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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ajera 비아헤라 Sep 15. 2024

[치앙마이 여행] 치앙마이에서 만난 동물 친구들

Sabai Sabai

  치앙마이 여행 중에 가장 좋았던 태국어는 바로 '편하게'라는 뜻을 가진 '사바이'이다.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태국의 라이프 스타일이 담긴 단어로 우리나라의 안녕처럼 일상적인 인사말로도 사용된다. 이 여행기의 이름도 큰 고민 없이 사바이로 짓게 되었는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치앙마이에서 가장 사바이 철학과 닿아있는 사바이한, 사바이스러운 것을 꼽자면 바로 치앙마이의 동물 친구들이다.


  우리나라에도 길거리에서 동물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목줄을 하고 잔뜩 신이 나서 헥헥거리며 주인과 산책을 하다 낯선 사람이나 강아지를 만나면 짖곤 하는 강아지들, 그 치명적인 자태를 구경이라도 할라치면 작은 인기척도 기민하게 알아채고 황급히 꼬리를 빼는 길고양이들...

  치앙마이에서 처음 만난 동물 친구는 바로 첫째 날 블루누들을 가는 길에 만났다. 길가 주춧돌 위에 기품 있게 꼬리를 말고 앉아있는 이 삼색 미묘는 미동이 없어 고양이 석상인지 알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도로를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따라 고개를 돌리길래 그제야 살아있는 고양이인지 알아채고 다가갔다. 나를 봐도 도망가거나 놀라지도 않고 여유롭고 느긋하게 자세를 낮춰 엎드렸다. 이때는 미처 몰랐지만 놀랍게도 이 고양이가 내가 치앙마이에서 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꼿꼿한 정자세를 하고 있는 네발동물이었다.


  "선생님, 약주를 얼마나 하신 거예요. 이런 데서 주무시면 안 됩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 얼룩고양이는 왓 프라씽 사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널브러져 있었다. 취객이 아니다. 단지 잠에 취한 거다. 사원을 드나드는 수많은 관광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까뒤집고 누워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여워 킥킥 거리며 여러 사람들이 가까이 가서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대도 꿋꿋하게 움찔 한 번을 하지 않더라.




  보석 호박처럼 매혹적인 눈을 가진 이 고양이는 님만해민 길거리의 한 카페 앞에서 마주쳤다. 칠흑같이 새카만 털색과 멋진 눈빛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마치 작은 흑표범을 보는 듯했다. 저 노랗고 날카롭게 빛나는 눈을 도르르 굴려가며 지나가는 사람을 정찰하듯이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카리스마에 비해 흰 양말이 신겨진 네 발은 냥냥펀치 때문인지 꼬질꼬질한 점이 너무 하찮아 참을 수 없게 귀여웠다.




  여행기 4편에서 실버사원, 왓 스리 수판에서 만난 고양이를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온통 은으로 가득한 화려한 사원을 구경하고 있는데, 눈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담겼다. 은빛 용 조형물 안에 얼룩냥이가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뾰족뾰족한 장식들을 넘어 어떻게 저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는지도 의문인데, 저 좁은 틈에서 요가하듯 뒷발과 앞발을 쭉 펴고 있으면서도 그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있는 모습이 기가 찼다. 미처 다 넣지 못하고 밖으로 삐죽 나와있는 꼬리의 끝은 마치 용 장식의 일부인 것 마냥 능청스럽게 찰싹 붙어있는 것까지 정말 황당한 귀여움 그 자체였다.





  이 친구는 치앙마이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동물이다. 며칠 동안 아무 데나 벌러덩 누워 자는 동물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건만 왓 우몽 앞뜰에서 이 친구를 발견했을 때 그 자태에 낚여서 정말 심장이 철렁했다. 죽은 듯이 드러누워 있길래 걱정스레 다가가 동태를 살폈는데 해를 받아 눈이 부신지 미간은 구겨져 있었지만, 몸에 힘이 단 1그램도 안 들어간 것처럼 너무나 평온하게 잠들어 있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굴 사원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도 이 친구가 누워있던 자리를 살펴보니 텅 비어있었다. 어디 갔지 싶어 다급히 주위를 휘휘 둘러보니 떼굴 굴러서 간 건지 조금 옆쪽에 뽀얀 배를 드러내고 벌러덩 누워 곯아떨어져 있어 안도의 한숨을 뱉고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왓 우몽 사원의 인공호수로 가는 길에 만난 작고 귀여운 이 강아지는 나무 그늘 아래 있는 테이블을 좋아해서, 차갑고 딱딱한 대리석의 감촉이 걱정된 주인은 강아지를 위해 두껍고 포근한 방석을 깔아줬으리라. 주인의 사랑을 살포시 베고 평온하게 잠든 강아지에게서 사바이를 느꼈다. 강아지가 편하게 쉬길 바라는 마음, 낯선 사람들이 수없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누워서도 사람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평온하게 잠들 수 있는 강아지.

  한국에서의 나를 되돌아보면 예민한 길고양이처럼 잔뜩 날이 서서 인기척이 들리면  놀라 도망가거나, 누군가 내가 그어놓은 선 안으로 들어오려 하면 발톱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 강아지의 고요한 편안함이 내 마음도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잠든 강아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아웅다웅 살아가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길고양처럼 날을 세우겠지만, 여행길에서 만큼은 치앙마이 동물 친구들처럼 사바이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반년도 넘은 지금까지 이 작은 강아지가 뇌리에 깊게 새겨진듯 잊히지 않는다. 한 번씩 내 안의 길고양이가 나올 때면 이 강아지 사진을 찾아보며 내 깊은 마음속에 있는 한 조각의 여유를 찾아 꺼내곤 한다. 이 강아지는 나에게 사바이 그 자체이다. 진정한 사바이는 상대의 평온을 지켜주고 싶은 깨끗한 마음, 사랑과 신뢰 속에 평온할 수 있는 상대, 바로 그것이다. 치앙마이의 동물 친구들을 만나고 나는 비로소 사바이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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