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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 인간 Nov 21. 2024

프롤로그

방구석을 나뒹구는 내 책들에게

'이가고서점李家古書店'

파주 출판도시에 가면 꼭 들르는 중고서점이다. 고서적이나 절판된 책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을 때 마지막 희망을 안고 찾는 곳이다. 1층은 아주머니가 계시고, 2층에는 백발의 이가李家 할아버지가 계신다. 2층에 올라 찾는 책을 할아버지께 여쭤보면 인터넷 검색보다 반응 속도가 더 빠르시다. 있다 없다, 있으면 어디에 있다며 정확하게 위치를 찾으신다. 할아버지의 기억력에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찾는 책이 없더라도 2층에 빼곡히 쌓인 책더미를 뒤지다 보면 뜻밖의 책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중고서점의 추억'
요즘은 중고서점을 찾기 쉽지 않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지금의 커피숍만큼이나 흔했다. 당시 가난한 자취생이던 내게 중고서점은 용돈이 필요 없는 놀이터였다. 그 시절 중고서점 사장님들은 학생들이 책을 뒤적거려도 별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뭐랄까? 학생이 서점을 찾는 게 참새가 방앗간에 기웃거리는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한 번은 노란색 노끈으로 묶인 책 뭉치들이 통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사장님께 여쭤보니 사법고시에 합격하신 단골분이 그동안 고마웠다며 놓고 가셨다고 했다. 뭐가 고마우셨을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분신 같은 책 뭉치를 내놓으셨을지 쉬 짐작이 갔다.


'만화잡지 보물섬'

어릴 적 우리 집에는 별스럽게 읽을 책이 없었다. 가끔씩 도시의 외삼촌께서 가져다주시는 신문지 뭉치조차 뒤뜰에 열리는 배나무 열매를 감싸는 데 사용되었다. 종이가 귀하던 시골에서 신문지만큼 요긴한 게 또 있을까 싶었다. 벽지로도 쓰이고, 과실나무 열매를 감싸는 보호재로도 쓰이고, 종자를 담는 봉투로도 쓰이고 했으니 내게 읽을거리로 돌아올 순서는 없었다. 가끔씩 친구집에 들러 나눠 읽던 보물섬이나 청소년문고가 전부였다. 그때도 만화잡지 보물섬은 인기가 좋았고 글밥이 있는 청소년문고는 항상 뒷전이었다. 읽을거리가 마땅치 않던 시골이라 표지나 중간 페이지가 뜯긴 책도 내 순번이 되면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다.


'대학 도서관 사서 보조'

읽기에 대한 갈증으로 대학 시절 방학이면 도서관 근로장학을 신청했다. 사서 보조업무라 인기도서 대출 때 소소한 특권을 누리는 게 좋았다. 그때는 대출반납을 책 뒷면 도서대출카드에 수기로 기입하던 시절이다. 당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대출 1순위였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과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인기 장편소설답게 항상 대출 중이었다. 온라인이 없으니 학과 학번 이름을 대기자 명단에 적어놓고 날짜에 맞춰 방문하는 게 전부였다. 반납된 도서를 정리하던 나는 새치기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 상황도 모른 체 헛걸음을 하셨을 분들께 미안했단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제발 책 좀 치워!'

대학 때부터 용돈이 생기면 필요한 책을 사서 읽었다. 그렇게 십수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책들이 쌓였다. 그사이 아이들이 생기고 집이 좁아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의 장난감이 빠른 속도로 내 책 박스의 자리를 대체해 나갔다. 결국 눈 내리는 날 저녁에 책 박스 열댓 개를 내다 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세월이 흘러 상황은 비슷해졌다. 집은 넓어졌지만 여전히 집안 곳곳에는 책들이 쌓여있다. 나는 정리된 것이라 말하고 아내는 널브러진 책더미라 말한다. 집청소 얘기가 나올 때면 아내의 정리 1순위는 내 책더미다. 하지만 널브러진 책더미 속에서 문득 마주친 문장이 주는 말랑한 감정을 버리기엔 난 아직 젊다.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작가정신, 2013년)"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자국의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책과 함께 보낸 101통의 편지를 엮은 책이다. 저자의 편지를 읽어가다 보면 우리가 문학을 어떻게 읽어야 하고, 또 왜 읽어야 하지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브런치의 이번 스토리를 준비하면서 모티브로 삼은 책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 보면 인문고전 100선, 권장도서 100선, 베스트셀러와 같은 추천도서 목록이 넘쳐난다. 하지만 고전이 아니면 어떻고, 교보문고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또 어떤가? 이번 스토리를 통해 내 삶에 흔적을  남긴 책들을 나만의 시선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그래서 '추천'이라는 표현은 과하다. 그저 '공유'하고 싶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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