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승-골-성을 향해 (1/1)
이제 마지막으로, 부여를 떠난 동명이 그 할아버지 - 해모수의 아버지 - 가 아란불에게 그리하도록 할 것이라고 흘승-골-성으로 가고자 부여를 떠나던 상황을 살펴보지요. 동명이 오이, 마리, 협부 3명을 동료로 맞이하던 상황에서 이어집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앞서 살핀 바 동명이 오이, 마리, 협부 3명을 동료로 맞이하였다고 적고 있는 구절들에 바로 이어, 움직여 엄사-수[淹㴲-水]에 이르렀다[A-8-(12):⑮]고 적었습니다. 이 때의 일은 동명에 대하여 전하던 일들 가운데 중요한 것이었기에, 동명의 일들을 적은 여러 기록들이 모두 빠짐없이 적고 있습니다.
논형 길험편은 동명이 달아나서는 남쪽으로 가서 엄호-수에 이르렀다[L-(7):①-④]고 적었고, 옛 기록은 조금 달리 동명이 달아나서는 남쪽으로 가서는 시엄-수에 이르렀다[M-(7):①-④]고 적었습니다. 광개토-왕 훈적-비 또한 추모-왕 - 동명 - 이 수레를 타고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움직였다[D-2-(1):①-②]고 적고 엄리-대수 때문에 동명이 나루[津]를 - 물을 건너는 곳을 - 마주하였다[U-2:③-④]고 적었습니다.
L-(7) 논형 길험편: ① 동명이 ② 달아나 ③ 남쪽으로 가서 ④ 엄호-수[掩淲-水]에 이르렀다. ①東明②走③南④掩淲水
M-(7)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 주석 인용 위략 인용 옛 기록: <① 동명이 ② 달아나 ③ 남쪽으로 가서 <④ 시엄-수[施掩-水](= 엄시-수)에 이르렀다.> <(魏略曰)(舊志又言)①東明②走③南④至施掩水>
D-2-(1) 광개토-왕 훈적-비: (추모-왕이) ① 수레에게(= 수레 끄는 사람에게) 명령하니 ● (수레가) ② 돌아보며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움직였다. ③ 부여夫餘의 엄리-대수[奄利-大水]로 말미암아 ④ 왕이 나루[津]를 마주하였다. ①命駕●②巡幸南下路③由夫餘奄利大水④王⑤臨津
하지만, 이 기록들은 물줄기 이름을 조금씩 달리 엄호-수[掩淲-水], 시엄-수[施掩-水], 부여의 엄리-대수[奄利-大水]라고 적어 같은 물줄기처럼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동명왕편 주석 또한 본래 전하던 바를 - 옛 삼국사가 적은 일을 - 고쳐 적은, 동명왕편 본문의 남쪽으로 가서 움직여 엄체(-수)에 이르렀다[南行至淹滯]는 구절들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엄체-수를 개사-수[蓋斯-水]라고 하였다[B-24-(1):①-③]고 적어 물줄기 이름을 하나 더 보탰습니다.
B-24-(1) 동명왕편 주석: <① 어떤 사람[一]이 ② (엄체-수를)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③ 개사-수[蓋斯-水]라고 하였다.> (南行至淹滯)<①一②名●③蓋斯水>
그리하여 처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적고 있는 엄사-수[淹㴲-水]에 더하여, 엄호-수[掩淲-水], 시엄-수[施掩-水], 엄리-대수[奄利-大水], 또한 다시 엄체-수[淹滯-水], 개사-수[蓋斯-水]까지 모두 6개의 다른 이름들로 같은 물줄기의 이름이 적혔습니다. 자, 그러면 이 물줄기는 동명이 부여를 떠날 때에는 과연 바깥에 알려졌던 어떤 물줄기에 해당하는 것이었을까요?
먼저 체滯에 대해 살펴보지요. 이 글자는 현재의 '체'로 이어진 옛 소리를 적은 것이며, 그 소리는 본래 帶라는 글자로 적던 소리입니다. 그런데, 帶가 적던 옛 소리는 현재의 '대'라는 소리로 이어졌기에 滯는 현재의 '대'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엄체-수[淹滯-水]는 또한 엄대-수[淹滯-水]인, 바로 엄리-대수[奄利-大水] 가운데 현재의 '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줄여 적은 엄(리)-대수[淹滯-水]입니다.
