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 몰입적 취미를 해보자
이 오징어 대탈출 초기에 나는 운동을 선택했다.
그때는 사실 이래저래 육체적으로나 멘탈적으로 너무 쩔어있었기에 일단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당장 시행만 하면 되는 것에 뛰어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 일이다.
마음이 꽉 죄어있을 때는 무언가에 집중할 수가 없다.
무얼 보고 있어도 가슴 저 깊숙이에서 가만히 있는 것조차도 힘든 숨 막히는 갑갑함이 날뛰어 요동치기 때문이다.
그럴 땐 뇌를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운동은 사실 건강보다는 뇌를 비우기 위해서 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효과를 보긴 했지만, 이게 또 해보니까 그렇다고 운동만 줄장창 해서는 개운하게 풀리지 않는 허기가 있다.
뇌를 비우기 위해서 운동을 했지만 결국 뇌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뭔가 개운치 않은 찝찝한 무언가가 가시지를 않는다.
이 행복투쟁기의 중간에서,
누군가 나에게 그래서 답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게 생각한 거보다 단편적으로 심플한 건 아니더라구요 라고 말할 것 같다.
오늘만 생각하고 충실히 현재에 몰입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결국 인간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없다면 아무리 현재에 몰입해도 공허한 현타를 만나게 마련인 것 같다.
그렇다고 미래만 생각하면 현재가 값싼 싸구려 시간 같이 느껴진다.
내가 다 해봤다.
그러니, 미래의 청사진과 플랜은 설정하여 음미하되, 그와 연계된 오늘을 기쁜 마음으로 몰입해야 한다.
욕심과 집착이 과중하면 스스로를 괴롭히고 어느 순간도 만족을 할 수가 없다. 가지지 못한 마지막 한 발치에 좌절하고 낙담하고 분노하게 된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집착을 모두 내려놓았을 때 진정한 평화가 올 것 같지만 너무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사실 재미가 없다. 그저 밍밍한 평화만 있을 뿐. 그나마 그것도 이내 세상 속에 살면서 차츰 불쾌함으로 바뀐다.
그러니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되 선별하여 내려놓고 그 안락함 와중에 끊임없이 갈구함에 있어 고민하고 시도해야 한다.
행복에 대한 답은 지금 명확히 내릴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짬뽕 아니면 짜장보다는 짬짜면 같은 것임에는 확실하다. 심지어 내가 지금까지 말한 중용적인 자세도 언제나 최상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집착만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고 오늘만 생각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중용을 염두해야 하는 마음가짐 그 자체도 중용적인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나 할까.
뭐 꼭 그래야 잘 사는 거다! 라기보다는 그래야 맘 자체가 충만하다.
이것은 내가 그간 부처님 말씀, 철학자들, 지인들 조언들, 자기 계발서들을 닥치는 대로 섭렵해 보고 그대로 마인드들을 실행해 보고 내린 결론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성인들과 저자들의 말이 큰 힘이 되고 평온 혹은 투지를 불러일으키지만, 너무 하나의 철학에 극단적으로 매몰되면 안 된다. 아 물론 그래도, 어느 하나 그것만 충실히 따라도 어느 정도 중타는 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궁극적인 이데아는 그 모든 반대급부의 사상과 조언들이 케미컬처럼 융합되어 버무려져 있을 때라는 것이다.
잠시 뇌를 비우고 육체를 움직이자!라는 것으로 어느 정도 기저 충족을 채울 수는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허기짐이 싹 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신체적인 몰입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통상적인 이야기들로 우울하면 운동을 하세요! 하지만 그건 아주 밑바닥 심연에서 본인을 당장 끌어올릴 때 유효타가 크다.
머슬로우의 욕구 5단계처럼 행복추구에도 단계가 있다. 일단 바닥이라면 운동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너무 바닥이면 정신적 활동으로 몰입을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다음 단계로 조금 더 충족감을 채워보기로 했다.
운동이 심연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면 이번의 정신적 몰입이라는 것의 시도는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다.
몰입은 합법적이고 건강한 모르핀 아닌가.
나는 그 쾌락을 위해 중장기적인 두뇌적 취미를 만들어보기로 한다.
무슨 공부를 해볼까.
기왕 하는 거 예전 입사 시험공부를 할 때처럼 토씨하나 안 빼고 바닥부터 정직하게 싸그리 쌓아 올릴 맘으로 무언가 하나 공부할 것을 정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