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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Nov 01. 2024

탄성이 나오게 한 창문 밖 풍경

매일 보니 몰랐던 풍경들

초집중 모드로 글을 쓰고 있던 중 문득


두 번째 공저를 쓰고 있는 중이다. 첫 번째 공저 쓰면서 힘들었지만 그만큼의 보람이 있었기에, 두 번째 공저도 쓰기로 했다. 같은 과정을 또 거쳐야 하니 아는 게 더 무섭다고 진도가 안 나간다. 그래도 질질 끌면 더 힘드니 후다닥 써버리기로 작정하고 글을 쓴다.   

초집중 상태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노트북 화면 뒤 창문으로 뭔가 희여 멀건 한 것이 떨어진다. 비가 오나 싶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빨리 글을 써야 했으니까. 무언가가 계속 떨어지는데 덩어리가 크다. 비는 아닌데 눈인가 하며 노트북에 고개를 박고 있는데 갑자기 '지금 눈이 온다고? 10월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는데, 아! 탄성이 절로  나왔다. 자판 위의 내 손이 그대로 멈췄다.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이리 와 봐!"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낙엽을 우수수 떨어 뜨리고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나무들이 세게 부는 가을바람에 후드득 후드득 노란 잎, 갈색 잎들을 떨구고 있었다. 색색깔의 잎들이 바람이 잦아들면 둥실둥실 떠다니고, 바람이 세지면 흩날렸다. 


이 자리에서 낙엽을 떨구는 나무들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매일 이 책상에 앉았었는데, 고개 들면 단박에 보이는 풍경인데, 이 집에 산 지 몇 년 째인데... 낙엽 떨어지는 모습을 처음 본 아이처럼 멍한 상태로 창밖을 보았다. "무슨 일인데" 하면서 달려온 큰애가 "와! 멋지다. 벚꽃이 날리는 것 같아!"하고 외쳤다.


이곳이 내가 사는 집이 아니라 펜션이라면, 이 자리야말로 나무 보며 하늘 보며 멍하니 앉아 차 한 잔 마실 자리인데. 책 읽다가 졸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나무들이 흔들거리고 새가 날아가는 풍경을 볼 수 있는 자리인데. 현실속 이 곳은 매일 내가 잠자고 눈뜨며, 옷 갈아입고 외출 준비 하고, 일 마치고 돌아오면 뻗어버리는 공간인 안방이다. 자연의 변화에 탄성을 지르기에는 너무 익숙한 공간.



책상 앞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커튼을 걷으니 나타난 풍경


창가 앞 나의 작은 책상은 주로 새벽이나 밤늦게, 아이들 자는 시간을 활용해 무언가를 하는 공간이었다. 새벽과 밤 이 자리에 앉으면 발이 시리고 으슬으슬 추웠다. 창문을 통해 바람이 슝슝 들어왔다. 그러니 커튼을 치는 것은 필수였다. 어차피 깜깜시간대니 창밖 풍경은 상관없었다. 시골집은 도시의 집보다 추운데, 이 방은 우리 집에서 제일 춥다. 그러다 보니 보온을 위해 낮에도 항상 커튼이 쳤었다.   