다음으로, 호淲에 대해 살펴봅시다. 이 글자는 앞서 적은 이름들 가운데 보이는 사㴲 가운데 호虎의 위와 왼쪽을 두른 획들, 厂를 뺀 것입니다. 물론, 반대로 호淲 가운데 虎에 위와 왼쪽을 두른 획들, 厂를 더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 본래의 것이었을까요? 또다른 이름 개사-수[蓋斯-水] 가운데 사斯가 사㴲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사'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적고 있으니, 본래 사㴲의 획들이 누락되어 호淲가 된 것입니다.
엄사-수로 적은 물줄기 이름은 또한 시엄-수로 적혔는데, 개사-수를 제외한 모든 이름의 처음에 엄奄의 소리를 써서 소리내는 엄[奄/淹/俺]이 보이는 것을 통해 보면, 시엄이라는 이름은 순서가 뒤집힌 것으로 그것을 쓴 물줄기 이름은 본래 엄시-수[施掩-水]였습니다.
다음으로 엄掩과 엄淹, 엄奄에 대해 살펴보지요. 이 글자들은 모두 현재의 '엄'이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적은 것이며, 그 소리는 모두 본래 奄이라는 글자로 적던 소리입니다. 그런데 奄이라는 글자로 적던 옛 소리는 암庵, 암菴에서 보이듯이 현재의 '암'이라는 소리로도 또한 이어졌습니다. 본래의 옛 소리는 어느 쪽에 가까웠을까요?
잠시 개사-수[蓋斯-水]라는 이름은, 이것이 엄/암사-수[淹㴲-水]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니, 개蓋는 곧 엄/암에 해당합니다. 어떻게 그러할까요? 蓋의 소리가, 현재의 '개'라는 소리 뿐만 아니라 현재의 '갑'과 '합'이라는 소리로 함께 이어졌다는 데에 그 답이 있습니다.
앞서 하서량을 달리 적은 하슬라를 아슬라라고 적은 구절들을 통해, 현재의 '가'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적던 可의 소리를 써서 소리낸 阿와 何의 옛 소리가 현재의 '아'와 '하'라는 소리로 이어졌음을 살핀 바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보면, '하'와 '가'의 첫 소리 'ㅎ'과 'ㄱ'로 함께 이어진 옛 소리는 또한 'ㅇ'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기에 蓋의 소리는 현재의 '압'으로 또한 이어진 옛 소리였고, 그 두번째 소리 'ㅏ'를 볼 때에 엄掩과 엄淹, 엄奄으로 적은 소리는 '암'으로 이어진 옛 소리였습니다. 그러하였기에 물줄기 이름은 본래 압사-수[蓋斯-水]이며 암사/시-수[淹㴲/施-水], 그리고 암리-대수[奄利-大水]였습니다.
이러한 이름들 가운데 암시-수는 논형 길험편이 한참 뒤 부여 사람들이 전한 바를 가지고 적은 것입니다. 그 가운데 施는 현재의 '시'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적은 글자인데, 흥미롭게도 이 글자는 또한 '이'로 이어진 옛 소리를 적는 데에 또한 쓰였던 바, 압사-수[蓋斯-水], 암사-수[淹㴲-水]라고 적던 물줄기 이름을 달리 암시-수[淹施-水]라고 적고는, 보다 뒤에 다시 암이-수 곧 암리-(대)수라고 달리 적게 되었습니다.
이 이름은 보다 앞서 다시 바뀌어,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적혔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앞서 본래 사를 시라고 달리 적은 것을 통해, '리'의 두번째 소리 'ㅣ'는 달리 'ㅏ'로 적어 '라'로 적혔는데, 현재의 '라'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적던 글자들 가운데 하나는 - 대개 현재의 '난'이라는 소리로 읽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 難입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마지막 연결고리, 설문해자가 감監의 소리다[R-3:④]라고 적은 글자 鹽을 難의 앞에 더하여 보면 이미 익숙한 물줄기 이름, 鹽難이 나타납니다. 바로 앞서 한서 지리지가 마자-수가 들어간다고 적은 염난-수[1장 1편 #10 M:③]가 그것이니, 앞서 통전 변방편이 마자-수를 이름하여 압록-수라고 하였다[1장 1편 #8 H-(1)]고 적은 압록-수 곧 현재의 장자-강이 서북쪽으로 흘러 더하여지는 물줄기, 현재의 백두-산에서 나와 흐르는 현재의 압록-강의 상류입니다.
