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ias : 몬세라트, 검은 성모상, 고딕지구 쇼핑
'Hola(올라)' 다음으로 스페인 여행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단어는 바로 고맙다는 뜻을 가진 'Gracias(그라시아스)' 이다. '은혜, 우아함, 매력'이라는 의미의 Gracia(그라시아)가 복수형인 Gracias가 되면 '은혜들'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이 단어가 관용적으로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으로 굳어진 것이다.
우연히도 우리 숙소는 Passeig de (파세이그 데 그라시아), 바로 그라시아 거리에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번화가 중 하나로 명품 쇼핑 거리이자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가 위치해 있는 그라시아 거리는 이곳에 있었던 수도원 "은혜의 성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다른 많은 유럽권 국가가 그렇듯이 스페인 역시 가톨릭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영향은 스페인 문화 곳곳에 남아있다. 곳곳에서 그라시아라는 단어를 마주하게 되며, 하루에도 수십 번 종교와도 무관하지 않을 Gracias라는 단어로 마음의 은혜들을 표현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바르셀로나식 아침을 먹기 위해 츄레리아로 갔다. 갓 튀겨 김이 올라오는 바삭한 츄러스를 잼처럼 끈끈한 점성의 초코라떼에 콕 찍어 와그작 베어 먹었다. 빈속에 먹기에 조금 달고 느끼했지만 한국에서 먹던 설탕범벅 딱딱한 츄러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한적한 그라시아 거리를 바라보며 초코라떼도 호호 불며 마시다 보니 바르셀로나에 스며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에나스 미가스에서 점심으로 먹을 포카치아와 Zumo de naranja(쑤모 데 나란하)를 테이크아웃해서 지하철을 타고 카탈루냐역으로 갔다. 카탈루나역에서 몬세라트로 가는 기차표와 수도원으로 올라갈 케이블카와 산악열차 티켓을 사서 기차를 탔다. 기차 좌석은 여유롭였다. 편한 자리에 앉아 흔들리는 기차의 창문 밖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몬세라트에 도착했다. 몬세라트에서 수도원을 이동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케이블카이고 하나는 산악열차이며 각각 탑승역이 다르다. 상행은 케이블카, 하행은 산악열차를 타기로 결정하고 케이블카를 타는 역에서 내렸다.
산악지방이랑 추울걸 예상했지만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새벽공기처럼 맑지만 날이 서 있는 추위에 화들짝 놀라 껴입으려고 가져온 외투와 머플러를 서둘러 둘렀다. 들이마시는 숨에는 시리도록 차갑고 상쾌한 공기가 가득 차고, 내쉬는 날숨은 기다란 입김을 만들어냈다. 산 사이에서 불어오는 무심한 바람은 피부결을 할퀴고 머리카락 사이를 칼날처럼 날카롭게 스쳐지나갔다.
탑승권을 보여주고 탑승구 앞에 대기하다 보니 어느새 케이블카가 들어와 낯선 외국인들 여럿과 함께 탑승했다. 빠르게 올라가는 케이블카에서 보는 몬세라트는 그야말로 자연이 만든 예술이었다. 가파른 바위절벽을 지나 수도원 입구에 도착했다.
성당은 예배 중이라 수도원 근처를 둘러보다가 색색의 초가 켜져 있는 곳이 있어 이끌리듯 들어갔다. 촛불을 밝히는 것도 현대식이었다. 카트에 쌓여 있는 크고 작고 다른 색의 초들 중 마음에 드는 초를 골라 키오스크에서 카드결제로 기부를 한 후 초를 밝히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키가 큰 흰색 초를 골라 이곳에 오게 된 gracia(은혜)에 대한 gracias(감사)와 무탈히 여행을 마칠 수 있는 gracia(은혜)가 함께하기를 기도하고 gracias(감사) 인사로 기도를 마무리하고 나왔다.
성당 앞에서 조금 기다리니 내부로 입장할 수 있었다.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조금씩 줄어드는 앞줄을 따라가며 조심히 좁은 내부를 둘러보았다. 지나치게 엄숙하여 말소리도 차마 크게 못 낼 것 같은 가라앉은 실내 분위기와 상반되게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과 그림은 지나치게 화려했다. 어제 보았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따뜻하고 편안하게 감싸는 luz(빛)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질적이고 강렬한 빛깔의 luz(빛)에 제압당하는 듯한 위압감을 느꼈다.
기나긴 행렬의 끝에는 검은 성모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치유의 손이라고 불리는 손에는 세상을 상징하는 황금색 구슬을 들고 있었다. 검은 성모상에 직접 닿을 수 있는 곳은 손 위에 들린 황금구슬뿐이다.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마침 차례가 돌아와 검은 성모상 앞으로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황금구슬 위에 살포시 손을 올려놓고 검은 성모상과 마주 보았다. 눈을 감고 손 끝에 닿는 차가운 금속성을 느끼며 기도를 했다. 기도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검은 성모상을 뒤로 성당을 나왔다.
수도원 앞 광장의 벤치에 앉아서 톱으로 썬 듯한 몬세라트 암벽을 바라보며 도시락을 먹었다.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입 안 가득 퍼지는 포카치아와 naranja(오렌지)의 상큼한 gracia(은혜)에 gracias(감사)해졌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이어서 기념품을 사기 위해 고딕지구로 향했다. 카탈루냐에서는 새해선물로 카가네르라는 인형을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카탈루냐 전통 농부 차림으로 대변을 보는 우스운 모양새의 인형이지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특히 여러 가지 캐릭터, 특히 정치인들의 심각한 표정과 뒷모습은 대비를 이루며 웃음을 자아냈다. 흥미로운 점은 웃긴, 재미있는 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도 'gracioso(그라시오소)'도 gracia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캐릭터 중에 뭘 고를지 고민하다가 카탈루냐 전통복장의 작은 여자 인형을 하나 샀다. gracioso(웃긴) 기념품을 하나 샀으니 이제 예쁜 기념품을 고르러 갔다.
여러 가지 천연성분으로 만든 색색의 수제비누로 유명한 곳으로 갔다. 통비누와 귀여운 오리 모양의 비누를 골랐다. 기념품 쇼핑을 마친 후에는 아침에 간 그라시아 츄레리아보다 더 유명한 고딕지구 츄레리아에 들렀다. 아침에 먹은 츄러스보다 훨씬 담백하고 초코라떼도 진했다. naranja가 들어있는 환타 오렌지와 레몬을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언제 다시 오게될지 모를 Gràcia 거리를 오랫동안 눈과 마음에 지그시 담았다.
Gracias, Barcelona
고마워, 바르셀로나
#스페인 #스페인어 #스페인 여행 #포르투갈 여행 #이베리아반도 여행 #유럽 여행 #자유여행 #필름카메라 #필름사진 #바르셀로나 여행 #그라시아 거리 #츄레리아 #추레리아 #바르셀로나 츄러스 #스페인 츄러스 #바르셀로나 추러스 #스페인 추러스 #몬세라트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대성당 #검은성모상 #검은마리아상 #고딕지구 #카가네르 #사바테르 에르마노스 #Churrería #Caganer #Sabater Herman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