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모수와 하-백[河-伯] (4/4)
달아난 딸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하-백에 대해, 동명왕편 주석은 이어 그가 화를 내고 - 해모수가 아직 머물던 웅심-산 아래, 압록-강 물가의 집으로 - 사신을 보냈다[B-9:①-③]고 적었습니다. 이어 그렇게 이른 사신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자, 해모수가 사신에게 자신은 천-제의 아들이며 지금 하-백의 딸과 - 유화와 - 혼인하였으면 한다고 말하였다[B-9:④-⑭]고 적었습니다.
B-9 동명왕편 주석: <① 하-백이 ● 크게 ② 화를 내고 ③ 사신을 보내니 ● (사신이) ④ 알려 ● 말하기를 "⑤ 너는 ⑥ 어떠한 사람이기에 ⑦ 나의 딸을 머무르도록 하는가?"라고 하였다. ⑧ (천-)왕이 ⑨ 답하고 일러 ● (말하기를) "⑩ 나는 ⑪ 천-제의 아들이며 ⑫ 지금 ● 바라기를, ⑬ 하-백(의 딸)과 더불어 ⑭ 혼인을 맺었으면, 한다."라고 하였다. ⑮ 하-백이 ● 또한 사신을 보내니 ● (사신이) ⑰ 알려 ● 말하기를 "⑱ 네가 ● 만약 ⑲ 천-제의 아들이고 ⑳ 나에게 혼인을 구함이 있는 이라면, ● 마땅히 ㉑ 중매하는 사람[媒]을 시켜 ● (그 사람이) ㉒ 운운云云. ㉓ 지금 ● (너는) 곧바로[輒] ㉔ 나의 딸을 머무르도록 하는데 ㉕ 어째서 ㉖ 그리하여[其] ㉗ 예를 잃는가?"라고 하였다.> <①河伯●大②怒③遣使●④告●曰⑤汝⑥是何人⑦留我女乎⑧王報云●⑩我⑪是天帝之子⑫今●欲⑬與河伯⑭結婚⑮河伯●又⑯使●⑰告●曰⑱汝●若⑲天帝之子⑳於我有求昏者●當㉑使媒●㉒云云㉓今●輒㉔留我女㉕何㉖其㉗失禮>
돌아간 사신이 전한 해모수의 답을 들은 하-백이 그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때문에 동명왕편 주석은 이어 하-백이 사신을 다시 보내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이라도 혼인을 구하는 사람인데 중매하는 사람을 보내지도 않고 자신의 딸을 곁에 머물도록 하는 것은 예를 잃은 일이라고 하였다[B-9:⑮-㉗]고 적었습니다. 해모수의 말을 믿지 않고서 다만 딸을 돌려주도록 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동명왕편 주석은 해모수가 부끄러워하며 하-백을 보려 하였다[B-10:①-④]고 적었으니, 바라던 대로 하-백을 만나기 위해 사신을 따라 그 가까이 가서 그 집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동명왕편 주석은 이어 해모수가 하-백의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B-10:⑤]고 적었으니, 앞서 살핀 바와 같이 하-백은 해모수가 과연 스스로 말하는 대로 천-제의 아들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B-10 동명왕편 주석: <① (천-)왕이 ② 그것[之](= 예를 잃음)을 부끄러워하고 ③ 바야흐로 ④ 가서 하-백을 보려 하였으나 ⑤ (하-백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 (천-왕이) 바라기를, ⑥ 그 여자(= 유화)를 놓아 보냈으면, 하였다. ⑦ 여자(= 유화)가 ● 이미 ⑧ (천-)왕과 더불어 ⑨ 정情을 바로잡아(= 정이 들어) ⑩ 떠나 가려 하지 않고 ● 이어 ⑪ 왕에게 권하여 ● 말하기를 "만약 ⑫ 용 같은 말들[龍]이 끄는 수레가 있다면 ● (그 수레는) ⑬ 하-백의 국國에 이를 수 있다."