 것인가 너그러울 것인가

잘 지냈냐.  


뭐 벌써 연락했냐고? ㅋㅋ

아니 뭐 너도 알다시피 나 쫌 있으면 마감이라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생각났을 때 미리 좀 빨리빨리 만나 두려고. 쏘리.


뭐 이런 거 저런 거 다 이해해 주니까 우리가 친구 아니냐.


음~ 글치. 우리가 서로 안지가 꽤나 됐지. 

ㅋㅋㅋ 그렇지 중간에 별의별 주접스런 에피소드들도 많았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서로 극혐하고 그런 적도 꽤 있었지 맞아. ㅋㅋ


가만있어보자.. 우리 사이의 제일 화려한 황금기였던 때가 언제였냐. 

대학교 갓 들어가서 맨날 미팅하고 술 먹고 놀러 다니고 그럴 때였나? 


그렇지 ㅋㅋ 그땐 우리 이 멋진 스스로를 그냥 집안에 잠시라도 박아두는 게 너무 아까울 정도로 개념도 없었지만 자신감도 아주 폭발 그 자체였지 ㅋㅋㅋ 아~~ 그런 때가 있었구나 우리. 


뭐 무적이었지 ㅋㅋㅋㅋ 모르겠다.. 객관적으로 남들이 봤을 때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때는 그 밑도 끝도 없는 자뻑 에너지 발산으로 반은 먹고 들어갔던 거 같다. 


그러다가

우리가 또 취업 공부도 같이 했었드랬지. 


아~~ 그때 우리 아주 참 빡세게도 했었지. 이건 뭐 진심으로 우러나와서 도서관-집-도서관-집-도서관-집을 정말 책과 혼연일체가 돼서 기꺼이 열정을 불태우면서 그 시간을 즐겼었지. 솔직히 우리 인생 그렇게만 딱 10년 쉴 틈 없이 살았으면 빌게이츠 저리 가라로 대성했을 거야 ㅋㅋㅋ


그렇게 스펙을 쌓고 원하는 곳에 취업문을 두드리고,

합격자 발표 사이트에 들어가 클릭을 하고 나서 차마 두 눈을 뜨고는 못 보고 실 눈으로 두근두근 대는 마음으로 살살살 작은 틈으로 모니터를 봤을 때


'축하합니다. 3차 면접 합격입니다.'

뚜앜


를 보고 방구석에서 무슨 호날두 월드컵 세리머니하듯이 날뛰던 때가 있었지.


ㅋㅋㅋㅋ 


그래. 그때가 우리의 하이라이트였던 거 같다. 아주 그냥 스펙터클의 연속이었지.


그래. 


그때 우린 수많은 경쟁을 뚫고 완벽한 인생에 자랑스럽게 세이프한 우리의 앞에 이제 어떤 내일이 올까 기다리는 것조차도 조바심에 안달이 났었었지. 


그러다가 언제쯤부터였나..


사회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나가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서 그렇게 서로 예민해지고 우리 서로 헐뜯고 화해하고 경멸하고 위로하고를 계속 반복했던 거 같다. 


아주 그냥 애증의 콤비였지 ㅋㅋㅋ


뭐 근데 지금도 솔직히 니가 꼭 아주 내 성에 쏙 드는 녀석은 아니야 ㅋㅋㅋ 응 알고 있지? 애휴 안적도 멀었지 임마.


그렇지만 그 수많은 크고 작은 부대낌과 성취를 반복하면서 우린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 무뎌질 대로 무뎌진 단단한 굳은 살이 박힌 찐 사이 아닌가 싶다.


아 그럼~~ 그래도 난 너한테 절대로 관대하지 않을 거야. 아마 죽을 때까지도? ㅋㅋ


좋으나 싫으나 죽을 때까지 함께 할 내 최고의 베프인데 누구보다도 더 멋있고 더 찬란하길 바라는 우정의 마음이 난 있지. 고작 거기까지에서 끝날 짜식이 아니라고 누가 뭐래도 억지를 부려서라도 니가 받아들이든 말든 난 채찍질 할 거야 ㅋㅋㅋ


솔직히 삐치기도 더 잘 삐치고 내색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실망도 더 잘할지도 모르지. ㅋㅋ


가혹하냐? ㅋㅋㅋ

아니 이건 근데 보니까, 


다른 친구들을 만나봐도 나이가 들면 무조건 더 관대하고 너그러워지는 게 아니라 외려 사소한 것에 꽂히면 꽁한 마음을 가지면서 감정적으로 취약해지는 면이 있긴 하더라고. 


에이~ 물론 이제는 다들 어엿한 사회의 고수들이자 수장급들이니.. 나이스한 품격의 미장센 스킬들이 만렙이라서 뭐 티는 안 내고 다들 스무스하게 지나들 가니 또 그런 건 멋있다면 멋있다고 할 수 있지. 


근데 알고 보면 뭐 또 잔잔바리 같은 서움함에 꽂히면 꽁하게 되는 건 외려 우리 생각 없는 어렸을 때보다도 완전 더 다운그레이드 됐지 ㅋㅋㅋ 안 그르냐 솔직히? 아 물론 나도 그렇고! ㅋㅋㅋ 인정.


아마 그간 살면서 쌓여온 온갖 버라이어티 한 상처와 통수와 스트레스들 속에서 마음이 무뎌져 단단해진 한 편으로는 프레시한 마음의 싱싱함을 잃어가면서 애지간히 잔잔한 건 바로 튕겨버릴 수 있는 탄력성도 함께 뻑뻑해져서 그런 거겠지.


그래도 우리는 그럴 때가 오더라도 한번 더 우리 연륜으로 카바 치면서 서로 너그러워지자.


순간 뭘로 삐쳐서 그렇게 탄력을 잃은 채로 죽을 때까지 평생 등지고 살기에는,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쌓아온 우리 시간들이 너무 아깝잖아. 


그래도 우리 누구보다도 서로 개그 코드도 잘 알고, 또 굳이 구질구질하게 설명 안 해도 서로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어떤 캐릭터인지 자연스레 잘 아는 사이잖냐.


우리 서로가 얼마나 그간 수많은 시련을 주저앉지 않고 돌파해오면서, 


매 순간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길을 걸어오면서, 


그 인생의 수렁 안에서 꾸역꾸역 한 발 한 발 억척스럽게 내딛으면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결국 이마만큼 훌륭히 삶과 가족을 만들고 끌어온 장본인이라는 거, 


삶의 동지로서 리스펙트 해줄 만하잖냐. ㅋㅋ


청춘의 하이라이트 때 그 불꽃 튀는 열렬함은 이제 없더라도 우리 이제는 뚝배기 같은 든든한 여유의 온기로 너그럽고 훈훈하게 의지하기로 하자.


그래. 


누가 뭐래도,


나는 너의 치열했던 삶의 히스토리에 경애를 보낸다. 


이마만큼 남부럽지 않은 가족의 삶을 끌어온 너에게 

마음 깊은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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