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지중해를 품은 바르셀로나

Zumo de naranja : 오렌지주스&구엘공원

by viajera 비아헤라

바르셀로나에서 처음 맞는 아침은 브런치로 열었다. 이른 아침 숙소 근처에 있는 브런치 카페 Buenas migas(부에나스 미가스)로 갔다. 샌드위치와 포카치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오렌지 주스를 시켰다. 빵도 맛있었지만 주스가 지중해 오렌지 100% 착즙이라 갓 딴 오렌지를 베어 먹는 것처럼 신선하고 달큼하고 상큼했다. 제철의 오렌지가 내는 환상의 하모니는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두 눈을 번쩍 뜨이는 충격적인 천상의 맛이었다. 스페인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을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오렌지주스를 고를 것이다.



'제주도'하면 자연스럽게 '감귤'이 생각나는 것처럼, '스페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제 '오렌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우선 우리나라에서 은행나무, 벚나무 가로수를 흔히 볼 수 있듯 스페인은 곳곳마다 가로수로 오렌지 나무를 심어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렌지의 나라 스페인에 간다면 꼭 외워야 할 단어는 바로 zumo de naranja(쑤모 데 나란하), 오렌지주스이다. 너무 길어서 어렵다면 zumo(쑤모), 주스는 빼고, naranja(나란하), 오렌지라고만 외워도 좋다. 사실 오렌지라고 말한다 해도 알아듣겠지만, 이 특별한 맛의 오렌지는 어쩐지 마법의 주문을 외치듯 naranja라고 불러야 비로소 지중해 햇살을 듬뿍 받은 오렌지의 맛과 향을 뿜어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구엘공원을 향했다. 내려야 할 정류장 이름을 못 듣고 놓쳐서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리게 됐다. 그런데 오히려 럭키비키였다.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뷰에 언덕을 더 올라온 덕에 오르막길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리막을 내려가 구엘공원 입구로 갈 수 있었다.



스페인 하면 또 떠오르는 것은 바로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이다. 바르셀로나는 바로 가우디의 역작들이 집약되어 있는 도시로, 구엘공원은 가우디가 영국식 정원도시를 지어 부유층의 주택단지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분양에 실패하였고, 이후 바르셀로나 시가 매입하여 공원으로 개방하게 된 것이다. 입장대기줄에 서서 기다리다 보니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공원 운영시간 전에도 자유롭게 드나들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구엘공원에서 하는 아침산책이 하루 루틴일 그들이 괜스레 부러워졌다. 9시 반에 입장하여 오디오 가이드가 안내하는 루트에 따라 바르셀로나 시민처럼 아침산책 하듯 찬찬히 공원으로 들어갔다.



비스듬한 언덕을 오르는 길에 가우디 집이 보였다. 지난밤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를 본터라 특징 없는 건물이 제법 밋밋하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가우디는 다른 건물을 건축하느라 바쁘고 가우디의 제자가 지은 집이며, 화려한 그의 건축과는 달리 그의 삶은 단출하고 소박했다고 한다. 어쩐지 조금 쓸쓸하게 느껴지는 가우디 집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니 밖에서 보면 야자수 같고, 안에서 보면 종유석 동굴 같은 회랑식 산책로가 나왔다.




산책로를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지중해 바다를 닮은 광장이 나온다. 구불구불한 광장을 둘러싼 의자는 색색의 타일로 꾸며져 있는데 햇빛을 받으면 마치 반짝이는 바다의 윤슬 같고, 곡선이 주는 동적인 느낌은 파도의 웨이브처럼 느껴진다. 광장에 서서 전망을 바라보면 과자의 집 같은 건물 두 채가 보이고 그 뒤로 바르셀로나 시내와 지중해가 한눈에 펼쳐진다. 저 멀리에는 진짜 지중해, 그리고 지금 서있는 구엘광장은 지중해를 모티브로 한 원더랜드인 것 같아 꿈꾸는 것 같은 느낌이 절로 든다.



광장 옆으로 난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입구의 야자수 모양 기둥 같은 기둥이 펼쳐져 있고 빨래 바구니를 이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빨래바구니는 없어서 아쉬운 대로 배낭을 머리에 이고 여인처럼 포즈를 취하고 함께 유쾌한 기념사진을 남겼다. 빨래하는 여인이 있는 곳에서 계단을 한번 더 내려가면 광장 아래 공간이 나온다. 광장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을 보면 단순히 환상적인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이 숨겨진 원더랜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이 있는 기둥 아래 원형 기둥이 시작되는 선은 기둥마다 제각각 높이가 다르다. 하지만 어디서 바라보나 일직선이 되게끔 설계되어 있다. 이런 세밀한 부분까지 건축공학적으로 계산을 하고 지었다는 점에서 가우디는 그야말로 집요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둥 아래로 뻗어있는 계단을 내려가면 그곳에 또 지중해가 숨어 있다. 바로 지중해에 있는 그리스에서 탄생한 그리스로마신화이다. 델포이에 있는 세상의 배꼽이라 여겨지는 움파로스의 돌,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델포이를 지키다가 아폴론의 화살에 맞아 죽은 거대한 뱀, 피톤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 그리스와 스페인은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같은 지중해를 공유하고 있고, 그리스로마신화는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원천이다. 본인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가 있고, 주로 인근 자연물에 영감을 받는 가우디가 그리스로마신화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가우디가 어떤 마음으로 그리스로마신화를 차용했을지, 그리스 시대에 바르셀로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 아래에 있는 동화 속 과자집 같은 건물 중 하나는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었고, 한 곳은 기념품샵이었다. 오렌지빛과 지중해 쪽빛이 들어간 알록달록한 타일 문양의 기념품을 사고 나오니 두 손에 지중해를 담은 것 같아 마음이 일렁거렸다.



과자집 앞으로 출구가 나있어 들어온 입구와는 다른 길로 빠져나왔다. 차분하고 모던한 길거리를 보니 구엘공원에서의 시간이 더욱 동화처럼 느껴졌다. 꿈에서 깨어나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어내려갔다. 걷다 보면 또 우연히 오렌지나무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로 발걸음이 naranja 과즙처럼 상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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