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가 휘몰아치던 그 광란 끝에서는
세상의 다친 길들 신음소리 들린다
거꾸로 처박힌 채로, 생살이 찢긴 채로
이제 다 지났다고 불행은 순간이라고
간당간당 열매 맺어 휘어지는 가지들을
하늘은 품에 안으며 노을을 덮어준다
*바비; 태풍 이름
❤❤ 생각 주머니
‘철새들’에서 저 군무는 바람의 쇼이자 생존의 전략이다, 라고 단정 짓고 허공 속 무희들이 팽팽히 대오를 지어 어디로 날아가는가, 라고 물으며 빈 하늘에 비행 중인 철새들의 군무로부터 바람의 쇼와 생존의 전략을 동시에 읽어내고 있다. 역동적인 이미지 구현이다.
또한 ‘해질 무렵’에서 바비가 휘몰아치던 그 광란 끝에서는 세상의 다친 길들이 거꾸로 처박힌 채로, 생살이 찢긴 채로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듣는다. 바비는 태풍 이름이다. 이제 다 지났다고 불행은 순간이라고 간당간당 열매 맺어 휘어지는 가지들이 안쓰러워서 하늘은 품에 안으며 노을을 덮어주는 것을 시의 화자는 유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는 대체 어디로부터 오는가? 때로 들끓는 나의 내면으로부터, 더러는 삼라만상으로부터 불현듯 나타나서 시인으로 하여금 펜을 들게 만든다. 끊임없는 혼자만의 중얼거림과 궁굴림 끝에 한 줄의 시는 잘 직조된 의미다발로 세상 속에 비로소 현현한다. 그 순간을 위해 쓰는 일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정환(전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출처 : 21. 06.15 대구일보(https://www.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