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슈 클리볼드

부모 기대와 아이 현실 사이의 괴리가 가져온 비극

by 읽는 인간

나는 내 아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수 클리볼드의 슬픈 고백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다 보면 이런 의문을 끊임없이 자문하게 된다. 부모가 청소년기 자녀를 세심히 살피고 적절하게 반응해야 하는 이유가 작가의 지나온 삶을 통해 덤덤히 드러난다. 이래라저래라 애써 충고하지 않는다. 그저 독자 스스로 돌아보게 만든다. 작가는 1999년 미국 콜로라도의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 딜런 클리볼드(당시 17세 고교생)의 엄마다. 번역서는 제목을 조금 다듬었지만 ‘Mother’s Reckoning’이 원제다. 1999년 사건을 기점으로 과거 17년 동안의 회고와 사건 후 17년 동안 겪어온 삶의 변화, 총 34년 동안 아들 딜런과 자신의 삶에 대해 덤덤하게 기록한 결산서(Reckoning)라 할 수 있다.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1999년)

당시 미국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해마다 수천 명이 총기사고로 목숨을 잃는 미국 사회의 총기규제와 10대 청소년기의 정신건강에 대한 거대 담론을 촉발시킨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개봉한 린 램지 감독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는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동명 소설을 각본으로 했기 때문에 실제 사건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끔찍한 사건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엄마를 중심으로 한 모자관계를 쫓는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작가가 통절하게 반성하는 부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영화와 책을 함께하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살인자의 얼굴에 가려진 상처

사건 가해자인 딜런(영화에서는 ‘케빈’이다.)의 범행 동기를 설명하기 위해 누구는 여성의 모성애에 대한 해묵은 담론을 끌어왔고, 누구는 사이코패스의 인과론에 대한 최신 논쟁을 끌어왔다. 1999년 컬럼바인 사건 당시도 그랬고, 2012년 영화 개봉 당시도 그랬고, 2016년 수 클리볼드의 책이 출판되었을 때도 그랬다. 임상 전문가들도 엄마나 아들, 또는 그 둘 모두를 놓고 병리학적 분석을 들이밀었다. 모자 관계의 본질은 뒤로하고 피상적으로 보이는 총기난사의 잔인함을 분석하는데 집중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논란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모자 관계를 중심에 놓고 들여다보면 끔찍한 살인자의 얼굴에 가려진 10대 아들의 상처받은 내면이 드러난다.


부모, 참 쉽지 않다.

책을 읽는 내내 ‘무의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무의식은 ‘나만 모르고 남들 눈에는 다 보이는 것’이다. 말은 서사일 뿐 행동만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 책은 참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나무처럼 상세 내용을 읽다 보면 '아 맞네 맞아 그래야 하는구나' 하면서 무릎을 치게 된다. 그러나 조금 멀리 떨어져서 숲을 들여다보면 '어 엄마가 왜 이걸 모를 수 있지?' 하면서 가슴을 치게 된다. 작가가 엄마로서 자신과 아들 사이의 이런 부조화를 깨닫게 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이 책은 역설적으로 저자의 의도와 달리 부모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10대 아이가 보내는 비언어적 구조 신호

딜런의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서 뭔가 부당한 일을 겪었음에도 아이가 괜찮다고 하니 그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것을 엄마는 사건 후 17년 내내 크게 후회한다. 아이가 공격적이고, 호전적이며, 무례하고, 화를 잘 내고, 적대적이고, 게으르고, 짜증을 잘 내고, 솔직하지 않고, 위생상태도 썩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사춘기라서 그런 거"라며 퉁 쳐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까다롭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 하는 아이는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한데도 말이다. 이런 성향의 변화는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조금이나마 힘이 생겼기 때문에 부모에게 도와달라 보내는 신호였는데.. 수차례의 비언어적 구조 신호가 부모로부터 외면되면서 결국 딜런은 최악을 선택을 하고 만다.


