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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20. 2024

둘.   장미와 맥주캔

헝가리.슬로바키아.폴란드-60대 부부 여행기


  이른 아침 세체니 온천을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가 숙소 앞에서 재밌는 풍경을 마주했다. 골목길에 버려진 붉은 장미 한 송이와 맥주캔. 혹시 누군가 쉽지 않은 밤을 보낸 것이 아닐까.     


  부다페스트에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1896년생 메트로가 있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이 메트로 1호선을 이용하면 세체니 온천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노란 칠을 한 메트로 입구로 내려가니 세상에! 메트로 플랫폼이 이렇게 엔틱 하다고? 나무와 타일을 이용한 벽이며 매표소도 그렇고 벽에 붙은 쓰레기통까지 오랜 세월이 곱게 스며든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때마침 플랫폼으로 노란 열차가 미끄러져 들어오는데 순간 시간이 과거로 빠르게 되감기 되고 있는 듯했다.     

세계문화유산 메트로1호선

  세체니 온천은 흡사 왕궁인가 싶은 외관부터 네오바르크 양식의 화려한 실내건축과 나무로 만든 탈의실까지 무엇하나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이 없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노천 온천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으려 두리번거리니 실내 온천을 즐기고 있던 노인분들이 어디를 찾는지 대번에 아시고 방향을 가리켰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따듯한 노천탕에 깊숙이 몸을 담갔다.       

세체니 온천

  점심은 길거리 음식으로 시작해 미슐랭에도 오르고 분점까지 냈다는 랑고스 맛집 <레트로 랑고스 부다페스트>에서 먹었다. 1인 1랑고스를 주문하고 보니 하나로 둘이 나눠 먹어도 가능한 크기였다. 피자와 비슷한 느낌인데 기름에 튀긴 도우 때문인지 좀 느끼해서 절반 이상을 남겼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야경으로 유명한 국회의사당과 도나우강이 있었다.     

랑고스

  헝가리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비로소 상상 속 이미지를 만났다. 감성 한 스푼을 풀어놓은 듯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건물이나 거리 풍경이 주는 감동도 여느 예술품 못지않다. 특히 인간의 수명보다 오래도록 한 자리를 지켜 온 건물에는 역사가 깊게 스며 있어 지나온 시대를 증언한다. 도나우 강변에 서 있는 국회의사당은 강 건너에서 보이는 야경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환호를 받지만 국회의사 입구 광장에서 보는 모습도 퍽 좋았다. 국회의사당과 넓은 광장을 배경으로 노란 트램이 지나는 풍경은 일부러 만든 세트장처럼 멋진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국회의사당 앞

  국회의사당 뒤가 바로 도나우강. 푸른 도나우라는 수사가 무색하게 도나우강은 빠른 유속 때문인지 누런 흙탕물이었다. 도나우강을 따라 세체니 다리까지 걸었다. 너른 강폭과 낮은 스카이라인 덕분인지 불어 가는 바람도 막힘없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부다페스트는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서쪽 왕궁이 있는 언덕을 부다, 동쪽 넓은 평지 지역은 페스트로 두 곳을 합쳐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세체니 다리를 걸어 부다 쪽으로 건너갈 생각이었으나 다리는 몇 개월째 공사 중이라 인도 쪽 진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지나는 택시를 이용해 도나우강을 건너 푸니쿨라를 타고 언덕 위에 있는 부다 왕궁으로 올라갔다.      

도나우강
부당왕궁에서 보이는 페스트지역

  부다 왕궁에서 보이는 도시는 아득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수은주가 25도임에도 정수리로 쏟아지는 햇살이 어찌나 뜨거운지 그늘이 없는 곳에 오래 있기는 쉽지 않았다. 넓은 그늘을 가진 왕궁 뜰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다리도 쉬었. 


  언덕을 내려가기 위해 푸니쿨라를 타러 갔는데 왕복 티켓이 어디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남편이 걸어 내려가겠다며 자신의 티켓을 주고 손을 흔들며 나가  푸니쿨라를 타기 위해 서 있던 사람들이 웃으며 더러 박수까지 치는 바람에 어찌나 민망하던지. 아무튼 남편과 밑에서 잘 만났다는 얘기.     


  마차시 성당과 어부의 요새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역대 왕들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마차시 성당의 외관은 빈에 있는 슈테판 성당을 연상케 했다. 약 50여 년간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이었던 역사가 있으니 그 유사함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차시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성곽이 어부의 요새인데 이곳에서 강 건너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혼잡함을 뒤로하고 마차시 성당 앞에서 페스트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

  버스에 앉아서 밖을 보고 있는데 마침 수업을 마친 청소년들이 와르르 버스에 오르며 삽시간에 버스 안은 청소년들의 왁자한 수다와 웃음으로 가득 찼다. 배가 나왔든 말든 아랑곳없이 크롭티를 입은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흔히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외모지상주의를 말하곤 하는데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것이 외모지상주의라고도 하니 다양성 보다 타인의 시선과  경직된 기준이 수북한 우리 사회가 새삼 답답하고 씁쓸했다.  (202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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