R-3 설문해자: ① 염鹽은 ② 소금[鹹]이다. ③ 鹵를 따른다. ● (염의 소리는) ④ 감監의 소리[聲]다. ①鹽②鹹也③从鹵●④監聲
1장 1편 #10 M 한서 지리지 주석: <(서개마-현에는) ① 마자-수[馬訾-水]가 있었다. ● (마자-수는) ② 서북쪽으로 가고, ③ 염난-수[鹽難-水]에 들어갔다. ● (마자-수와 더하여진 염난-수는) ④ 서남쪽으로 가고, ⑤ 서안평(-현)[西安平]에 이르고 ● (서안평-현에서) ⑥ 바다로 들어갔다. ● (마자-수, 마자-수와 더하여진 염난-수는 바다로 들어가기까지) ⑦ 군들[郡] 2(개)를(=현토-군, 요동-군을) 지나며 ⑧ 2,100리를 갔다.> (西蓋馬)<①馬訾水●②西北③入鹽難水●④西南⑤至西安平●⑥入海⑦過郡二⑧行二千一百里>
1장 1편 #8 H-(1) 통전 변방편: (고려에는) ① 마자-수[馬訾-水]가 있다. ② 어떤 기록[一]이 ● (마자-수를) 이름하기를 ③ 압록-수[鴨綠-水]라고 하였다. ④ (마자-)수가 되는 물[源]은 ⑤ 동북쪽 말갈靺鞨의 백-산[白-山]에서 나온다. ⑥ (마자-)수의 색色은 ⑦ 오리머리[鴨頭]와(=오리머리의 색과) 비슷하며 ● (그리하여) ⑧ 사람들[俗]이 ● (마자-수를) 이름하기를 ⑨ 그것[之]이라고(=압록-수라고) 하였다. ①馬訾水②一●名③鴨綠水④水源⑤出東北靺鞨白山⑥水色⑦似鴨頭●故⑧俗●名⑨之
때문에 동명왕편 주석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주석은 모두 동명이 이르렀던 물줄기가 지금의 압록-수의 동북쪽에 있다[B-24-(2):② = W:②]고 적었습니다. 곧 앞서 이야기한 현재의 압록-강 상류 가운데에서도 장자-강을 기준으로 동북쪽에 있다고 이를 수 있는, 현재의 백두-산 서남쪽 가까이 있는 땅을 지나면서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잠시 흐르던 구간을 말합니다.
B-24-(2) 동명왕편 주석: <① (개사-수[蓋斯-水]는) ② 지금의 압록[鴨綠](-수)의 동북(쪽)[東北]에 있다.> (淹滯)<①在②今鴨綠東北>
W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주석: <① (엄호-수[淹淲-水]는) ② 지금의 압록(-수)[鴨淥]의 동북(쪽)[東北]에 있다.> (淹淲水)<①在②今鴨淥東北>
동명이 부여를 떠나 남쪽으로 가서 이 물줄기를 건넌 뒤에 다시 흘승-골-성을 향하여 가던 길은 보다 앞서 창해-군을 열었던 길, 해모수가 돌아와 머물던 압록-수 북쪽 물가의 환-나를 통해 금와가 있던 부여를 지나는 길과는 또다른 길이었습니다. 부여는 잘 알려지지 않아 오고가기가 쉽지 않은 이 길로 동명이 움직이리라 여기지 않았기에 동명은 그 길로 움직여 부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말미암아 알려진 흘승-골-성에 이르는 다른 길을, 부여는 뒤에 동명의 일들을 전해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뒤에 군사들을 보내니,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명왕 32년 11월 기사가 부여 군사들이 곧바로 학반-령 아래에 이르렀다[A-15:①-②]고 적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부여 전쟁이 일어나기에 앞서, 부여는 흘승-골-성 가까이 있던 학반-령 아래까지 군사들이 이르도록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A-15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명왕 32년 겨울 11월) ① 부여 군사들[兵]이 ● 곧바로 ② 학반-령[鶴盤-嶺] 아래에 이르렀다. (琉璃明王三十二年冬十一月)①扶餘兵●直②至鶴盤嶺下
그리하고 오래지 않아 일어난 고구려-부여 전쟁이 끝날 무렵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05년 04월 기사가 대소의 아우가 대소가 죽임당하자 부여를 떠나 압록-곡에 이르렀다[A-16:①-⑤]고 적은 일에 이 길은 다시 쓰였습니다. 압록-곡은 압록-수 곁의 골짜기인 바, 대소의 아우는 대소가 죽은 뒤에 다른 부여 무리들과 힘을 더해 고구려 대무-신왕을 에워싸는 대신 떠나 남쪽으로 가서, 염난-수를 건너고 물가를 따라 서남쪽으로 가서 압록-수와 더하여지는 곳까지 이르렀습니다.
