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柳花와 금와金蛙 (2/4)
동명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바깥의 자료들 가운데 제일 오래된 것은 논형 길험편과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 주석이 인용한 위략이 다시 인용한 옛 기록[舊志]입니다. 이 이야기가 한漢에 전해진 과정은 고구려-부여 전쟁과 그 뒤 부여가 보이기 시작한 움직임들에 뒤따른 것이기에, 그 전쟁이 일어난 대무-신왕 시기의 일들에 대해 살핀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번 글부터는 아래 보인 것과 같이 앞서는 뼈대만을 추려 살폈던 자료들을 다시, 이번에는 모두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2장 4편 #7 O 논형 길험편: ① 북쪽의 변방 사람들인(= 사람들 가운데) ② 탁리橐離라는 국-왕[國-王]이 ... ③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④ 동명東明이라고 하였다. ... ⑤ 동명이 ⑥ 달아났다. ... ● 이어 ⑦ 도읍하고[都] ⑧ 부여夫餘에서 왕 노릇을 하였다[王]. ①北夷②橐離國王...③名●④東明...⑤東明⑥走...●因⑦都⑧王夫餘
2장 4편 #7 P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 주석 인용 위략 인용 옛 기록: <① 옛날 ② 북쪽 땅[北方]에 ③ 고리高離의 국國이라는 것이 있었다. ... ④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⑤ 동명東明이라고 하였다. ... ⑥ 동명이 ⑦ 달아났다. ... ⑧ 동명이 ● 이어 ⑨ 도읍하고[都] ⑩ 부여夫餘의 땅에서 왕 노릇을 하였다[王]> <魏略曰舊志又言①昔北方③有高離之國者...④名●曰⑤東明⑥東明⑦走...⑧東明●因⑨都⑩王夫餘之地>
논형 길험편은 북쪽 땅에 있는 동쪽 변방 사람들을 다스리는 탁리橐離라는 국-왕을 모시는 여자가 아이를 가졌다[L-(1):①-④]고 적었습니다. 같은 일을 삼국지 위서 동이전 주석이 인용한 위략이 다시 인용한 옛 기록은, 고리高離의 국이라는 것이 있고 그 왕 노릇을 하는 사람을 모시는 여자가 아이를 가졌다[M-(1):①-⑥]고 적었습니다.
L-(1) 논형 길험편: ① 북쪽의(= 북쪽 땅에 있는) 동쪽 변방 사람들[夷]의(= 사람들을 다스리는) ② 탁리橐離라는 국-왕[國-王]의, ③ 모시며[侍] 따르는 여자[婢]가 ④ 아이를 가졌다[有娠]. ⑤ 왕이 ● 바라기를 ⑥ 그(= 여자)를 죽였으면, 하였다. ⑦ (남을) 따르는 여자[婢]가 ⑧ (왕을) 마주하여[對] ● 말하기를 ⑨ 기운[氣]이 있어 ● (기운이) ⑩ 크기가 ⑪ 달걀[鷄子]과 같았는데 ⑫ 천天으로부터 나에게 내려왔고 ● 그리하여 (내가) ⑬ 아이를 가졌다."라고 하였다. ①北夷②橐離國王③侍婢④有娠⑤王●欲⑥殺之⑦婢⑧對●曰⑨有氣●⑩大⑪如鷄子⑫從天而下我●故⑬有娠
M-(1)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 주석 인용 위략 인용 옛 기록: <① 옛날 ② 북쪽 땅[北方]에 ③ 고리高離의 국國이라는 것이 있었다. ④ 그(= 국의) 왕 노릇을 하는 이의, ⑤ 모시며[侍] 따르는 여자[婢]가 ⑥ 아이를 가졌다[有身]. ⑦ 왕이 ● 바라기를 ⑧ 그(= 여자)를 죽였으면, 하였다. ⑨ (남을) 따르는 여자[婢]가 ⑩ (고리-왕에게) 일러 ● (말하기를) ⑪ 기운[氣]이 있어 ● (기운이) ⑫ 달걀[雞子]과 같았는데 ⑬ 와서 나에게 내려왔고 ● 그리하여 (내가) ⑭ 아이를 가졌다[有身]."라고 하였다.> <魏略曰舊志又言①昔②北方③有高離之國者④其王者⑤侍婢⑥有身⑦王●欲⑧殺之⑨婢⑩云●⑪有氣●⑫如雞子⑬來下我>
옛 기록이 풀어적은 구절들을 통해 보면 고리 또는 탁리와 국의 사이에는 본래 지之가 있어 고리라는 국 또는 탁리라는 국으로, 앞의 이름이 뒤의 글자 국國에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옛 기록이 국이라는 것[者], 왕이라는 것[者]로 적은 것과 달리 논형 길험편을 통해 보면 국에 바로 왕이 이어졌으니, 고리 또는 탁리에 지之를 통해 이어진 것은 국이 아니라 국의 왕이었습니다.