라고 하였다. ⑭ (천-)왕이 ⑮ 천天을(= 천이 있는 방향을) 가리켜 ⑯ 알리자 ⑰ 조금 뒤에[俄] ⑱ 5(마리) 용 같은 말들이 끄는 수레가 ⑲ 비어있던[空] 곳으로부터 ⑳ 내려왔다. ㉑ (천-)왕이 ㉒ 여자와 더불어 ㉓ 수레를 타니 ㉔ 바람[風], 구름[雲]이 ● 갑자기 ㉕ 일어났고 ● (수레는) ㉖ 그(= 하-백의) 궁에 이르렀다.> <①王②慙之③將④往見河伯⑤不能入室●欲⑥放其女⑦女●旣⑧與王⑨定情⑩不肯離去●乃⑪勸王●曰如⑫有龍車⑬可到河伯之國⑭王⑮指天而告⑰俄⑱而五龍車⑲從空⑳而下㉑王㉒與女㉓乘車㉔風雲●忽㉕起㉖至其宮>
이에 해모수는 유화의 움직임을 통해서 하-백에게 이를 곧 그 집에 들어갈 방법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동명왕편 주석은 이어 해모수가 유화를 돌려보내려 하였다[B-10:⑥]고 적고, 이어 유화는 해모수에 대한 뜻[情]을 정하여 떠나지 않고서는 용 같은 말들이 끄는 수레가 있다면 하-백의 국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B-10:⑦-⑬]고 적었습니다.
앞서의 장에서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해모수가 그리고 동명이 도읍한 흘승-골-성이 있던 골-령과 해모수의 아버지가 머물던 환桓 곧 환나 사이에는 황-룡이라고 하던 무리가 머물러 있었습니다. 뒤에 동명의 아들 유리의 아들 해명이 머물고 있던 옛 도읍[古都] - 흘승-골-성 - 에 사신을 보내 활을 주었던 왕이 다스리고 있던 황-룡-국[2장 4편 #10 Q-3:①-⑧]에 있던 무리입니다.
2장 4편 #10 Q-3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명왕) 27년 봄 01월 ① 왕태자 해명解明이 ② 옛 도읍[古都]에 있었다. ● (해명은) ③ (강한) 힘을 가졌고 ④ 사나움[勇]을 좋아하였는데 ⑤ 황-룡-국[黃-龍-國]의 왕王이 ⑥ 그것[之](= 해명이 강한 힘을 가지고 사나움을 좋아함)을 듣고 ⑦ 사신을 보내니 ● (사신이) ⑧ 강한 활을 (해명에게) 주는 물건[贈]으로 하도록 하였다.(琉璃明王)二十七年春正月①王太子解明②在古都●③有力④而好勇⑤黃龍國王⑥聞之⑦遣使●⑧以强弓爲贈
이 무리는, 광개토-왕 훈적-비가 뒤에 세상의 자리를 즐거워하지 않던 동명에게 천天이 황-룡을 보냈다[2장 4편 #9 AA-2:②-③]고 적은 것이 보여주듯, 본래 천天 곧 천-제[天-帝]라고 하던 해모수의 아버지를 따랐습니다. 때문에 유화는 용 같은 말들 - 황-룡이라는 이름이 비롯된 까닭으로 보이는, 그 무리가 머물던 곳의 말 - 이 끄는 수레를 보이면, 하-백이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임을 믿어 집으로 들일 것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2장 4편 #9 AA-2 광개토-왕 훈적-비: (추모-왕이) ① 세상[世]의 자리[位]를 즐거워하지 않으니 ② 천天이 ③ 황-룡[黃-龍](=노란색 용)을 보냈고 ● (황-룡이) ④ (천의) 아래에 와서 ⑤ (추모-)왕을 맞이하였다. ⑥ (추모-)왕이 ⑦ 홀본(-천)에서 ⑧ 동쪽으로 가서 ⑨ 언덕[罡]에서 ⑩ (황-)룡龍의 목[頁]에 나아가 ⑪ 천에 올랐다[昇]. ①不樂世位②天③遣黃龍●④來下⑤迎王⑥王⑦於忽本⑧東⑨罡⑩履龍頁⑪昇天