A-16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05년 여름 04월) ① 처음 ② 대소의(= 대소가) 죽임당하는 일[見殺]이 있자, ● (대소의 아우는) ③ 국國의(= 국이) 장차 없어질[亡] 것을 알고 ④ 따르는 사람 100명[人] 남짓과 더불어 ⑤ (떠나) 압록-곡[鴨淥-谷]에 이르렀다. (大武神王五年夏四月)①初②帶素之見殺也●③知國之將亡④與從者百餘人⑤至鴨淥谷
이것으로부터 부여가 있던 장소를 알 수 있으니, 바로 현재의 압록-강 상류 가운데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잠시 흐르던, 짧은 구간 북쪽에 있는, 현재의 백두-산 서남쪽 가까운 땅이었습니다. 뒤에 부여는 북쪽으로 현재의 백두-산에서 서북쪽으로 현재의 송화-강을 마주하였고 또한 남쪽으로 엄리-대수 건너 현재의 백두-산에서 이어진 남쪽 산줄기에서 고구려, 동-옥저와 맞닿게 되었습니다.
한참 뒤, 3세기에 일어났던 고구려-위 전쟁에서 위魏가 고구려를 패배시키고 그 주변 무리들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들을 적고 있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 적은 서로의 위치 관계를 통해 이러헌 장소를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3세기 고구려-위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자세히 살피겠지만, 그러기까지 부여가 보인 움직임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지금의 장소로도 충분합니다.
이어 동명왕편 주석은 동명이 건너기를 바랬지만 배가 없어 뒤쫓아오는 군사들이 모두 이르는 것을 두려워하였다[B-25-(1):①-⑤]고 적었습니다. 이어 동명이 손에 든 채찍으로 천天을 가리키고 억울해하고 한숨쉬며 스스로 자신은 천-제의 손자, 하-백의 조카인데 지금 어려움을 벗어나 이곳에 이르렀다고 말하였다[B-25-(1):⑥-⑯]고 적었습니다.
B-25-(1) 동명왕편 주석: <● (주몽이) 바라기를 ① 건넜으면, 하였으나 ② 배가 없었다. ● (주몽이) 두려워하며 ③ 뒤쫓아오는 군사들[兵]이 ④ 모두 ⑤ 이르려는가, 하고 ● 이어 ⑥ 채찍이 ⑦ 천天을 가리키도록 하고는 ⑧ 억울해하여 ● 그리하고 ⑨ 한숨 쉬며 ● 말하기를 "⑩ 나는 ⑪ 천-제의 손자고 ⑫ 하-백의 조카[甥]인데 ⑬ 지금[今] ⑭ 어려움을 벗어나 ⑮ 이곳[此]에 이르렀다. ⑯ 황-천[皇-天]이여, ⑰ 후-토[后-土]여, ⑱ 나 외로운 아이[孤-子]를 불쌍히 여겨 ● 빨리 ⑲ 배, 다리에 이르라."라고 하였다.> <●①欲渡②無舟●恐③追兵④奄⑤及●迺⑥以策⑦指天⑧慨●然⑨嘆●曰⑩我⑪天帝之孫⑫河伯之甥⑬今⑭避難⑮至此⑯皇天⑰后土⑱憐我孤子●速⑲致舟橋>
그리고서 동명왕편 주석은 이어 동명이 황-천, 후-토를 부르며 배, 다리에 빨리 그들이 이르기를 - 자신을 돕기를 - 빌었다[B-25-(1):⑯-⑲]고 적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동명이 건너려 했지만 다리가 없으니 뒤쫓아오는 사람들이 닥칠까 두려워하였다[A-8-(13):①-③]고 적고, 이어 동명이 말하기를 자신은 - 천-제의 손자가 아니라 - 천-제의 아이[子]고 하-백의 외손자인데 지금 뒤쫓는 이들이 거의 이르렀으니 어찌할지 물었다[A-8-(13):④-⑫]라고 적었습니다.
