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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오모스 Nov 06. 2024

ep 7-2. 게으름 중독

나는 한때 게으름을 멸시했다. 

무기력과 나태의 다른 이름이라 믿었다. 


게으른 순간에 나는 스스로를 부정한다.  

'쓸모없는 존재,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삶의 목적이 흐려지고,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의 게으름은 좀 다르다. 

그 속에 묘한 균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게으름은 헛된 것을 밀어내고 

본질만을 남겨두는 일종의 선별이었다. 

내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시간이 

바로 게으름 속에 있었다.




나는 비로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나누게 되었다. 바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작고 단순한 행복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쩌면 게으름이 내게 은밀히 건네는 메시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덜어내라."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중요한 것만 남겨라." 게으름은 내게 그렇게 속삭였다. 복잡함 속에서도 간결함을 추구하는 마음, 에너지를 함부로 쓰지 않으려는 그 태도가 바로 게으름이었다. 나는 게으름이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나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뭔가 묘한 각성이 찾아왔다. 일이 많고 바쁜 나날 속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게으름 속에서 또렷이 보였다. 게으름이 내게 묻는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가?" "네가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인가?" 게으름 속에서 나는 더 선명해진다. 불필요한 것들은 저절로 밀려나고, 내게 정말로 필요한 것들만 남는다. 그 순간 삶은 단순해지고, 나라는 존재는 투명해진다.


가장 큰 선물은 불현듯 찾아오는 통찰이었다. 일을 앞에 두고 간단하게 해결할 방법을 궁리하게 될 때, 나는 게으름 덕분에 새로운 길을 찾아갔다. 프로그래머들이 반복 작업이 귀찮아 자동화를 발명했듯, 나 역시 게으름 덕분에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게 된다. “더 쉽게, 더 단순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을 던질 때, 게으름은 나에게 비밀스러운 지혜를 흘려준다. 게으름은 마치 삶의 불필요한 가지를 쳐내고 핵심을 남겨놓는 도구처럼 나를 돕는다.


내 안에는 언제든 타오를 준비가 된 불씨가 남아 있다. 게을렀기 때문에 나는 충분한 에너지를 축적해 두었다. 쉼과 게으름 속에서 천천히 쌓여 온 이 에너지는 내가 원하는 순간에 쏟아낼 수 있는, 불꽃같은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갈망하는 일에 힘을 다해 매달릴 수 있는 그 에너지가, 게으름 속에 차곡차곡 스며 있었다. 게으름이 나를 허망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나를 지탱해 주는 고요한 불씨가 되었다.


또 하나의 여백, 쉼을 허락해 준다. 쉼 없는 일상에서 걸음을 멈추게 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게으름은 느릿하게 나를 추슬러준다. 나의 몸과 마음이 천천히 정비된다. 그 느슨한 순간 속에서 나는 나라는 사람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게으름이 허락하는 그 여백은 마치 비가 온 뒤 개어 맑아진 하늘처럼 나를 정화한다.




이제는 게으름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단순히 나태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내가 정말 중요한 것들을 남기려는 

아주 작은 작은 결단이다. 


삶의 진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게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매 순간 부지런히 달려가지 않아도, 

내가 진심으로 지키고 싶은 것들만 

가슴에 품고 천천히 걸어가는 삶. 


그것이야말로 

게으름이 나에게 가르쳐준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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