그런데, 그런 사실을 하-백은 어떻게 알고 맏딸인 유화에게 알려줄 수 있었을까요? 앞서 살핀 바와 같이, 하-백은 흘승-골-성을 떠나 옛 현토-군의 땅에 와서 다스리던 부여-왕 해부루를 보았기에 흘승-골-성의 가까이 있던 말이 끄는 수레를 알게 되었고, 또한 그 뒤에 흘승-골-성에 이르는 길을 오고가던 사람들을 통해 흘승-골-성에 천-제의 아들이 머물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 동명왕편 주석은 해모수가 천이 있는 쪽 - 하-백의 국, 하-백의 집에 이른 길의 반대편 - 을 가리키자 비어있던 곳으로부터 5마리 용 같은 말들이 끄는 수레가 내려왔다[B-20:⑭-⑳]고 적었습니다. 해모수를 따라와서는 하-백과의 싸움까지 준비하며 숨어 기다리던 100명 남짓한 사람들이 나타나 그의 앞에 그의 수레를 가져다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동명왕편 주석은 해모수가 유화와 함께 수레에 오르자 바람과 구름이 일어나더니 수레가 하-백의 궁에 이르렀다[B-20:㉑-㉖]고 하였습니다. 구름은 웅의 이야기에서 운-사라고 하던 군사들의 깃발에 새겨진 것들이니, 바람은 같은 이야기에서 풍-백[風-伯]이라고 하였던 사람, 100명 남짓한 군사들의 우두머리의 깃발에 새겨진 것입니다.
해모수는 그의 수레를 가지고 오며 모습을 드러낸 군사들을 그 우두머리에게 맡겨두고, 이어 수레를 타고 자신이 천-제의 아들임을 보이면서 하-백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한 군사들을 보고서인지, 아니면 수레를 통해 천-제의 아들임을 알아서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하-백은 해모수를 자신의 집에 받아들였고 해모수는 마침내 하-백을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만난 해모수와 하-백 사이에 오고갔던 말들과 일들을 동명왕편 주석이 적었습니다. 먼저 하-백이 예를 갖추어 해모수를 맞이하여 자리를 정하였다[B-11:①-⑤]고 적고서 이어 하-백이 해모수에게, 그가 혼인하는 도리를 따르지 않고 예를 잃은 일을 해서 자기 가문을 부끄럽도록 하였다고 말하였다[B-11:⑥-⑪]고 적었습니다.
B-11 동명왕편 주석: <① 하-백이 ② 준비하여 예를 갖추고 ③ 그를(= 천-왕을) 맞이하였다. ④ 앉을 자리가 ⑤ 바로잡혔다. ● (하-백이) ⑥ (천-왕에게) 일러 ● 말하기를 "⑦ 혼인하는 도리는 ⑧ 천하의 오고가는 법도[通規]다. ⑨ 어째서 ⑩ 예禮를 잃은 일을 하여 ⑪ 나의 가문[門宗]을 부끄럽도록 하는가?"라고 하였다. ⑫ 운운.> <①河伯②備禮③迎之④坐⑤定●⑥謂●曰⑦婚姻之道⑧天下之通規⑨何⑩爲失禮⑪辱我門宗⑫云云>
이어 운운[B-11:⑫]이라는 말줄임표에 해당하는 단어를 적어, 하-백에 대해 해모수가 하였던 말을 빼고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다른 동명왕편 주석은 하-백이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이라면 어떤 남다른 재주가 있는지 물었다[B-12-(1):①-④]고 적고 있는 바, 해모수의 말은 뛰어난 재주들이 없다면 의미없는, 들어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B-12-(1) 동명왕편 주석: <① 하-백이 ● 말하기를 "② (천-)왕은 ③ 천-제의 아들이다. ● (천-제의 아들에게) ④ 어떤 신 같은 남다름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⑤ (천-)왕이 ● 말하기를 "다만 ⑥ 시험할 바에 있다(= 달려있다)."