A-8-(13)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주몽이) 바라기를, ① 건넜으면, 하였으나 ② 다리[梁]가 없었다. ● (주몽은) 두려워하며 ③ 뒤쫓아오는 군사들[兵]이 닥치는 바인가, 하였다. ④ 물에 알려 ● 말하기를 "⑤ 나는 ⑥ 천-제의 아이[子]고 ⑦ 하-백의 외손자인데 ⑧ 지금[今日] ⑨ 달아나 ⑩ 뒤쫓는 이들이 ● 거의 ⑪ 이르렀다. ● (내가) ⑫ 어찌할까?"라고 하였다. ①欲渡②無梁●②恐③爲追兵所迫④告水●曰④我⑥是天帝子⑦河伯外孫⑧今日⑨逃走⑩追者●垂⑪及●⑫如何
이 이야기에 대해서, 광개토-왕 훈적-비는 먼저, 천-제의 아이를 황-천의 아이[D-2-(2):②]로 달리 적었으며, 또한 달리 어머니가 하-백의 딸인 추모-왕이라고 말하였다[D-2-(2):③-⑤]고 적었습니다. 이어, 동명이 사람들에게 갈대들을 이어 거북들이 떠오르도록 하라고 하니 그들이 건널 것들을 만들었다[D-2-(2):⑥-⑬] - 물을 건널 것이 되어주었다 - 고 적었습니다.
D-2-(2) 광개토-왕 훈적-비: (추모-왕이) 말하기를 "① 나는 ② 황-천[皇-天]의 아이[子]고 ③ 어머니가 ④ 하-백[河-伯]의 딸[女郞]인 ⑤ 추모-왕이다. ⑥ 나를 위해 ⑦ 갈대들을 이어 ● (갈대들이) ⑧ 거북들[龜]이 떠오르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⑨ 말소리에 따라 ● (사람들이) 곧 ⑩ 갈대들을 잇도록 하니 ● (갈대들이) ⑪ 거북들을 떠오르도록 하였으며, ● 그리하여 ⑫ 뒤에 ● (거북들이) ⑬ 건널 것[渡]을 만들었다. (王)曰①我②是皇天之子③母④河伯女郞⑤鄒牟王⑥爲我⑦連葭●⑧浮龜⑨應聲●卽⑩爲連葭●⑪浮龜●然⑫後●⑬造渡
그런데, 갈대들을 묶는다고 해서 과연 거북들이 나올까요? 그렇게 거북들이 나온다고 해도 그런 거북들로 물을 건널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으니, 여기의 거북들은 거북 같이 생긴 것들 곧 물을 건널 수 있도록 하는 배들이며, 갈대들을 묶어 배들을 내놓도록 한 사람들은 앞서 금와가 유화를 얻는 일 가운데 모습을 보였던 어-사[魚-師] 곧 물고기 이름을 벼슬 이름들로 삼는 군사들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을까요? 앞서 동명의 말들은 자료들이 조금씩 다르게 적었지만 모두 동명이 하-백의 피붙라는 점을 이야기하였다고 적었으니, 바로 이 관계가 하-백을 거스르기 어려운 물고기 이름을 벼슬 이름으로 삼고 있던 군사들을 움직인 것입니다. 때문에 오이, 마리, 협부와 같이 부여에 등돌리고 도우니, 동명이 물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동명을 도운 일들을 동명왕편 주석은 다만 동명이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들, 자라들이 떠올라 - 배들이 나타나 - 다리를 이루어 동명이 건널 수 있었다[B-25-(2):①-⑨]고 적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도 활이 물을 쳤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같이, 물고기들,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를 이루어 동명이 건널 수 있었다[A-8-(14):①-⑥]고 적었습니다.