곧 고리와 탁리는 국의 이름이라기보다 어떤 국의 왕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누구였을까요? 앞서 이미 동명-성왕의 동명이란 유리-명왕의 유리와 마찬가지로 왕의 이름이라고 하였던 것을 통해 보면, 동명의 이야기에 나오는 그 어머니는 바로 유화고 유화를 데리고 갔던 왕의 이름 금와金蛙가 바로 고리 또는 탁리에 해당합니다.
금와라고 적은 이름을 달리 고리 또는 탁리라고 또한 적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와가 같은 대상을 뜻으로 가진 글자, 고리가 그 대상을 이르는 지역의 말을 소리로 적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곧 蛙의 뜻은 현재 '개구리'라고 말하는 대상이며 그 소리 가운데 닮은 것 또는 비슷하지만 다른 것을 이르는 '개'를 제외한 '구리'가 그것을 이르던 말을 적은 것입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흘승-골-성이 있던 곳에 가까운 옛 진-번 땅에서 현재 '구'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적던 글자, 그 소리가 현재 '고'라는 소리로 또한 이어졌으니, 현재 소리 '고리'를 가지는 高離로 적은 옛 소리는 '구리'로 이어진 옛 소리로 적던 말을 달리 적은 것입니디.
그렇다면 '탁리'의 경우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橐의 다른 모양 글자인 士+口+冖+石+木에 그 답이 있습니다. '고리'의 고高의 다른 모양 글자 가운데 하나가 槀는 丄+口+冖+口+木이니, 그 가운데 丄의 가로 획 왼쪽과 오른쪽이 가운데가 흐릿해져 위, 아래 둘로 보이던 것을 다른 글자 士로 여겨 적고 冖의 왼쪽 세로 획과 가운데 가로 획의 가운데가 흐릿해져 冖의 아래 丆가 있는 듯한 것을 그 아래 口와 함께 冖+石로 적은 글자 士+口+冖+石+木의 다른 모양 글자 橐로 적은 것입니다.
곧 탁리橐離란 본래 고리槀離 가운데 흐릿해져 갈라진 획들을 본래 다른 획들이었던 것으로 여겨 잘못 옮겨 적은 것입니다. 또 다른 기록은 해당하는 단어를 색리索離, 고리膏離, 호리豪離라고 또 달리 적었는데, 색리는 槀의 윗 口가 누락되고 아래 口가 다른 모양 글자 厶로 쓰인 것을 그 아래 木과 함께 糸로 여겨 槀를 索으로 잘못 옮겨 적은 것이며, 고리膏離는 槀의 윗 口가 남은 채로 糸를 바깥 획이 흐려진 肉으로 여기고 肉의 다른 모양 글자 月으로 대신하여 槀를 膏로 잘못 옮겨 적은 것이며, 호리豪離는 槀의 아래 口+糸의 위의 冂가 누락된 것을 豕로 여겨 槀를 豪라고 잘못 옮겨 적은 것입니다.
요컨대, 탁리橐離, 색리索離, 고리膏離, 호리豪離는, 고리槀離의 槀하는 글자 가운데 떨어져나가 빠지거나 흐려진 획을 본래 그러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글자로 대신하여 잘못 옮겨 적은 것들입니다. 모두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이 인용한 위략이 인용한 옛 기록이, 槀와 같은 옛 소리를 적던 高를 써서 高離라고 적고 있는 옛 소리, 현재 '고리'라는 소리로 이어지는 말, 蛙의 뜻을 적은 것입니다.