라고 하였다. ⑦ 이 때에 ⑧ 하-백이 ⑨ 뜰 앞의 물에서 ⑩ 바뀌어 ⑪ 잉어 같은 사람[鯉]이 되었고 ⑫ 물결을 따라 노닐었다. ⑬ (천-)왕은 ⑭ 바뀌어 ⑮ 수달 같은 사람[獺]이 되었고 ⑯ 그를(= 하-백을) 잡았다. ⑰ 하-백이 ● 또한 ⑱ 바뀌어 ⑲ 사슴 같은 사람[鹿]이 되었고 ⑳ 달아났다. ㉑ (천-)왕은 ㉒ 바뀌어 ㉓ 승냥이 같은 사람[豺]이 되었고 ㉔ 그를(= 하-백을) 쫓았다. ㉕ 하-백이 ㉖ 바뀌어 ㉗ 꿩 같은 사람[雉]이 되었다. ㉘ (천-)왕은 ㉙ 바뀌어 ㉚ 매 같은 사람[鷹]이 되었고 ㉛ 그를(= 하-백을) 쳤다.> <①河伯●曰②王③是天帝之子●④有何神異⑤王●曰唯⑥在所試⑦於是⑧河伯⑨於庭前水⑩化⑪爲鯉⑫隨浪而游⑬王⑭化⑮爲獺⑯而捕之⑰河伯●又⑱化⑲爲鹿⑳而走㉑王㉒化㉓爲豺㉔逐之㉕河伯㉖化㉗爲雉㉘王㉙化㉚爲鷹㉛擊之>
그러한 재주들이 무엇인지는, 곧바로 이어지는 동명왕편 주석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곧 해모수가 하-백에게 시험하는 바 곧 시험 내용에 달려있다고 하자, 처음 하-백은 잉어처럼 움직였고 해모수는 수달처럼 움직여 그를 잡았고, 하-백이 사슴처럼 움직이자 해모수는 승냥이처럼 그를 쫓았고, 하-백이 꿩처럼 움직이자 해모수가 매처럼 그를 쳤다[B-12-(1):⑤-㉛]고 적었습니다.
하-백이 보여준 바 각각 물길, 뭍길을 오고가는 그리고 산길을 숨어 오고가는 사람들을 해모수가 잡고, 뒤쫓고, 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보면 해모수가 하-백에게 앞서 한 말들은, 하-백이 지키는 산길을 포함한 뭍길과 물길을 함께 다스리려 한다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해모수가 흘승-골-성에서 움직여 하-백을 만나려 하던 이유 곧 부여가 다스리던 북쪽 예 사람들이 있는 곳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이어 동명왕편 주석은 하-백은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이라고 - 신과 같은 남다른 재주들이 있다고 - 하였다[B-12-(2):①-②]고 적었습니다. 곧 하-백은 해모수가 길을 함께 다스릴 수 있음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어 동명왕편 주석은 하-백이 해모수에게 예를 갖추어 혼인을 이루도록 하였다[B-12-(2):③-④]고 적고 또한 하-백은 유화를 거느리려는 마음이 해모수에게 없을까 두려워하였다[B-12-(2):⑤-⑥]고 적었습니다.
B-12-(2) 동명왕편 주석: <① 하-백은 ● (천-왕이) ② 참으로 천-제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 (하-백은) ③ (천-왕이) 예를 갖추어 ④ 혼인을 이루도록 하였는데 ● 두려워하기를, ⑤ (천-)왕에게 ⑥ (하-백의) 딸을 거느리려는 마음이 없는가, 하였다.> <①河伯●以②爲誠是天帝之子●③以禮④成婚●恐⑤王⑥無將女之心>
앞서 살핀 바, 해모수는 하-백이 혼인하는 도리를 따르지 않아 예를 잃었다고 하였는데 해모수는 물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뒤 재주를 살펴 하-백은 해모수가 물길을 다스릴 수 있다는 점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어 하-백이 해모수에게 예를 갖추어 혼인을 이루도록 하면서 그에게 혼인할 뜻이 없을까 두려워하였다고 하였는데, 하-백은 해모수가 어떤 예禮를 갖추기를 바래며 그 결과를 걱정하였을까요?
