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몽상과 거짓말 사이를 오가는 잔인한 우화

by 읽는 인간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십자군 이야기'의 첫 문장이다. 내란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대한민국이 혼란에 빠져있다. 위정자들의 파행으로 시민들의 삶이 한순간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 그 위정자들을 시민들의 힘으로 언제든 막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요즘이다. 역사 교과서 현대사 챕터에 서술된 문장들을 21세기 우리 아이들이 체감하고 있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더구나 매일 같이 쏟아지는 뉴스를 보며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전쟁도 불사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문학동네, 2015)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로서 미디어를 통해 남성 중심의 서사에 익숙해 있던 내게, 전쟁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던져준 작품이다. 남성과 함께 전쟁을 치러낸 전우지만 그들 모두로부터 잊힘을 당한 여성 참전자들의 목소리로 기록된 작품이다. 내가 익히 알던 전쟁에서의 승전, 전우, 명장, 작전이 아닌 공포감, 절망감, 끔찍함, 처절함을 얘기한다. 전쟁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어떠한 참상을 가져오는지 담담히 증언한다. 그 어떤 강의와 교육보다 이 책 한 권의 독서가 반전反戰에 대한 이유와 의미를 일깨워준다. 참고로 작가는 201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아고타 크리스토프, 까치, 2014)

시국이 하도 어수선해 서론이 좀 길었다.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따로 있다. 헝가리 출신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작가가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발표한 세편의 소설(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앞선 알렉시예비치 작가의 인터뷰이들이 전장에서 보고 겪었던 참상과 다르지 않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 살아남아 그 폐허의 시기를 헤쳐 나간다는 것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들 모두 인간 본능에 기대고,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애써 감추면서 참혹한 시기를 견뎠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니까. 누군가 전쟁을 입에 올린다면 긴 설명 필요 없이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우리가 믿는 도덕과 윤리는 항상 옳은가?

많은 문학작품들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든 이야기를 익숙한 포맷에 담아 전달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재밌게 읽으면서 작가가 숨겨둔 메시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몽환적인 이야기를 익숙하지 않은 포맷에 담아 전달한다. 작가는 단 한 번도 소설 속 인물의 마음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저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독자가 그 마음을 가늠케 한다. 무감정 관찰자의 객관적 시선을 따라 매우 간결한 문체로 인간 본성을 드러낸다. 마침내 독자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만든다. 우리가 도덕과 윤리라 믿는 것들은 항상 옳은가? 타인을 위하는 마음은 순수한 이타심인가? 과연 그럴까?


한 편의 괴기스러운 우화

각 단편을 읽을 때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 얘기들로 혼란스럽다. 그러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엔 왜 한 권으로 묶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단편을 들여다보면 서로 단절되어 있다. 그러나 한 권으로 묶어서 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다. 1편은 2편의 중요한 사건에 속하고, 2편은 3편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소설을 통해 이별의 아픔을 얘기했다고 밝혔다. 자신이 겪은 조국, 모국어,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과의 이별이다. 소설 속 쌍둥이 형제 루카스 Lucas는 자신을, 클라우스 Claus는 오빠를 그렸다. 작가는 쌍둥이 형제를 통해 인간 존재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싶어 했다. 인간 존재의 조건을 찾기 위해 각 단편을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하자.


비밀노트(1986), 괴기스러운 우화

2차 세계대전의 참상으로 폐허가된 도시 ‘K시’. 그곳에서의 인간존재는 살았던 죽었든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모호 해진다. 도시와 인간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모두가 미쳐 날뛴다. 딱 두 사람, 쌍둥이 형제만 빼고. 그 둘은 오히려 덤덤하다. 쌍둥이 형제는 주체성이 강하다. 스스로 살 궁리를 한다. 뭐든 사감정이 없이 상대의 필요를 읽는다. 투사가 없다. 그래서 그 둘의 괴기스러운 행동이 오히려 정상처럼 느껴진다. 너희가 믿는 도덕과 윤리가 지금의 우리에게도 맞는 걸까? 라며 내가 묻는 것 같다.


타인의 증거(1988), 인간 존재에 대한 불확실한 증거

미완의 반사회주의 체제 혁명이 진행되는 와중에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되려 한다. 그들에게 도덕과 절제는 없다. 철저히 본능을 쫓는다. 1편 ‘비밀노트’의 정체가 밝혀진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망상인지 헷갈린다. 전쟁은 끝났지만 살아난 사람들에게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랑이 뭐냐는 청년 루카스의 질문에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노인 미카엘은 답한다. “희미해지고, 줄어들고,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라네.” 그렇게, 삶은 결국 또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사랑을 찾아낸다.


50년간의 고독(1991), 헝가리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

쌍둥이 형제 클라우스로 살아온 루카스. 루카스는 클라우스의 존재 증거를 찾을 수 없어 클라우스에 대한 자신의 기억이 망상이지 않을까 혼란스러워한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쌍둥이 형제 클라우스를 찾아낸 루카스는 그를 알아보는데 아무런 증거도 필요 없다며 클라우스를 확신한다. 그러나, 루카스와 달리 클라우스는 쌍둥이 형제가 서로 달리 기억하는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애써 감추기 위해 루카스의 존재를 부정한다. 클라우스에게 존재를 부정당한 루카스는 고통으로 부르짖다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클라우스는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이유가 없어졌음을 알게 된다.


인간 존재의 조건

552페이지에 걸쳐 3편을 모두 읽고 나면 혼란스럽고 허탈하기까지 하다. 작가가 말하려 했던 인간 존재의 조건이 무엇인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상실의 아픔이나 극단적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을 애써 감추려 한다. 적어도 들추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신을 내가 찾은 존재의 조건은 ‘기억’과 ‘기록’이다.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고, 왜곡된 기억은 기록을 조작한다. 그래서 존재 또한 거짓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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