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년 오징어 탈출 공략집 13 : 가족(2)
온기를 머금은 모닥불처럼
가족.
이보다 더 따스한 느낌을 주는 단어가 있을까.
또 한편으로는 이보다 더 아련하게 가슴을 할퀴어 긁어 내리는 느낌을 주었던 단어도 없을 것이다.
나는 가장으로서, 어떻게든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단란한 가정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리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소한 웃음이 넘치는 그 따스한 거실의 오라.
다소 형식적이더라도 일상 같이 주고받는 작은 안부 인사 몇 마디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지날수록 그것에 대한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나는 지금까지 느꼈던 다른 어떤 삶의 시기보다도 더 깊은 적막한 공허함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상실감으로, 때로는 자포자기로 그 차디찬 벽 같은 퀭한 가슴 답답함의 터널을 꾸역꾸역 걸어가던 끝에,
결국에 내가 맞닥뜨린 것은 자책감이었다.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한참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을 만들지 못했다는 자책감.
어떻게든 다시 무얼 되돌려 놓으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나는 더 조급해졌고, 절실 해졌지만, 그런 발버둥 속에 이내 돌아오는 것은 더 냉랭한 싸늘함의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었다.
무언가 큰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집안에 우환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퇴근 후 매일 같이 나를 맞는 집안은 꺼져버린 차디찬 구들장 같았고,
잠시의 옆 눈길도 주지 않고 티비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아내와, 꾹 닫은 입술 같은 아이의 방문 밖에서,
끊어진 전선 위의 마지막 발악을 하는 틔미한 스파크처럼 틱틱 버둥대는 나의 몇 마디가 다였다.
무엇이 그렇게 해맑던 착한 아내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시종일관 재잘대던 아이들을 저렇게 만든 것일까.
그 예전 명랑하고 즐거웠던 우리의 가정은 이제는 지나간 추억으로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평범한 인생의 중간점 모습인 것인가.
몇 년동안을 그런 생각들에 잠식되어 갔지만 그래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이렇게도 저렇게도 절규 같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한 끝에 나는 결국 답비스무리 한 것을 찾았다.
그것은
우리는 가족이라는 구성으로 그 누구보다도 소중히 아껴주어야 할 인연으로 살고 있지만, 결국 한편으로는 부단히, 그리고 치열히 각자 자신들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리고 나는 나대로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맞닿아 있는 부분에 있어 최선을 다해 서로를 아껴주고 생각해 주어야 마땅할 터지만
중요한 것은
그 하나하나가 무한한 우주 같은 삶의 독립 주체로서, 아무리 가족이라도 나와 맞닿아 있지 않은 영역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광활히 그들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그 나머지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삼라만상의 기쁨과 고통과 유혹은 더 이상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부족한 점이 물론 없지는 않았겠다만, 나 역시 우리가 맞닿아 있는 부분에 있어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부단히 최선을 다 했음 또한 스스로 굳건히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나는 변함없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었지만,
아내에게는 불충분했을 수도 있고, 내게 꼴도 보기 싫은 점이 있을 때도 있을 것이고, 나로서는 서글프긴 하지만 삶을 살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지친 삶을 더 행복하게 해줄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함없이 견실하고 현명히 아이들을 키워 온 아내가 감사하고 훌륭한 사람임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있을지언정 허구언날 구사리와 핀잔을 먹으면서도 되도 않는 익살을 부리며 바둥대고 노력하는 나 역시 좋은 남편임에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최선의 경험과 조언을 제공해주고 싶었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은 스스로 넘어지고 배우면서,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자기들만의 또다른 삶의 영역 속에서 희노애락을 부대껴가면서 성장해 가고 있다.
일련의 그 영역과 과정 속에서 내가 없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모든 것을 함께 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나의 최선을 다한 아버지인 것이고, 아이들도 그렇게 대견스럽고 감사하게 커가는 중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을 맞대고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각자의 삶을 치열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고 별 것 아닌 일상 같은 본질이긴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사노라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내가 처음 생각한 곳이 아닌 이상한 곳에 서 있게 되었다는 당혹스러움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일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냥 열심히만 살아왔을 뿐인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는지, 놓쳤었는지 어섬프레 짐작만 해볼 뿐, 또렷이 잘 알지도 못하겠는 와중에 웬수를 쳐다보는 것 같은 매서운 아내의 눈빛과 차가운 벽 같은 무관심과 싸늘함을 가족에게 느끼는 날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그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족에 대한 사랑, 그 숭고한 초심을 차분히 가슴에 새기고, 한편으로는 고즈넉이 가족과 맞닿아 있지 않은 광활한 나의 소중한 나머지 영역의 삶도 충실히 살아가며 푸근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그냥 그 자리에 담담히 서서 나의 나머지 삶 역시 살아가면 된다.
