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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Jul 18. 2024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 낯선 남자와의 동거

나는 술래가 되었다. 남편이 어디에 숨었는지, 헐레벌떡, 숨이 찼다. 도통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상록수 같이 싱그러운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그가 보이지 않는다. 시정잡배 같은 너저분한 남자들만 보인다. 욕지거리를 일삼는 남자, 비속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남자, 썩소를 짓는 남자, 입방귀, 콧방귀 하는 남자, 억지를 부리는 남자, 우기는 남자, 책임전가 하는 남자, 가스라이팅 하는 남자, 아무리 찾아보아도,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제 내 남자는 어디에도 없다.

낯선 남자와 남은 평생을 이렇게 너저분하게 살아야 하나? 무섭고 두렵다.


"포장마차하는 남편이면 그런 남편 마누라지!"

마누라! 

아내, 부인, 집사람이 아니라 그도 나도 마누라!, 여편네! 이런 말들을 쏟아내는 우리가 여기 이 시간에, 이 공간에 덩그러니 있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고 그려왔었던 가정은, 27년 동안 가꾸고 지키고자 했었던 내 꽃밭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낯설고 낯선 풍경 속에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곳에서 낯선 남자와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말이 길다. 말할 힐요가 없다. 그런 말은 이렇게 해야지!"

5초가 길다니, 10초가 길다니, 30초가 길다니, 이런 말은 이렇게 보고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이지, 사업을 같이 하는 부부가 차 안에서 이동할 때 사업장, 직원들, 어르신들 있었던 일을 알려주고 의논하는데, 이건 또 무슨 망발인가. (사무실 안에서 행정업무를 주로 하고 있으니, 남편이 실무적으로 모르는 게 많았다. 내가 주로 직원들, 어르신들, 보호자들을 많이 접하고, 또 내가 직원들 교육부터 실질적인 업무를 많이 하고 있으니 센터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아는 게 더 많았었다. 남편이 알아야 했기 때문에 수시로 말해주고 있었다.)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소위 큰 조직의 직장에서 몇십 년을 교육받고 직원회의를 주관하던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지금까지 국어논술강사로 업을 한 나에게는 하나같이 말이 안 되는 것들 뿐이었다. 인간적으로도 이해가 안 되고,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 되는 낯선 남자와의 어쩔 수 없는 동거 때문에 나는 심리학 공부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마음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지. 왜 자꾸 나에게 묻느냐,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냐? 의사를 만나던지, 기도를 하던지 그래라."

내가 틀린 건가? 부부간에 존칭어를 썼었던 우리가 서로를 반말로 대하고, 막 대한다. 그도 나도 서로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학생들만 가르치느라 성인들의 세계를 내가 너무 모르고 있는가? 내가 순진한가? 내가 어리석은가?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상황에 대해 납득이 필요했다.

낯선 남자는 억지를 쓰고 합리화를 잘했었다. 나는 당하지 않기로 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내가 없어진다.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정년 해서 집에 있으면 아침에 갈 데가 없다. 갈 데가 필요한 남편은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명예퇴직하고 아직 준비가 안 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코로나도 시작되었다. 


남편의 욕망의 거대한 화산이 나를 덮쳤다. 그건 재앙이었다. 차근차근 준비를 잘했다면 적어도 자연재해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 재앙은 인재였었다. 


언제 터질지 예상할 수 없는 활화산, 휴화산 옆에서 살면 불안하다. 두렵다. 공포는 나를 집어삼켰다. 행복했었던 내 일상, 우리 부부 일상, 우리 가족의 일상, 우리 가정의 일상은 이제 먼 옛날의 과거의 유물로만 남았다. 화석은 과거만 보여줄 뿐이다. 


그 과거로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다른 창조일까? 파멸일까? 회상일까?

그건 사람의 선택의 몫이다. 


화산은 피해야 한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것도 터지기 전에 재빨리 (몰랐다. 너무 늦었지만 깨달았을 때가 제일 빠르다고 생각한다.) 화산이 있었던 곳도 화산이 멈추고 나면 그 주변에 새로운 식물들이 생긴다. 토양도 기름지게 된다. 새로운 열매가 열린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비옥한 자연의 혜택을 누리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게 된다.


돌이켜 보니 거대한 폭풍에 맞서고 있는 상록수 나무 밑에 있어서 나도 같이 맞서고 힘들었던 것 같다. 그 폭풍이 멎고 지금은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지중해 바람이 불어온다. 


나무 밑의 그늘이 편안하다. 

다시 찾게 된 소소한 일상, 그는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내가 찾은 걸까? 아니면 그가 숨었다가 나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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