B-25-(2) 동명왕편 주석: <① 말이 ② 끝나고 ● (주몽이) ③ 활이 ④ 물을 치도록 하니 ⑤ 물고기들[魚], 자라들[鼈]이 ⑥ 떠올라 (물에서) 나와 ⑦ 다리[橋]를 이루었다. ⑧ 주몽(= 동명)이 ● 이어(= 그리하여) ⑨ 건널 것[渡]을 얻었다(= 건널 수 있었다). ● 한참 ⑩ 시간이 지나 ⑪ 뒤쫓는 군사들이 ⑫ 이르렀다.> <①言②訖●③以弓④打水⑤魚鼈⑥浮出⑦成橋⑧朱蒙●乃⑨得渡●良⑩久⑪追兵⑫至>
A-8-(14)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① 이 때에 ② 물고기들[魚], 자라들[鼈]이 ③ 떠올라 (물에서) 나와 ④ 다리[橋]를 이루었다. ⑤ 주몽이 ⑥ 건널 것[渡]을 얻었다(= 건널 수 있었다). ⑦ 물고기들, 자라들이 ● 이어 ⑧ 풀어졌다. ⑨ 뒤쫓던 말탄 군사들[騎]이 ⑩ 건널 것[渡]을 얻지 못했다(= 건널 수 없었다)①於是●②魚鼈③浮出④成橋⑤朱蒙⑥得渡⑦魚鼈●乃⑧解⑨追騎⑩不得渡
논형 길험편,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 인용한 위략이 다시 인용한 옛 기록 모두 동명왕편 주석과 같이, 활로 물을 쳤다[L-(8):①-② = M-(8):①-②]고 적고서 이어 물고기들, 자라들이 떠올라 - 배들이 나타나 - 이 다리를 이루었고 동명이 그리하여 건널 수 있었다[L-(8):③-⑦ = M-(8):③-⑦]고 적었습니다. 그 가운데 옛 기록은 건널 것을 처음에는 度[M-(8):⑦]로 논형 길험편과 달리 적었지만 뒤에는 다시 渡[M-(8):⑪]로 적었으니 앞의 글자는 옮기며 잘못 적은 것일 뿐입니다.
L-(8) 논형 길험편: (동명은) ① 활이 ② 물을 치도록 하였다. ③ 물고기들[魚], 자라들[鼈]이 ④ 떠올라 ⑤ 다리[橋]가 되었다(= 다리를 이루었다). ⑥ 동명이 ⑦ 건널 것[渡]을 얻었다(= 건널 수 있었다). ⑧ 물고기들, 자라들이 ● 이어 ⑨ 풀어져 흩어졌다. ⑩ 뒤쫓던 군사들[兵]이 ⑪ 건널 것[渡]을 얻지 못했다(= 건널 수 없었다). ①以弓②擊水③魚鼈④浮⑤爲橋⑥東明⑦得渡⑧魚鼈●乃⑨解散⑩追兵⑪不得渡
M-(8)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 주석 인용 위략 인용 옛 기록: <● (동명은) ① 활이 ② 물을 치도록 하였다. ③ 물고기들[魚], 자라들[鼈]이 ④ 떠올라 ⑤ 다리[橋]가 되었다(= 다리를 이루었다). ⑥ 동명이 ⑦ 건널 것[度]을 얻었다(= 건널 수 있었다). ⑧ 물고기들, 자라들이 ● 이어 ⑨ 풀어져 흩어졌다. ⑩ 뒤쫓던 군사들[兵]이 ⑪ 건널 것[渡]을 얻지 못했다(= 건널 수 없었다).> <(魏略曰)(舊志又言)●①以弓②擊水③魚鼈④浮⑤爲橋⑥東明⑦得度⑧魚鼈●乃⑨解散⑩追兵⑪不得渡>
그런데, 논형 길험편과 옛 기록은, 모두 동명이 건넌 일을 적은 데 이어, 물고기들, 자라들이 풀어 흩어졌고 그리하여 뒤쫓던 군사들이 건널 것을 얻지 못했다[L-(8):⑧-⑪ = M-(8):⑧-⑪]고 적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도 흩어졌다는 뜻의 散을 제외하고서 같이, 물고기들, 자라들이 흩어졌으며 이어 뒤쫓던 군사들이 건널 것을 얻지 못했다[A-8-(14):⑦-⑩]고 적었습니다.
