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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24. 2024

셋.   글루미선데이는 없었다

헝가리.슬로바키아.폴란드-60대 부부 여행기


*

  아침부터 숙소 인근에서는 아트마켓 준비가 한창이었다. 숙소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성 이슈트반 성당을 가려고 나섰다. 헝가리 초대 왕인 성 이슈트반 1세를 위해 세워진 성당이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중앙 정면에 특이하게 가로줄이 두 개인 십자가를 들고 서 있는 성 이슈트반을 볼 수 있다. 제법 많은 유럽의 성당들을 보았지만 중앙에 성삼위가 아닌 성인을 모신 성당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성당 안에는 성 이슈트반의 오른손이 유리관 안에 보존되어 있어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성 이슈트반에 대한 헝가리 국민들의 지극한 사랑이 느껴졌.

성 이슈트반 성당

  성 이슈트반 성당 인근 도로에서 영웅광장까지 곧게 뻗은 도로를 언드라시 거리라고 부른다. 언드라시 백작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 당시 일부를 제외한 자치권을 얻어냈던 인물이다. 여기에는 오스트리아 황후 씨씨의 도움이 있었다고도 하는데 이로 인해 두 사람의 염문설이 돌기도 했다. 언드라시 거리에는 헝가리 국립 오페라하우스와 리스트 기념박물관도 위치해 있었다. 마차시 성당과 마찬가지로 헝가리 오페라하우스도 빈에 있는 오페라하우스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헝가리 국립 오페라하우스

  리스트 기념박물관은 도로에서 살짝 들어간 곳에 있어 모르고 지나쳤다가 다시 되짚어 찾아갔다. 리스트가 5년간 살았던 곳에 마련된 기념박물관은 그 가족들이 운영하고 있다고 읽은 듯하다. 박물관은 소박하고 아담했다. 박물관 2층의 티켓 오피스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 영락없이 사진 속의 리스트를 닮았다.   

캐롤린

  리스트가 사용했던 피아노들이 있는 방 벽면에 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캐롤린의 사진걸려 있었다. 주변인들의 방해로 끝내 결혼에 이르지 못했던 두 사람의 안타까운 인연이 생각났다. 리스트는 당시 작곡가보다 연주자로 더 유명했다는데 특히 그는 악보를 외워 연주한 최초의 연주자였다고 한다. 연주자의 해석과 감정이 녹아 있을 테니 그 느낌이 사뭇 다를 수밖에 없겠지.     

언드라시 거리

  언드라시 거리는 2/3가 인도로 구획되어 있어 걷기에 좋았다. 사람 중심의 도로 디자인은 도시의 품격을 한결 돋보이게 해 준다. 14명의 헝가리 영웅들이 있는 영웅광장에 서니 온몸으로 뜨거운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때 이른 더위 때문인지 점심으로 먹은 뜨거운 쌀국수 때문인지  햇빛 속을 걷기가 만만치 않았다. 영웅광장 뒤로는 세체니온천을 비롯해서 시티파크, 미술관, 버이더후냐드성 등이 있었다. 시티파크에 들어서자 애국가의 작곡자이자 친일 행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안익태의 흉상이 잔디밭 한쪽으로 보였다.

(시계방향으로) 영웅광장.안익태흉상.버이더휴냐드성

  루마니아에 있는 드라큘라성을 본떠지었다는 버이더휴냐드성을 돌아보고 넓은 공원을 가로질러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저녁에 야경을 볼 계획이라 간단하게 장을 봐서 숙소로 컴백. 이맘때 유럽은 체리와 블루베리를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부다페스트에는 체리보다 블루베리가 많아 마트에 갈 때마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잠깐의 오수를 즐기고 저녁도 일찌감치 먹고 나서 도나우강의 야경을 보기 위해 국회의사당 쪽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메트로 2호선을 이용해 도나우강을 건넜는데 강 밑으로 다니는 지하철이다 보니 에스컬레이터의 길이가 엄청났다. 게다가 속도도 상상 이상이라 단단히 마음먹고 올라타도 휘청~ 내릴 때는 까딱하면 앞으로 곤두박질치기 십상이었다. 예전에 홍콩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속도에 놀랐었는데 그건 명함도 못 내밀 지경.    

  도나우강변에 앉아 해 질 녘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간간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기우는 해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을 하염없이 보고 앉아 있는데 이어폰을 끼고 책을 읽고 있던 옆자리 청년이 웃으며 사진 찍어드릴까요? 한다. 그러더니 그 큰 키로 앉았다 섰다 자세를 바꿔가며 어찌나 열심히 찍어주던지. 땡큐 쏘 머치!     

도나우강 건너에서 본 국회의사당

  시나브로 해는 지고 풍경도 다채롭게 색을 바꿔 입었다. 강 건너 국회의사당이 불을 밝히자 그 모습을 뷰파인더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강 건너에는 마치 국회의사당 건물 하나만 있는 듯 건물 하나가 주는 존재감이 대단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이 풍경 하나가 세계인을 끌어모으는구나 싶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강변의 건물들을 소수가 사유화해서 마음대로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이렇게 중요한 것인데.     


  다시 국회의사당 쪽으로 건너와 부다왕궁과 어부의 요새가 보이는 강 건너 언덕을 바라보며 걸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강변에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며 밤을 즐기고 있었다. 시간은 밤 10시가 넘고 있었지만 마침 금요일이라서인지 거리 전체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오전에 갔던 성 이슈트반 성당 앞을 지나게 됐는데 스피커 소리가 꽝꽝 울렸다. 성당 에 무대를 설치해 놓고 화려한 조명까지 쏘면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성당 앞 야외테이블에는 공연을 즐기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 이런 분위기 이런 유연한 상상력에 감동받는 사람 , 다.  (20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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