뒤에 이것을 뒤틀어서는 고리라는 사람 이름을 고려라는 국 이름으로 만들어버린 백제가 전한 바를 수서 백제열전의 구절들이 적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대해서는 그 일을 포함하여 4세기 후반에 백제에 일어난 일들을 살펴 다시 이야기할 것입니다. 일단, 다른 기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논형 길험편과 옛 기록은, 왕을 모시는, 따르던 여자가 아이를 가졌다고 적은 뒤에, 왕이 여자를 - 금와가 유화를 - 죽였으면, 하였다[L-(1):⑤-⑥ = M-(1):⑦-⑧]고 적었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은 남자, 여자가 통하여 -그 남자를 - 남편으로 가진 여자가 시샘하면 모두 그들을 죽였다[N-1:①-⑤]고 적고 있으니, 겉에 드러난 것만 보자면 이 풍속을 따르려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금와는 앞서 유화가 가지지 않았다고 여기던 아이를 가진 것을 보고서 다른 남자와 통하였다고 여겨 부여의 풍속에 따라 유화를 죽이려 한 것입니다.
N-1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 ① 남자[男], 여자[女]가 ② 몰래 통하여[淫] ③ 남편있는 여자[婦人]가 ④ 시샘하니[妒] ● 모두 ⑤ 그들[之](= 남자, 여자, 남편있는 여자)을 죽였다. ①男女②淫③婦人④妒●皆⑤殺之
그리하려면 상대를 또한 알아야 하여 유화에게 그 상대를 물었던 바, 앞서 두 자료들은 모두, 유화가 닭의 알 같은 기운이 천天으로부터 내려왔고 이어 자기가 아이를 가졌다고 하였다[L-(1):⑦-⑬ = M-(1):⑨-⑭]고 적었습니다. 이 말을 금와가 듣고 유화를 죽이지 않은 것을 보면, 유화의 말은 다른 남자와 몰래 통해 가진 아이가 아니라고 금와에게 답한 것이었습니다. 곧 아이의 아버지가 다른 남자 아닌 해모수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사람은 천天 - 하늘 - 에서 내려온 기운을 가지고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 가진 아이의 아버지가 앞서 통한 바 있던 해모수라는 점은 나름 타당합니다. 그러나 하-백이 해모수에게서 유화를 떼어놓은 곳보다 더욱 해모수에게서 멀리 있던 부여에 이 때 해모수가 갈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앞서 유화의 말은 금와가 아이의 아버지 해모수를 떠올리도록 한 말이지만 해모수가 직접 왔다는 말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럼 그 이야기는 과연 무엇을 말한 것일까요? 일어난 일을 흐릿하게 닮았지만 실제 일어난 일과는 다르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 바로 유화를 버린 해모수가 유화에게 남긴 마음의 상처가 불러 일으켰던 '꿈'입니다.
이 때 유화의 답을 직접 들은 동명이 전하였던 그 말들을 가지고서, 동명왕편 주석은 여자가 해를 품어서는 그 빛을 맞았고 그리하여 그 빛이 여자가 아이를 가지도록 하였다[B-15-(2):①-③]고 직접적으로 적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달리, 해가 여자를 비추는 바 되자 여자가 몸을 이끌어 벗어났는데, 햇볕이 뒤쫓았고 이어 여자가 아이를 가졌다[A-8-(2):①-⑥]고 적었습니다.
B-15-(2) 동명왕편 주석: <① 그(= 금와가 궁에 두었던) 여자가 ② 해[日]를 품어[懷](= 생각하고) 빛[曜]을 맞았다[中]. ● 이어 (해의 빛이) ③ (여자가) 아이를 가지도록[有娠] 하였다.> <①其女②懷中日曜●因③以有娠>
A-8-(2)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여자가) ① 해[日]가 비추는[炤] 바 되자 ② 몸을 이끌어 ③ 그것에서 벗어났는데 ④ 햇볕[日影]이 ● 또한 ⑤ (여자를) 뒤쫓았다. ● 이어 (여자가) ⑥ 아이를 가졌다[有孕]. ①爲日所炤②引身③避之④日影●又⑤逐●因⑥而有孕
곧 해모수와 처음 만나 그 자리를 벗어났지만 결국 집을 지어놓고 그가 나타나 그녀를 뒤쫓아 멈춘 일, 이어 해모수를 받아들여 통하여 아이를 가진 일을 유화가 꿈꾸었음을 말하며 아이는 남편 - 금와가 그렇게 여기던 - 해모수의 아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해의 빛을, 견주어 말한 천에서 내려온 달걀같은 기운이라는 표현으로 부여가 한漢에 전한 것이 논형 길험편과 옛 기록의 구절들입니다.