그 답은 앞서 살핀 바, 하-백이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예濊 무리에 대해 적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 알려줍니다. 다만, 하-백이 건너와 현토-군의 땅을 침범하고서 물줄기를 맡은 일은, 그들이 그리하여 떠난 남쪽의 예 곧 앞서 살핀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이 적고 있는 예의 풍속에 따른 것이었지만, 그 뒤 1세대가 지나도록 돌아가지 않던 그들이 보다 가까워진 것은 북쪽의 예였습니다.
그리고 그 북쪽 예의 땅에 부여가 들어와 다스리며 뒤에 그곳을, 그 무리를 옥저라고 하게 되었으니, 하-백의 딸을 혼인할 때에 갖추기를 바라던 예禮를 알기 위해 살펴야하는 자료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이 인용한 위략입니다. 위략은 먼저, 여자가 나이 10세가 되면 서로[相] 장소를 만든다[K:①-④]고 적었으니, 이것을 위한 사람이 하-백이 화내며 사신을 보내 전한 이야기 가운데에 보이는 중매하는 사람[媒]이었습니다.
K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 주석 인용 위략: <① 그(= 동-옥저의) 혼인하는 법에서는 ② 여자가 ③ 나이가 10살이면 ● 이윽고 서로 ④ 장소[許]를 만들었다. ⑤ 사위[壻]의 가문[家]이 ⑥ 그(= 여자)를 맞아 ⑦ 키우고 돌보아[養] ● (여자가) ⑧ 남편있는 여자[婦]가 되도록 하고 ⑨ (여자가) 사람됨을 갖추기(= 자라기)에 이르러 ● 다시 ⑩ (여자를) 여자의 가문[家]에 돌려보냈다. ⑪ 여자의 가문은 ⑫ (사위의 가문에서) 돈을 받아내었다. ⑬ (받아낼) 돈(= 돈을 받아내는 일)이 ⑭ 끝나면[畢] 이어 다시 ⑮ (여자를) 사위에게 돌려보냈다.> <魏略曰①其嫁娶之法②女③年十歲●已相④設許⑤壻家⑥迎之⑦長養●以⑧爲婦⑨至成人●更⑩還女家⑪女家⑫責錢⑬錢⑭畢●乃復⑮還壻>
이어 위략은, 사위 곧 남자의 집안에서 여자를 맞이하여 돌보고 키워 남편있는 여자가 되고 사람됨이 갖추어지면 여자의 가문에 돌려보낸다[K:⑤-⑩]고 적었습니다. 앞서 중매하는 사람이 없이 유화가 남편있는 여자가 되던 - 둘이 통하던 - 단계부터 어긋나기는 했지만, 하-백의 말 가운데 유화를 돌려보내지 않아 예를 잃었다고 한 말은 그 다음 단계도 어긋났다고 한 것입니다.
이 단계도 해모수가 유화를 하-백에게 데려오며 이루어진 것이라고 어찌어찌 볼 여지가 있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 단계였습니다. 이어 위략은 그렇게 돌아온 여자의 가문은 남자의 가문에서 돈을 받아냈고 그리한 뒤에야 여자를 남자에게 돌려보도록 하였다[K:⑪-⑮]고 적었으니 이것이 그 문제의 단계였습니다.
과연 이것을 해모수가 받아들일까요? 앞서 여러 단계를 무시한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하-백이 다스리는 길을 같이 다스리는 이로움을 구하고자 하여 하-백에게 왔던 해모수가 반대로 이로움을 하-백에게 넘겨야 한다면 그리하면서까지 유화를 데려갈까요? 하-백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때문에 유화를 거느리고 데려가려는 마음이 없을까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이어 동명왕편 주석은 하-백이 음악을 늘리고 술을 두고 해모수에게 권하니 해모수가 - 술을 마시고 - 크게 취하였다[B-12-(3):①-④]고 적었으니, 하-백은 이로움을 받아내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유화를 데려가기만 바라고서 해모수를 대접한 것입니다. 이어 동명왕편 주석은 해모수가 유화와 함께 가죽으로 된 가마에 들어갔고 그리고서 가마가 실리자 가마를 실은 수레 - 수레에 매인 말들이 - 천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게 되었으면, 하였다[B-12-(3):⑤-⑨]고 적은 대로, 하-백은 해모수가 빨리 유화를 데려가기를 바랐습니다.
