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5월의 어느 날,
영어수업시간이었다.
짝지가 아파 조퇴하고,
내 옆자리에는 나와 짝지 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친구가 옳다구나 하고 쪼로로 와 앉아 있었다.
옆에서 조잘조잘 뭐라고 자꾸 이야기를 한다.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칠판에 뭔가를 쓰다가 뒤를 돌아본 선생님의 눈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내 모습이 확 들어왔던가보다.
나를 불러일으켜 세워 질문을 했다.
공부를 못하던 내가 답을 알리가 없었다.
옆친구에게도 질문했는데 그 아이는 정답을 말했다.
그 친구는 공부를 제법 하는 녀석이었고, 고등입학 전에 선행이란 것도 하고 들어왔다고 했다.
어쩌면 내가 그의 질문받는 동안 주변의 다른 친구가 답을 가르쳐 줬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래서 나는 꿀밤을 두대 맞고 그 친구는 한 대를 맞았다.
억울했다.
친구가 떠들었고 나는 그저 듣고만 있었는데,
영어 대답 그거 하나 못했다고 두대를 맞은 것이 아주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 맞으려면 수업시간에 떠들은 친구가 두대맞고 내가 한 대 맞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때부터 그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 여가 지났을까.
분필이 날아오고 연달아 책이 날아왔다.
"야, 이 씨, 정현숙!!! 앞으로 나왓!!!!!"
수업시작하고 10분 정도 지났을 때였을까.
"안경 벗어"
그때부터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릴 때까지 그에게 맞았다.
복날 개 패듯, 영화 '친구' 속 김광규가 유오성을 때렸던 그 장면처럼, 그리 맞았다.
더 참혹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17살 꽃다운 여고생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여리여리 가녀린 소녀 뭐,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래. 잘 먹어서 덩치가 좋았던 것은 부인하지 않겠다. 그래도 폭력을 행사한 그보다는 확실히 작았다)
어쨌든 그곳 그 시간에 인간의 존엄성이란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교탁에서 뒷문까지 따귀를 치면서 몰았고, 뒷문에서 다시 교탁까지 머리를 후려치며 몰았다.
꿇어앉으라고 한 뒤 슬리퍼를 신은 발로 머리를 밀듯이 찼다.
내가 사람이 맞나? 지금 내가 혹시 개인가...?
그의 무자비한 폭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가 점점 더 광기를 띄는 듯해 보였다. 이러다가 맞다가 어디 잘못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쳤다.
친구들이 오히려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당하는 나보다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친구들에게 오히려 더 폭력적이었을게다.
억울해서 마침내 울음을 터트렸다.
나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그의 광기에 몸서리쳐져 눈물이 났다.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치자 그제야 매타작이 멈추었다.
그는 나에게 반성문 100장을 써오라고 소리친 뒤 교실, 아니 개도살장과 같던 그곳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