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에서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돌아오니 오후 5시. 시간이 좀 빠듯했지만 어제 비 핑계로 가지 못했던 두 곳 중 한 곳인 베긴 수도원을 가기로 했다. 중앙역에서 멀지 않아 걸어도 됐지만 오후 6시면 문을 닫으니 지하철을 이용했다. 지하철로 딱 한 정거장. 마음이 급할 때면 가끔 구글맵이 알려주는 방향이 헷갈릴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지하철 출구에서 방향을 잡지 못해 잠시 버벅거렸다. 구글맵까지 세트로 느리게 잡히는 바람에 함께 헤매느라 시간이 더 지체됐다. 게다가 담 광장 앞이라 사람들은 또 어찌나 많던지. 모로 가도 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으니 잠시 헤매긴 했으나 도착.
베긴수도원과 성당
베긴 수도원은 12세기에 신앙이 독실한 여성들이 병자를 돌보고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종교 공동체였다. 여성들은 수녀가 아니었고 평생 은둔 생활을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또한 종신 서약을 할 필요도 없었다. 조건은 미혼이라는 것이었지만, 원하면 베긴회를 떠나 언제든지 결혼할 수 있었다고 홈페이지에 적고 있다. 수년 전 베긴회의 마지막 회원이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는 아이가 없는 미혼 여성들이 살고있다고 했다.
베긴 수도원은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집들과 교회, 성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안뜰 일부 그리고 교회와 성당만 개방하고 있었다.
입장 마감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도착해 유쾌한 문지기 아저씨의 파이팅을 받으며 수도원으로 들어섰다. 수도원은 번화가 한가운데 있었지만 뜰로 들어서니 피안의 거처인양 고요했다. 도심의 오아시스라는 표현 그대로였다. 작은 성당에 들어가 앉았다. 장소가 주는 힘이 이런 것인지 조금 전 길을 찾느라 분주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바쁘게 둘러보는 대신 남은 시간만큼 성당에 앉아 있기로 했다.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2024.5.17.(금)
여행 5일째인 오늘, 잔세스칸스 마을에 다녀오기로 했다. 암스테르담에 가면 형형색색의 튤립이 지평선까지 이어진 곳과 간간히 풍차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은 여행 일정을 짜기 위해 암스테르담 정보를 확인하면서 턱도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풍차를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로 20분 떨어진 잔세스칸스라는 마을이었다.
중앙역을 출발한 기차가 잔세스칸스역에 정차하니 사람들이 우르르 기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줄줄이 마을 길로 들어섰다. 사람들을 따라 마을 안으로 20분 정도 걸어 들어가니 커다란 풍차 하나가 서 있고 이어서 강이 보였다. 잔강이었다. 그리고 다리 너머로 강을 따라 풍차들이 서 있었다.
국토의 1/4이 바다보다 낮은 네덜란드는 홍수가 나면 땅이 쉽게 물에 잠겨 높게 제방을 쌓고 그 위에 주거지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 제방을 ‘담(dam)'이라고 하는데 암스테르담, 로테르담처럼 담으로 끝나는 도시가 많은 것은 강에 제방을 쌓고 주거지를 만들면서 형성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9,000개에 가까운 풍차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전국에 1,000개 정도가 관광용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 풍차들이 있는 제방길로 들어서니 아닌 게 아니라 강수면보다 제방 안쪽의 지표면이 확연히 낮았다. 생존을 위해 오랜 시간 땅에 차오른 물을 부지런히 강으로 빼내줬던 풍차들은 이제는 공방으로, 카페로 또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지원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제방을 따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풍차까지 걸었다. 강물은 풍차 발치까지 와서 찰랑거렸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성니콜라스교회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중앙역 건너에 있는 성니콜라스교회와 눈물의 탑을 보고 가까운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서교회와 안네의 집이 있는 요르단지구 쪽으로 가려고 길을 찾다가 홍등가를 다시 지나게 됐다. 구글맵이 알려주는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양쪽으로 반지하 정도의 깊이에 붉은 등을 밝힌 쇼 윈도우가 있었고 그 안에 반라의 여성들이 앉아 있는 것이 시야 끝으로 흐릿하게 들어왔다. 아차 싶어 미안한 마음에(이 마음이 왜 드는지 모르겠지만)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왔다.
서교회 안에 있는 램브란트 묘지
서교회 앞 안네의 동상
램브란트의 묘지가 있는 서교회는 행사가 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남편이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 사진만 한 장 찍었다. 서교회 앞에는 안네의 동상이, 그리고 서교회 옆에는 안네의 집이 있었다. 여행준비를 하며 안네의 집을 예약하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갔으나 풀부킹. 예약은 25일 전부터 가능했다. 보통 한 달을 기준으로 잡는데 25일 전은 염두에 없던 것이라 놓치고 말았다. 혹시나 취소가 생길까 매일 확인했지만..
서교회(왼쪽)와 안네의 집(오른쪽)
운하를 건너 서교회와 안네의 집이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과거 노동자들이 주로 살았던 요르단지구는 이제 인기 좋은 핫플이 되어 골목골목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을 지나는 운하 또한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하로 꼽힌다. 요르단지구에 있는 옷가게 쇼윈도우에는 밥 말리가 프린팅 된 옷이 걸려 있었다. ‘no woman no cry’ 무대에서 그가 울며 부르던 no woman no cry.. 그가 바라던 세상은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