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은 다 가치가 있다, 위화

보통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by 읽는 인간

오늘은 문학작품 보다 작가를 소개하겠습니다. 작품은 작가가 만든 세계의 산물이니 작가를 알면 작품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작가 중 루쉰魯迅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단연코 ‘위화余华’라 생각합니다. 대담이나 인터뷰에서 보인 작가의 소탈하고 유머러스한 모습도 큰 인기에 한몫 거드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형이상학적인 철학이나 고차원적인 인문학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삶 속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을 가장 쉬운 언어로 얘기합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받는 것 같습니다.


위화 작가가 그려내는 문학 세계는 우리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저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 생각합니다. 중국은 1911년 신해혁명부터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정책을 거치며 지난 110년의 광풍과도 같은 시대를 보내왔습니다. 아주 보통의 사람들에게 이 시기는 그저 견뎌야 하는 환경일 뿐입니다. 인생은 원래 그런 거니까요. 작가는 당시의 거친 시대상황에 판단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람 앞의 촛불처럼 시대상황에 힘겹게 휩쓸린 서민들을 애써 찾아 따스한 눈길을 보냅니다. 몇 년 전 김지윤 박사와 나눈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삶도 아쉬운 삶은 없습니다. 그 삶이 어떠한 삶이든지 간에 모든 삶은 가치가 있습니다.”


문학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오래전 작가의 한국어 서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문학 작품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분명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요? 위화의 작품을 읽을 때면 언제나 힘겹습니다. 들어가는 입구는 찾기 쉽지만 출구로 나오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출구를 찾기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작가가 만든 세상에서 계속 머무르고 싶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세계에는 악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특출 나게 빼어난 인물도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살았고 또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조금 모자라고 비뚤어졌을지언정 부끄러움을 압니다. 귀찮게 구는 사람에게 조차도 툴툴거릴지언정 끝내 손길을 내어주는 아량을 갖고 있습니다. 힘든 인생을 살아내는 무던함과 주위 사람들을 지켜내는 강인함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가슴 한구석에 타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는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들입니다. 바로 우리들처럼요.


위화 작가는 세상에 대한 세심한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그의 시선은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으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소외된 채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 우리 이웃들이 있습니다. 소외되고 남루한 삶일지라도 비참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따스합니다. 힘겨울수록 얼굴엔 웃음을, 가슴엔 사랑을 품고 살라며 조용히 다독거려 줍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들은 웃플지언정 심각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워주고 싶었을까요? 저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반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소설가 장강명은 위화 작품을 읽고 나면 주위 사람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합니다. 참 적절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이 들까요? 저는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의 대상이 되고 싶은 마음이 일깨워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위화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요. 그러한 마음이 공명되어 모든 독자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과 감정이 일깨워지면 우리 사회가 보다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오래전 도서관에서 위화 작품을 읽다 문득 아내가 생각나 문자를 보냈습니다.

“당신 밖에 없네.”

곧장 아내로부터 답신이 왔습니다.

“세상에 나한텐 당신밖에 없고, 당신한텐 또 나밖에 없잖아. 서로 위하면서 살아야지.”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국내에 십여 권 넘는 작품이 번역되었지만, 중국에서 출판된 시간 순으로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중단편들은 검붉은 피와 서늘한 죽음에 천착한 작가의 개인적 경험으로 조금 거칠게 느껴집니다. 반면, 장편작품은 중국 근현대사를 살아낸 소시민들의 아픔에 대한 작가의 공감과 반응입니다. 늦은 밤 조용히 책을 읽다 문득 ‘위화余华 타임’에 갇혀 가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하실 겁니다.


인생 (푸른숲, 1993) “고달픈 운명과의 우정”

잊고 있었던 삶에 대한 ‘의지’를 일깨워 줍니다. 인생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로 살아내는 것 같습니다. 중국 근대화의 광풍 속에서 질곡진 인생을 살아낸 주인공 푸구이가 말년을 회상합니다.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같습니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을 견디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려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춘성에게 푸구이와 아내 자전은 분노가 아닌 강인한 의지를 건넵니다. “춘성, 꼭 살아있겠다고 약속하게.”


허삼관매혈기 (푸른숲, 1995) “처자식을 위해 피를 팔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웃음과 눈물”

일상 속 무뎌졌던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이 작품을 읽으며 부모님의 고단했던 삶이 그려지고,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내의 수고로움이 보였습니다. 주인공 허삼관은 남루한 삶일지라도 선택적 상황이 아닌 온 인생에 걸쳐 올곧게 처자식을 지켜냅니다. 문화대혁명기의 광풍 속에서 아내 허옥란을 지켜낸 것도, 폭력의 광장에서 공포에 떨며 굶주린 아내에게 점심을 먹인 것도, 아들들의 마음에 움튼 엄마에 대한 의심을 지워버린 것도 언제나 허삼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허삼관은 그 어떤 지식인이나 달변가보다 현명합니다.


형제 (푸른숲, 2005) “삶의 궤적이 크게 다른 두 형제의 비극”

채울 수 없는 결핍과 욕망의 ‘모순’을 일깨워줍니다. 주인공들은 어딘가에서 그렇게 지내고 있을 듯한 인간군상들입니다. 순결한 영혼 송강, 결핍을 욕망으로 채우려는 이강두. 같은 시기를 지나왔지만 삶의 궤적이 크게 다른 이들 두 형제를 통해 중국 사회의 모순과 간극이 아프게 들춰집니다. 두 형제 사이에서 사랑과 욕망을 구분하지 못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임홍 까지. 두 형제와 주변 인물들의 변해가는 모습은 지난 40년 동안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중국을 휩쓸었던 광풍을 온몸으로 맞아낸 소시민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7일 (푸른숲, 2013) “나를 존재하게 했던 힘, 사랑을 찾아 헤맸던 그 7일”

사람을 위하는 마음과 사랑의 ‘힘’를 일깨워줍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이래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는 중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건들 속으로 들어가 희생자들을 만납니다. 그렇게 7일을 함께하며 깊이를 알 수 없는 억울함과 서러움을 가진 그들에게서 기어코 사랑의 기억을 한 움큼씩 끄집어 올립니다. 마침내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들에게 화해와 안식을 안겨줍니다. 연민과 애정이라는 단어조차 그 앞에서는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보잘것없고 하찮게 가려진 그들이지만 모든 사람은 사랑의 순간과 기억이 있다 말하며 우리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원청 (푸른숲, 2022)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원청이 있다.”

인생은 아름다운 그 무엇을 찾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시대를 넘어서서 일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청나라 말기 혼탁의 시대를 겪어낸 린샹푸와 샤오메이. 그들은 단지 아주 보통의 사람이고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사람일 뿐이니까요. 린샹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또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샤오메이도 저간의 사정은 있습니다. 광란의 그 시절에는 모든 것들이 급작스레 그러했나 봅니다. 린샹푸에게 샤오메이는 미치도록 찾아 헤매지만 절대 찾을 수 없는 도시 원청입니다. 마침내 린샹푸는 원청을 찾았을까요? 저는 찾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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