회피를 신뢰라 합리화하는 부모

자식을 믿는다 말할 때 속마음은 내 맘 편하자는 '회피'인데 따스한 '신뢰'라 자기합리화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일이다. 딜런의 부모는 총기난사 몇 개월 전부터 학교에서 불량 학생으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던 에릭 해리스(총기난사 공범)와 어울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실제는 어울려 다닌다기보다 에릭의 똘마니 짓거리를 하고 다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는 딜런을 믿는다는 이유로 적극 개입하지도, 구출하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결국 끔찍한 사건이 터지고서도 엄마는 딜런의 학교로 향하면서, 그리고 딜런이 수사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수없이 외친다. "이 모든 것들은 나쁜 놈 에릭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그런 거야. 우리 착한 딜런도 피해자라고."


아이는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보살핌의 대상이다.

10대 아이가 사고를 쳤다면, 평소 부모가 알던 아이의 모습으로는 절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일 것이다. 이때 부모는 흔히들 이렇게 착각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던 우리 아이가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아.

십 대 애들은 어리석은 짓을 하기 마련이야. 우리 아이는 착한 애니까 괜찮을 거야.

나쁜 친구를 만나 잠시 일탈한 것일 뿐이야. 곧 제자리로 되돌아올 거야.’

안타깝지만, 이건 오해나 실수가 아니라 부모가 알지 못했던 우리 아이의 다른 모습을 마주한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그 문제 아이에게 휘둘리는(적어도 영향권 내에 있는) 취약점을 가진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즉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 아이가 어떤 심리적 위험상태에 빠져 있는지 민감하게 살펴야 한다. 특히,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집에서 평소와 다른 행동(예를 들어, 게으름이나 침잠 또는 화내고 짜증이 느는 감정의 변화)을 보일 때는 야단치고 바로잡을 것이 아니라 이유를 잘 살펴 도움을 주어야 한다.

“네가 달라져서 우리는 겁이 나는구나. 무슨 일이 생긴 거니? 요즘 마음은 어떻니? 어떻게 도와줄까?”


부모의 과도한 도덕적 책임감은 아이를 병들게 한다.

최악의 결과는 어느 한순간의 큰 결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사소하거나 일상스러운 작은 결정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촉매제를 만나 큰 폭발을 일으킨다. 엄마는 아들 딜런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아이 이기를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강요’를 한 건 아닌가 싶다.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의 높은 도덕적 기준에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는 과도한 책임감으로 인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매우 엄격해지는 반면 절대 권력에는 쉽사리 굴복하게 된 것 같다. 독재자 에릭과 기꺼이 똘마니가 되는 딜런의 관계가 잘 설명해 준다. 이런 이유로 위기의 상황에 맞닥뜨린 아이는 타인에게 쉽게 휘둘리고 자신을 해치는 결정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려서 착한 아이가 성인이 되어 불효자가 된다.

우울감은 적개심의 칼끝이 자기 자신을 찌르는 감정이라 했다. 그렇다면 딜런은 뭐에 대한 적개심을 누르고 있었던 것일까? 학교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고,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게 핵심이다. 흔히 부모들은 자식과 대화를 잘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반면, 아이들은 부모가 만들어 놓은 착한 아이 상에 부합하기 위해 자신을 억누른 채 어긋나는 모습을 지능적으로 숨긴다. 그러니 부모는 우리 아이는 착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착각하고, 위기에 놓인 아이는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낮은 자존감과 우울감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 그래서 착한 아이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성인이 되어 힘이 좀 생기면 불효자가 되는 것이다.


10대 청소년 부모를 위한 최고의 지침서

이 책은 절대 우울하고 침울하지 않다. 오히려 십 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정말 좋은 지침서다. 딜런의 엄마가 34년을 곱씹으면서 눈물로 써 내려간 통절한 자기반성과 함께, 수많은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축적된 조언들이 총망라된 것이니 어찌 그 내용이 허투를 수 있겠는가? 336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장에서 내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부모의 기대와 아이의 현실 사이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엄마의 회상이었다.

“아들 딜런은 언제나 바른 행동을 하리라고 믿을 수 있는 아이, 스스로 뭐든지 알아서 하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그러니 딜런이 괜찮다고 말하자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함께 읽으면 좋아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반비출판사, 2016
<케빈에 대하여> 라이오넬 슈라이버, 알에이치코리아, 2012
<케빈에 대하여> 린 램지 감독, 넷플릭스, 2012
<Mother’s Reckoning> Sue Klebold, Crown press, 2016

<We need to talk about Kevin> Lionel Shriver, Harper Perennial,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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