B-12-(3) 동명왕편 주석: <● (하-백이) ① 음악을 늘리고 ② 술을 두어 ③ (천-)왕王에게 권하니 ● (천-왕이) 크게 ④ 취하여 ⑤ 여자와 더불어 ⑥ 작은, 가죽으로 된[革] 가마[輿] 가운데에 들어갔다. ● (가마가) ⑦ 실리자 ● (하-백은) ⑧ 용이 끄는 수레가 ● 바라기를, ⑨ 천天에 오르도록 하였으면, 하도록 하였다. ⑩ 그(= 가마를 실은) 수레가 ⑪ 물줄기[水]에서 아직 나가지 않았는데 ⑫ (천-)왕이 ● 곧 ⑬ 술에서 깨어 ⑭ 여자의 황금비녀를 가지고 ⑮ 가죽으로 된 가마를 찔러 ⑯ (만들어진) 구멍으로부터 ● 홀로 ⑰ 나와서는 ⑱ 천天에 올랐다.> <●①張樂②置酒③勸王●大④醉●⑤與女⑥入於小革輿中●⑦載●⑧以龍車●欲⑨令升天⑩其車⑪未出水⑫王●卽⑬酒醒⑭取女黃金⑮釵刺革輿⑯從孔●獨⑰出⑱升天>
그러나 일은 하-백이 바램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동명왕편 주석은 하-백이 다스리던 물줄기에서 수레가 나가지 - 떠나지 - 않았을 때에 해모수가 술에서 깨어서는 유화의 비녀를 빼앗아 가죽으로 된 가마에 구멍을 내고 혼자 가마에서 나와서는 천에 올랐다[B-12-(3):⑩-⑱]고 적었습니다. 해모수는 하-백이 자신을 가두려 한다고 여기고서 유화를 버려둔 채 홀로 수레에 타고 흘승-골-성을 거쳐 천天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 때의 일은 그 뒤 해모수의 이야기와 함께 주변에 알려졌고, 이것은 땅 이름으로 또한 남았습니다. 그 흔적을 잠깐 짚어보지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03년 09월 기사는 왕이 골-구-천 곧 골-령이라늗 산봉우리를 두른 구-천이라는 물줄기에서 사냥하여 거루라는 신 같은 말을 얻었다[A-4:①-⑤]고 적었습니다. 이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05년 02월 기사는 왕이 그 말과 솥을 잃었다[A-5:①]고 적었는데, 이 시기, 고구려-부여 전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A-4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03년) 가을 09월 ① 왕이 ② 골(-령)[骨]의 구-천[勾-川]에서 사냥하는데[田] ③ 신 같은[神] 말[馬]을 얻어 ④ (말을)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⑤ 거루駏䮫라고 하였다. (大武神王三年)秋九月①王②田骨勾川③得神馬④名●⑤駏䮫
A-5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05년 봄 02월) ● (왕은) ① 골(-령)[骨]의 구-천[勾-川]의(= 구-천에서 얻은) 신 같은[神] 말[馬](= 거루), 비류-원[沸流-源]의(= 비류-원에서 얻은) 큰 정鼎(= 솥)을 잃고 ② 이물-림에 이르렀다. ③ 군사들[兵]이 ④ 굶주려 일어나지 못하니 ● (왕이) 들짐승을 얻어서는 ⑥ 주어 (군사들을) 먹이도록 하였다. (大武神王五年春二月●①失骨勾川神馬沸流源大鼎②至利勿林㉜兵④飢不興●⑤得野獸⑥以給食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05년 03월 기사는 그 말이 부여 말들 100마리를 거느리고 학반-령이라는 봉우리 아래 차회-곡이라는 곳에 이르렀다[A-6:①-④]고 하였습니다. 이 일은 그저 말의 귀소본능 곧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본능 때문이었으니, 앞서 구-천이 있던 골-령 가까운 곳에 학반-령이 있었고 그리로 이르는 길에 차회-곡이 있었던 것입니다.