반면 동명왕편 주석은 뒤쫓는 군사들이 이르렀다고 적었고, 이어 다른 동명왕편 주석은 그 뒤의 일들을 이어 적었습니다. 곧 뒤쫓는 군사들이 이르렀는데 물고기들, 자라들 - 물고기들, 자리들 같은 배들 - 이 없어졌고[B-26:①-④], 그것으로 만든 다리에 오르던 이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B-26:⑤-⑦]고 적었습니다. 앞서 동명을 도운, 물고기 이름을 벼슬 이름으로 삼고 있던 군사들이 부여에 등돌렸음을 보다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B-26 동명왕편 주석: <① 뒤쫓는 군사들이 ② 물줄기[河]에 이르렀다. ③ 물고기들, 자라들이 ● 곧 ④ 없어졌다. ⑤ 이윽고 다리[橋]에 오르던 이들이 ⑥ 모두 ⑦ (물에) 빠져 죽었다.> <①追兵②至河③魚鼈橋●卽④滅⑤已上橋者⑥皆⑦沒死>
그리하여 금와가 다시 군사들을 보내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것에 대해서는 자료들이 모두 더이상 적지 않았습니다. 동명은 그리하여 더이상 부여가 뒤쫓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흘승-골-성을 향한 길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정리해보면, 해모수가 그 아버지에 뒤이어 움직여 흘승-골-성에 이르고 다시 하-백을 통해 부여에 영향을 미칠 방법을 찾던 시기, 동남쪽 부여에서는 나이든 해부루가 죽고 금와가 뒤를 이었습니다. 하-백의 딸 유화의 일로 해모수가 하-백과 손잡는 데 갈라지니 하-백은 유화를 벌주고 해모수에게서 멀리 두었는데, 금와는 유화가 해모수의 아내임을 알고 부여로 데려갔습니다.
그리하여 부여에서 유화는 해모수의 아들 동명을 낳았고, 금와는 동명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무리가 말리고 유화가 속여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금와는 다시 흘승-골-성에 영향을 미칠 방법을 찾아 그 서쪽에 있던 졸본에 아들 우태를 보내 우두머리의 딸 소서노와 혼인하도록 하였는데, 그리하며 보낸 사람들로 말미암아 금와가 보인 틈을 노려 동명의 일로 뜻을 달리하는 무리가 갈라지며 북쪽에 옮겨 자리잡았습니다.
금와는 우태를 보내고 다시 북쪽으로 옮겨가면서 점차 동명을 의심하여 더 낮은 무리에게 맡기니 동명은 떠날 뜻을 품었는데, 그 뜻이 드러나 금와가 죽이려 하니 동명이 부여를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동명이 남쪽으로 가서 이르렀던 물줄기에 대해 마지막으로 살펴 어디인지 이야기하였고, 그 뒤 동명이 그 물줄기를 건너 흘승-골-성을 향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이것으로 동명이 떠나던 시기까지의 부여에서 일어난 일들을 끝으로 3장 4편을 마무리하니, 사국이 시작되기까지 여러 무리들의 일들을 담은 사국고사 1부가 또한 끝났습니다. 여기서 이어지는 시기, 사국이 일어나는 시기부터 일어나는 일들 - 고구려의 경우 동명이 물줄기 건너에서 움직여 흘승-골-성에 이르기까지의 일들, 그리하며 만난 사람들, 더불어 고구려를 이루어낸 일들 - 은 사국고사 2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부 끝.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