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괴테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by 읽는 인간

고전 古典

오랜 시대를 거치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을 말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널리 읽히는 작품이라 하겠다. 대체로 인간 사회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저자의 평생에 걸친 인간 사회에 대한 사유의 결과물이다. 내용도 어렵고 깊은 사유와 사회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읽는 내내 큰 인내심을 요구한다. 나처럼 얇고 옅은 독자는 읽고 나면 뭔가 남는 게 없다. 딱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럼에도 평생을 들여 손에 잡고 있고, 삶의 연륜이 쌓이면 그만큼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게 고전이다. 내게 '파우스트 Faust'가 딱 그렇다.


파우스트 Faust

독일의 대문호 볼프강 괴테가 60년에 걸친 역작으로 인간 본성을 통찰한 대 서사시다. 인간의 지성을 상징하는 노년의 파우스트 박사를 놓고 신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벌이는 내기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간은 결핍과 욕망을 이겨낼 수 있을까? 신은 인간의 의지를 믿는다. 그러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어떠한 인간도 타락시킬 수 있다고 자신한다. 파우스트 박사가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름다운 순간(현재)에 멈출 경우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승리하고 그 대가로 파우스트 박사의 영혼을 가져가는 것이다.


닫힌 도서관

'파우스트 Faust'를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당시는 전교조가 처음 만들어지던 시절이라 학교 분위기 전체가 어수선했다. 전교조 신분으로 해직된 선생님들의 복직을 위해 혈기왕성하던 우리는 수업도 거부하고 운동장에 모여 연일 시위를 벌였다. 교련 선생님과 체육 선생님은 학생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든 막아섰다. 감시 그 자체였다. 당연히 4층에 위치한 도서관은 출입이 금지된 지 오래였다. 교련 선생님께서는 학력고사 준비를 해야 할 학생들이 무슨 독서냐며 도서관 출입에 면박을 주셨다. 3년 내내 자유롭게 출입했던 기억도 없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암울하고 폭력적인 시대였다.


국어 선생님

고등학생 시절 모든 선생님이 폭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좋은 추억도 많다. 내게는 국어 선생님이 그런 분이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께서는 꾀나 훌륭한 스토리텔러였던 것 같다. 연일 교실 출입문쪽 눈치를 살피시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려주시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게 처음으로 독서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알려주신 분이셨다. '파우스트'는 국어 선생님께서 필독서로 제일 먼저 꼽으셨던 책이다. 워낙 입담이 좋으셨던 분이라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나니 본 적도 없던 책인데, 벌써 다 읽은 듯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학교 도서관 출입조차 쉽지 않던 내게 '파우스트'는 금세 잊혔다.


파우스트를 읽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3 여름방학 때 시립도서관에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하려니 집중이 될 리 없었다. 무더운 날씨를 핑계 삼아 수시로 근처 서점에 드나들었다. 대형서점이라 하루 종일 책을 뒤적거려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연히 서점 가판대에서 '파우스트'를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1부, 2부가 한 권으로 묶여 꾀나 두꺼웠다. 용돈이 없던 나는 책을 살 수 없으니 며칠에 걸쳐 서점을 오가며 서서 읽었다. 서점에 들어설 때마다 누군가 책을 전날 사갔으면 어쩌나 하며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고3이던 내게 '파우스트'는 연극대본 비스름한 재밌는 소설이었다. 인류 최고의 지성이 담아낸 통찰이라던 국어 선생님의 서평과는 거리가 멀었다. 1부는 자극적인 스릴러였고, 2부는 넓은 세계관이 펼쳐진 판타지였다.


뭐든 소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소설책 '파우스트'는 국어 선생님의 서평과 함께 내게 흔적을 남겼다. 서점에서 며칠에 걸쳐 책을 훔치듯 완독 해본 사람만이 갖는 느낌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첫사랑과도 같은 강렬한 느낌이다. 대학생활 내내 국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통찰이 뭔지 이해하려 파우스트를 몇 번 더 읽었다. 문화예술회관에서 연극도 관람해 봤다. 평론가의 해설이나 출판사의 서평도 읽어봤다. 하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라는 게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평론가들은 과연 자기가 이해한 것이 무엇이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을까?"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한다.

1부 서곡에서 신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인간을 두고 한 말이다. 그야말로 인간 본성에 대한 괴테의 통찰이 담긴 문구다. '파우스트'를 통해 내가 뭔가 통찰이라 할만한 것을 느낀 것도 세월이 한참 흘러서다. 삶의 질곡이 쌓인 후에라야 그 말의 참 뜻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는 아직도 파우스트를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새롭다. 그래서 내게 고전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히 유효하다. 내용은 알고 있지만 읽은 적이 없거나, 읽은 적은 있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책. 그럼에도 두꺼운 책을 읽는다는 것,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노력한다는 것, 그 과정 자체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얻는다. '파우스트'는 내게 그런 책이다.


고전을 읽는 이유

내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용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사유의 힘을 기를 수 있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자기만의 시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사유와 시선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만들어준다. 그렇게 창을 통해 비친 세상은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고3 때 스릴러 판타지 소설로 느꼈던 책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고민하게 만들어 주듯이 말이다.


지리멸렬한 삶일지라도 멈추지 말라.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노화는 삶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시작된다.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하고 꿈꾸는 한 반드시 현실의 벽과 난제에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맞닥뜨린 난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우리네 삶이 아닐까 싶다. 200년 전 괴테는 신의 입을 빌어 '인간은 지향하는 한 방황하게 되며, 결핍과 욕망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알고 있다.'라고 말한다. 인간 존재의 의미와 인간성의 한계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묻는다. 그러면서 선악의 개념이 흐트러진 모순투성이의 삶일지라도 의지를 내려놓지 말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고 등을 토닥인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파우스트 1, 2', 정서웅 옮김(민음사), 스테디셀러

- '파우스트', 안인희 옮김(현대지성), 그림과 함께라 가독성 업

- '파우스트 1, 2', 전영애 옮김(길), 괴테 연구자의 완역본으로 가독성 좋음

- '불멸의 파우스트', 안진태 지음(열린책들), 너무 친절한 해설서


keyword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