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년 오징어 탈출 공략집 12: 가족(1)
생활비 주는 거지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한다.
무척이나.
문제는 그들에게 그런 건 별루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누구나에게나 자기에게 있어 가장 우선순위인 꿈과 이상이 있다.
나에게는 부나 명예, 타인들로부터의 인기보다,
행복하고 웃음이 넘치는 따뜻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내가 꿈꾸는 최고의 이상적 가치였다.
가끔씩 TV에서 부부관계 관련한 토크쇼를 보다 보면 방청객들의 이런저런 사연과 상담들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중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멘트는 이거였다.
"이제는 남편이 잘해주는 것도 싫고 그냥 다 싫어요."
아니 이 아줌마야.. 그럼 도대체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사노라면 맘에 들지 않는 날들도 있을 테지만 폭력이나 외도나 경제적 사고 같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어쨌든 부부로 살기로 한 이상, 서로 노력하며 조율해 가면서 살 생각을 해야지 자기 싫다고 부부는 물론 애들에게까지 영향을 줄 가정환경을 그냥 다 남편 탓이나 하면서 당당하게 패대기치겠다는 말인가?
라고 혀를 끌끌 차면서 혼자 말로 핀잔을 주던 어느 날.
아.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날이 내게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는 더 이상 나에게 예전의 웃음을 보이지 않았고, 아이들도 덩달아 그런 분위기를 따라 하염없이 야속하게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았다.
밖에서는 열심히 돈을 벌고, 나름대로 가정에 있어서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들에게 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해 오고 이것저것 한다고 했던 나에게 제일 먼저 찾아온 것은 분노와 허탈감이었다.
내가 추구하던 목표 그 자체로부터 거부당한 그런 상실감과 분노였다.
그렇게 옥신각신 중에.. 결국 나에게 돌아온 것은 자책감이었다.
나는 주어진 시간 동안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고 결국 나는 부족한 남편이었고, 부족한 아버지였던 것인가.
생각은 생각을 물면서 나는 급속도로 점점 더 피폐해져 갔고 시들어 갔다.
어떻게든 내가 더 잘해야겠다고 절박한 마음에 더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TV에서 봤던 어느 아주머니의 말처럼,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은 더더 나를 외면하고 귀찮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도대체 내가 뭔 잘못을 했길래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하면서 깽판을 치던 때가 더 나을 정도로, 스스로 자책하고 반성을 하면서 무얼 더 잘해보고자 할수록 관계는 더 늪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 들어갔다.
어떻게든 웃음을 지으며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면서 말을 건낼수록 돌아오는 것은 냉랭한 핀잔과 마치 적선하는 거지에게 툭 던지는 동전 같은 한마디 정도였다.
나를 가장 무기력하게 만든 것은 단지 나에 대한 무관심과 냉랭한 태도가 아니었다.
내가 가장 절망한 것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한 번도 내게 보이지 않던,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그 찬란한 환한 미소를 짓는 아내의 얼굴이었다.
누가 봐도 아내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단 몇 초도 나와 이야기하기를 귀찮아하는 아내에게 나는 한 달에 주는 생활비 외에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라는 것이 뼛속 깊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분노와 절망, 티끌 같은 희망과 낙담을 번복한 끝에 나는 결국 답 비스무리 한 것을 절규 같은 수없는 시도와 피드백을 통해 찾았고
이내 지금은 내가 바라던 이상향의 가족에 성큼 더 다가서게 되었다.
그 답은
가족에게로의 헌신에 있지 않았다.
내가 하던 그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공허한 혼자만의 독선이자 부담스런 구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