내가 그렇게 홀가분하고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다만 변함없이 따뜻한 가족에 대한 사랑의 심지를 잃지 않고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이내 바깥 추운 겨울 날씨에 모닥불을 찾아 삼삼오오 모이는 숲 속 동물들처럼 그 불씨 주변으로 가족들은 돌아올 것이다.
그곳에서 차분한 온기를 머금고 서 있어주는게 나의 역할이다.
물론 어느 순간에는 그런 기대가 깊은 심연 속에서 보이지도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 발휘되는 것이 나는 가족에 대한 신뢰라고 생각한다.
가족에 대한 신뢰는 무언가 흡족스럽고 만족스러울 때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에 대한 신뢰는 내 아내, 아이들, 그리고 나 스스로의 됨됨이와 본성에 대한 믿고자 하는 굳은 의지이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잡았다.
그렇게하기를 몇 달,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변해갔다.
사실 이제와서 생각을 해도, 어느 순간 아내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 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영문도 모를 끝없는 밀어냄과 불같은 화만 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었었든,
어쨋든
변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그럼에도 -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 좀 더 새처럼 경쾌하고 여유 있게 가족들을 대했다.
그리고 그들의 무관심함과 냉랭함을 무던히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면 그러는대로,
나는 나대로의 삶 속에서 홀로 책을 보던지 운동을 가던지 하면서도 덤덤한 온화함과 스스로의 명랑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저 조용히 해 주고 다시 나는 내 자리로 홀로 돌아갔다.
모든 것을 함께하고픈 사랑스러운 가족이었고, 그렇게 속절 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으로 소중한 추억의 기회들을 하염 없이 흘러 흘러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가족들은 자기들만의 고유영역의 세상에서 고군분투하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충실히 살아가고 있음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서히 해빙되어 가고 있었다. 가족들도 그 와중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조금씩 더 살갑게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갔고 그 역시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다가도 가족들은 여전히 다시 냉랭했고, 무관심했다.
다만 이제 나는 그런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런 때가 오면 나는 그저 온기를 머금은 모닥불처럼 홀로 그 자리에 서서 내 나머지 영역에서의 삶을 살아가며 수더분히 기다렸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 갔고 아주 조금씩 조금씩 우리 가족은 예전 모습을 되찾아 갔다.
이제 나는 외출할 때면 항상 아내 손을 잡고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며, 아내는 다시금 그 찬란한 환한 웃음을 내게 보이곤 한다.
저녁 시간에 아이들은 거실에서 한대 모여 서로 재잘거림을 나눈다.
지금처럼만 우리 가족들이 살아갔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감사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지난 악몽 같은 나의 번뇌가 오히려 다행이었고 그 긴 터널의 시간 역시 감사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이를 먹어 마음이 더 약해지기 전에, 다행히도 일련의 경험을 겪으면서 보다 일찍 이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혹독한 시간들을 어떻게든 뒤집어 내가 바라던 이상으로 끌어 돌렸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향후 혹, 그런 날을 또 언제 만나게 되더라도 굳건히 이내 내가 바라던 행복한 가정으로 다시 캐리 할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가족에 대한 신뢰.
그것이 지금 내가 돌아보건데 지난 여정의 그 시간이 내게 준 감사한 의미였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여러분들에게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게 된 첫번째 고통 제거에 대한 이야기였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의 제거는 소소한 행복의 추구보다 훨씬 더 어렵고 묵직한 일이긴 하지만, 그마만큼 운동이나 명상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만족감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치 있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 여정이 고되고 힘든 때가 있을지언정, 어차피 삶에 있어 필요 없는 시간은 없다.
그러니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진중한 진심을 가지고 고통과 차분히 대면해보자.
쉽지는 않겠지만 그럴만한 가치와 보상은 충분히 차고도 넘친다.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시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