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맞는 마지막 아침은 숙취와 함께 시작됐다. 어젯밤 재즈바에서의 여흥은 고이 접어 침대에 뉘어놓고 짐을 챙겨 11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캐리어는 숙소에 맡겨두고 어느덧 익숙해진 성곽길을 따라올라 갔다. 발걸음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또 낙화하여 무채색의 길을 자기 빛깔로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작별인사를 해주는 건지 햇볕도 좋고 하늘이 정말 맑아서, 도로 끝에 걸린 도이수텝 산을 한번 더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카오쏘이 매싸이는 유명한 맛집답게 웨이팅 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 하나 이상한 점은 다른 식당처럼 길게 늘어선 줄이 아니라 불규칙하게 바글바글하게 모인 사람들이었다. 대충 끝으로 보이는 줄로 서서 기다리는데 뭔가 이상했다. 가게에서 직원이 나와 번호를 외치니 몇 명이 인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알고 보니 대기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번호표를 받고 기다렸어야 했다. 이제야 대기표를 받으면 한참 걸리겠다 싶어 근처 다른 식당을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직원이 one person을 외쳤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니 대기표를 받은 사람들 중 혼자 온 사람은 없어 보였다. 이때다 싶어 one person, here!을 외치며 손을 번쩍 들었다. 운 좋게 대기표를 받은 것보다 빠르게 입장해서 얼떨떨하지만 자리에 앉아 신나게 메뉴를 골랐다. 치킨 카오쏘이와 밀크티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앞자리에 서양인 커플이 앉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합석이 익숙하지 않지만, 관광지인 이곳은 특히 홀로 여행자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라 어색함을 숨기고 짧은 인사를 나누다 보니 금세 음식이 나왔다.
카오쏘이는 란나전통 음식으로 코코넛 커리에 달걀이 들어간 노란색 면으로 만든 국수이다. 메뉴는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 해산물 등으로 다양했지만, 닭다리 하나가 통째로 들어가는 시그니처 메뉴 '카오쏘이 까이'를 시켰다. 국물이 매콤하면서도 우리가 흔히 먹는 카레 맛과는 또 다르고, 닭다리가 엄청 부드러웠다.
운 좋고 만족스러웠던 식사를 마치고 큰길로 나와 썽태우를 잡아타고 기념품을 사기 위해 와로롯 시장으로 갔다. 보통 한 바퀴 다 둘러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사는 게 평소 쇼핑 스타일이지만, 치앙마이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답게 너무 넓었다. 돌아다니다가 지쳐서 아무 상점에 멈춰 망고젤리와 건망고, 우롱티, 그리고 선물용 코끼리 바지를 샀다. 삥강을 건너 처음 가보는 동네로 들어가 이층짜리 카페로 올라갔다. 더위에 지쳐 시원한 말차라떼를 마시며 어젯밤 못 적은 일기와 오늘 있었던 마지막 여행이야기를 기록했다. 해가 질 때까지 이곳에서 쉬다가 삥강 야경을 볼까 싶었는데, 갑자기 카페 안에 있던 커플이 싸우기 시작했다. 점점 언성이 높아지자 하나둘씩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고, 나도 고요함을 찾아 삥강변으로 다시 나갔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니 고즈넉한 풍경이 보이는 벤치가 있어서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 물멍을 하며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지나가는 학생들, 매연을 내뿜고 지나가는 오토바이, 거리가 다 울리게 경적을 울려대는 자동차들의 행렬을 바라봤다. 이곳에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한순간 한순간, 한 장면 한 장면이 아쉬워 눈에 끌어다 담았다. 괜히 시장에서 산 기념품들을 펼쳐놓고 기념샷을 찍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걸었다.
삥강 저 멀리서 유유히 물살을 가르고 카약이 지나갔다. 햇볕은 뜨거워 보였지만 참 평화로워 보였다. 카약 한대를 먼저 보내니 또 다음 카약, 그리고 또 다음 카약이 길동무가 돼주었다. 문득 그들은 어디서 왔고, 왜 치앙마이에 오게 되었고, 언제까지 머무를 건지 궁금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곧 떠나야 하는 나보다는 치앙마이에 더 머물겠지, 잠시 그들이 부러워졌다.
시간을 다시 첫째 날로 돌리고 싶은 마음을 내딛는 발걸음에 꾹꾹 누르고 삥강 정취를 만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아이언 브릿지에 다다랐다. 다리를 건너 나이트 바자로 갔다. 치앙마이 최대 규모의 야시장이지만 아직 오픈 준비로 분주해서 이미 열어놓은 상점만 빠르게 구경을 하고, 썽태우를 타고 다시 올드시티로 돌아왔다. 마른 목을 땡모반으로 축이고 소품샵으로 갔다. 항상 여행 마지막에 지금까지의 여행을 돌아보며 가장 잘 추억할 수 있는 마그넷을 하나 사 오곤 한다. 다른 기념품은 다 마음에 들면 그때그때 사더라도, 마그넷만은 여행에서 좋았던 것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을 고르고 골라 일정의 마지막에 하나만 산다. 치앙마이에서 좋았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 이것저것 다 담고 싶었지만, 다음에 치앙마이에 또 오게 될지도 모를 나에게 그 기쁨을 양보하고 싶었다. 치앙마이를 나타내는 여러 마그넷들 중에 어떤 걸 살까 한참 고민하다가 내 머릿속에 가장 치앙마이스러움으로 남을 것 같은 빨간 썽태우 마그넷을 골랐다. 숙소에서 캐리어를 챙겨 와 그랩을 타고 공항으로 갔다. 여행이 한 여름밤의 꿈처럼 벌써 끝나버렸음에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음에 오면 또 무슨 마그넷을 고르게 될까 설레는 마음으로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 여행 중에 가장 자주 들었던 노래 아이유의 "여름밤의 꿈" 가사와 함께 필름카메라 하나 들고 훌쩍 떠난 7박 8일간의 치앙마이 여행기를 마친다. 다음 편은 치앙마이에서 만난 여러 동물 친구들, 치앙마이 여행 후기를 들고 올 예정이니 2월에 만난 나의 여름밤의 꿈을 끝까지 함께 해주길 바란다.
깊은 밤 아름다운 그 시간은 이렇게 찾아와 마음을 물들이고 영원한 여름밤의 꿈을 기억하고 있어요
다시 아침이 밝아와도 잊혀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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