요컨대, 앞서 해모수와 통한 까닭에 유화가 가졌던 아이를 유화조차 금와가 그녀를 데려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유화가 이미 다른 사람과 통하였다고 여겨 - 실은 해모수에 대한 볼모라는 쓰임새가 사라졌다고 여겨 - 죽이려는 금와에게, 그 아이는 해모수의 아이기에 자신에게는 여전히 쓰임새가 있다고 하며 살려주기를 바라던 말들이 앞서의 말, 꿈을 가지고 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순서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와 동명왕편 주석은 꿈을 먼저 적고 아이를 가진 일을 그 뒤에 알았다고 하였고, 논형 길험편과 옛 기록은 아이를 가진 일을 안 뒤에 꾸었던 꿈을 이야기한 일을 적었습니다만, 둘은 같은 이야기를 달리 적은 것일 뿐입니다.
동명왕편 주석은 이어 신작 04년 여름 04월에 유화가 주몽을 낳았다[B-15-(3):①-②]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다른 동명왕편 주석은 신작 03년 천-제가 보내 해모수가 부여-왕의 옛 도읍에서 노닐었다[2장 4편 #2 R-2:①]고 적고 웅심-산에서 멈추어 10일 남짓을 지냈다[2장 4편 #2 R-2:⑪]고 적었으니, 유화가 해모수와 통해 아이를 가지고 해모수가 떠난 시기는 신작 03년 04월이었습니다.
B-15-(3) 동명왕편 주석: <① 신작 04년 계해-년[癸亥-歲] 여름 04월 ● (유화가) ② 주몽朱蒙을 낳았다[生]. ● (주몽은) ③ 울음소리가 ④ 많이 컸고 ⑤ 뼈[骨]의 드러남[表]이 ⑥ 뛰어났다[英奇].> <①神雀四年癸亥歲夏四月●②生朱蒙●③啼聲④甚偉⑤骨表⑥英奇>
B-16 동명왕편 주석: <① 한漢의 신작 03년 04월 08일[甲寅]이었다.> <①漢神雀三年四月甲寅>
이 시기는 앞서 구절들이 동명이 태어났다고 적은 시기인 신작 04년 04월보다 1해 곧 12달을 앞선 시기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생겨 태어나는데 드는 자연스러운 기간은 9달 즈음이니, 동명이 해모수의 아들이라면 해모수와 유화가 만나 통한 시기에서 9달 즈음 지난 신작 04년 01월 즈음에 태어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위 자료라면 그렇지 않습니다. 동명은 해모수의 아이가 아니었을까요?
그 답은 위의 동명왕편 주석에 이어지는 다음 다음 구절들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하는 자연스러운 시기는 태어나고 3달 즈음 지나서인데, 신작 04년 04월에서 채 1달이 지나지 않아 - 신작 04년 04월에 - 동명이 하는 이야기들, 말들이 자연스러웠다[B-15-(7):①-④]고 적었으니, 신작 04년 04월에서 3달 즈음을 앞선 신작 04년 01월 즈음 동명이 태어났던 것입니다.
B-15-(7) 동명왕편 주석: <● (남자아이가) ① 나고 ② (1)달이 지나지 않아 ③ (남자아이의) 이야기들, 말들이 ④ 가지런하고[竝] 참되었다[實].> <①生②未經月③言語④竝實>
곧 태어난 시기로 미루어 동명이 해모수와 유화의 아이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앞서 살핀 동명왕편 주석은 신작 04년 04월에 유회가 주몽 - 동명 - 을 낳았다[生]고 적고 있는 것일까요?
마지막 질문의 답을 다음 글에서, 앞서 잠시 살피지 않고 미루어둔 동명왕편 주석을 살펴 찾아가지요. 그 답은 앞서 살폈던 논형 길험편이나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이 인용한 위략이 다시 인용한 옛 기록과 같은 다른 자료들의, 이어지는 구절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