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괜찮아.
나는 네 걱정이 더 돼, 서진아."
그 말은 언제나 초반 대사였다.
_괜찮아_로 시작되는 엄마의 말은
언제나 불안의 문장이었다.
"아빠도 그렇고, 서하는 또 뭘 그런 걸로 그러니.
나는 그냥… 다 좋게 지내고 싶은 거야."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제 안다.
고개를 끄덕이는 쪽이 이 집에선 살아남는 법이라는 걸.
"근데 말이야,
넌 말을 좀… 세게 하긴 해.
듣는 사람 기분이 상할 수 있잖아."
나도 기분 나빴다고 하면
“엄마가 언제 그런 의도로 말했니?”
“그건 네가 예민해서 그래” 라는 대사가 세트로 따라온다.
엄마는 상처를 줄 땐 무심했고,
상처를 받을 땐 확신에 찼다.
며칠 전.
서진은 말했다.
"엄마, 아빠가 요즘 밤마다 보일러 트는 거 알아?
다들 자고 있는데… 더워서 잠도 못 자."
엄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그냥 그러려니 해.
아빠도 나름 이유가 있겠지."
"근데 엄마, 그 난방비
엄마 통장에서 빠지는 거잖아."
순간, 엄마의 미소가 멈췄다.
서진을 향한 시선이 서늘하게 식었다.
눈물은 없었지만,
그 빈 눈동자엔 스스로를 탓하면서도
타인을 동결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래… 다 내가 못나서 그런 거지.
내가 잘났으면 이런 집구석 안 만들었겠지."
서진은 입을 다물었다.
그게 엄마를 위하는 일이라고,
오래전부터 배워왔기 때문이었다.
서진은 알아버렸다.
엄마는 평생 피해자처럼 살아왔지만,
그 방식으로 주변을 피로하게 만들었다는 걸.
엄마는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서진에겐 점점 가장 무거운 책임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서진은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는 동안
창문을 열었다.
밖은 조용했고,
실내는 여전히 따뜻했다.
"여보세요?"
"응, 그냥.
그냥 좀 누가 내 편인 느낌이 필요했어."
가장 오래된 상처는
누군가의 무심한 “나는 괜찮아”에서 시작된다.
《예민하긴》 1화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