낮 시간에 나의 일하는 장소는 거실에 있는 커다란 책상이었다. 홈스쿨링하는 째 아이의 공부를 봐줘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가 공부하는 동안 나는 맞은편에 앉아서 강의 준비도 하고 글도 썼다. 아이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수다도 떨면서 함께 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홈스쿨링에 익숙해지자, 나는 슬슬 안방에 있는 책상으로 글 쓰는 소를 옮기는 시도를 했다. 마주 보고 앉아 일하고 공부하는 순간이 좋기도 했지만, 집중해서 글 쓰는 도중에 아이가  말을 걸면 성가시기도 했다. 게다가 거실이라는 공간은 부엌과 연결되어 있어 살림거리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시도가 성공하여 격적으로 나의 책상에서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따뜻한 낮 시간에 나의 책상에서 글을 쓰니 창문을 덮고 있던 커튼을 활짝 걷을 수 있었다. 쨍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도 바쁘게 일하다 보면 창 밖 풍경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글을 쓸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얼른 글을 써두고 돈벌이를 위한 일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한다. 렇게 쫓기는 마음으로 글을 쓰다 만난, 눈처럼 비처럼 쏟아지는 낙엽들이었다.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속 사진이 생각났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있자니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 본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작가가 자신의 거실 창에서 까치발을 들고 찍었다는 나무들의 사진이다. 같은 장소의 사계절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작가는 이 집에 이사 와서 너무 좋았다고 했다. '거실에 누워 있을 때도, 거실에 앉아 책을 읽다가도,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면 푸르른 나무를 볼 수 있'어서. 그러나 계약기간이 3년이었다. 3년이 지나면 나가야 할 집이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딱 3년 동안만, 지금의 이 풍경과 함께 할 수 있는 셈'이라는 것을 알게 된 작가는, '매일 하루씩 사라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고 했다. 그리하여 각각의 계절에 가장 근사한 하루를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사진을 찍어 기록에 남긴다. 그 계절을 맞이할 기회가 세 번밖에 남지 않았으므로.(<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작가가 말하는 고개만 들면 나무가 보이는 집에서 나는 계속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시골로 이사 온  뒤 두 번의 이사를 했지만, 내내 나무들이 보이는 곳에서 살았다. 작가에게는 3년이라는 제한된 시간이 있었기에 그 모든 계절이 소중했다. 눈이 쌓인 나무들도 3번, 낙엽 지는 나무들도 3번, 새잎이 가득한 나무들도 3번 밖에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나에게는 제한된 기간이 없었다. 그러니 눈앞의 축복들을 그냥 흘려버렸다.


'사계절 관찰자'가 되어보자


떨어지는 낙엽들을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다. 김신지 작가의 시간보다 짧을 수도 있다.

벚꽃이 지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몇 번이나 이 꽃들을 보게 될까 헤아려본 적이 있다. 나이가 드니 자주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내 방 창문으로 보이는 나무들의 낙엽 지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게 될지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어 당장 내년에는 이 모습을 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사 간 집 역시 나무가 많아도, 이 창문 밖 풍경과 같은 곳은 지구상에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는 작가가 자신의 비공개 부계정에 올리는 '#매일아침하늘'의 일부 사진이 담겨 있다. 작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실 창문을 열고 그날 창밖 풍경을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하늘 2: 나무 1'의 비율로 기록하고 있단다. 나도 작가를 따라 우리 집 거실 창밖 풍경 사진을 찍어본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에 부계정을 만들고 사진을 올렸었는데, 며칠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어 인증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 핸드폰 속 갤러리를 뒤져보니 특별한 날에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김신지 작가의 팁을 받아, 가능한 한 비슷한 구도로 사진을 찍으려고 했었던 사진들이다. 작년 겨울 함박눈이 올 때, 올해 초봄 초록이 시작될 무렵, 7월 하늘이 너무 예뻤던 날. 이렇게 겨울, 봄, 여름의 사진이 있었다.  


우리 집 거실 밖 풍경, 가장 왼쪽 12월 눈 오는 날, 가운데 3월, 오른쪽 7월


매일 보던 장면이라 변화하고 있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창문 밖 풍경이다. 그래도 나름 멋진 날이라고 생각될 때만이라도 이렇게 사진을 찍어 모아 놓으니 하나의 기록이 되었다. 글쓰기라는 일에 쫓겨 쏟아지는 낙엽들을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늘어놓아 볼 생각도 하지 못했을 사진들이다.


‘사계절 기록가’는 ‘사계절 관찰자’가 됩니다. ‘한 계절에 한 장씩’ 사진을 남기려면, 이번 계절의 가장 근사한 날이 언제일지 풍경을 곰곰이 지켜봐야 하니까요. 봄의 가장 근사한 장면, 여름의 가장 근사한 장면, 가을의 가장 근사한 장면, 겨울의 가장 근사한 장면을 남기는 게 혼자만의 숙제인 셈입니다.

-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커튼을 열어젖힌 채 안방 나의 책상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낙엽이 지기 전이어서 다행이다.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이렇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가을을 넘어 겨울이 오겠지. 가을의 근사한 장면을 찾았으니, 이제 겨울의 근사한 장면을 찾아봐야겠다.  우리 집 안방과 거실의 '사계절 관찰자'가 되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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