A-6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05년 봄) 03월 ① 신 같은[神] 말[馬] 거루駏䮫가 ② 부여 말들 100마리[匹]를 거느렸는데 ● (거루와 부여 말들 100마리가) ③ 모두 ④ 학반-령[鶴盤-嶺] 아래 차회-곡[車廻-谷]에 이르렀다. (大武神王五年春)三月①神馬駏䮫②將扶餘馬百匹●③俱④至鶴盤嶺下車廻谷
이 때 부여는 앞서 이른 땅 - 흘승-골-성의 동남쪽 멀리 자리한 땅 - 에서 북쪽으로 다시 옮겼기에 고구려가 이들을 달리 북-부여라고 불렀음을 앞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때문에 부여에서부터 흘승-골-성이 자리하고 있던 골-령에 이르는 길은 골-령 동쪽에 이르는 길이었으니, 학반-령 또한 골-령 동쪽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동쪽 길을 나서서 조금 뒤 - 부여에 이르기 한참 앞서 - 북쪽 물줄기를 건너면 환桓 곧 환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해모수가 그 아버지가 다스리던 환나를 나와서는, 다시 서쪽으로 가서 흘승-골-성에 이르며 지나는 길 가운데 학반-령과 차회-곡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편은 학-포-현이 곡-포-현이었다[H-2:②]고 하였으니 학鶴은 곡鵠과 바꾸어 같은 대상을 적을 수 있는 글자였습니다. 그러한 곡鵠은 앞서 본 바와 같이 해모수를 따라 내려온 100명 남짓한 사람들이 타던 것을 이르던 글자였던 바, 학반-령은 곧 곡반-령이며, 곡을 탄 많은 사람들이 내려왔던 반석 같은[盤] 봉우리를 이른 것입니다.
H-2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편: (신라 명-주[溟-州] 금-양-군[金-壤-郡] 학-포-현[鶴-浦-縣]은) ① 본래 ② 고구려 곡-포-현[鵠-浦-縣]이었다. ①本②高勾麗鵠浦縣
마찬가지로 그 가까이, 흘승-골-성의 동쪽에 있던 차회-곡은 수레[車]를 되돌린[回] 골짜기[谷]를 말합니다. 앞서 해모수가 유화를 버리고 하-백의 궁을 떠나 타고온 수레를 되돌려 흘승-골-성을 떠나 환桓 곧 환나에 이르기까지 지나던 길이 있던 골짜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학반-령에 대해서는 한참 뒤 고구려와 부여의 갈등이 커지던 고구려 유리-명왕과 부여 대소-왕의 시기를 살피며 다시 이야기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 이름들이 해모수의 일에서 나왔다는 점만 기억해두면 충분합니다.
돌아가서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그렇게 유화를 버리고 홀로 돌아간 해모수는 다시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유화의 말을 인용하여, 해모수가 가면서 자신을 되돌아보지도 않았다[A-3-(2):①-②]고, 이 일을 달리 적었습니다.
A-3-(2)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여자가 말하기를 ")● 곧 (해모수가) ① 가며 ② (나를) 되돌아보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女子曰)●即①往②不返
그리하였기에 자연히, 해모수가 바라던 바 하-백이 다스리던 물길을 같이 다스리려 한 일은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백은 유화를 탓하였는데, 유화를 통해 다시 하-백이 다스리던 것으로 다가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해부루의 뒤를 이어 부여-왕이 되었던 금와입니다. 다음 글부터는, 자료들을 살펴 하-백이 다스리는 물길을 통해 금와가 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