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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Jul 25. 2024

<단어를 적고 뜻을 적고 짧은 글짓기를 했다>

-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단어 하나 찾아 적고 쌍점 찍고, 낱말 뜻 적고, 짧은 글짓기를 했어요. 초등 1학년처럼요."

"나를 잊지 않으려고요."

"미아처럼 자기 이름을 안 잊으려고 매일 적는 것처럼요. 매일 공책에다가 자기 이름을 계속 쓰는 거 있잖아요."

"자기 집 주소를 안 잊으려고, 아니면 들은 고향에 대해서 안 잊으려고 매일 되뇌는 것처럼요."

"언젠가는 부모님이 찾아올지 모르니까 이름을 안 잊으려고 매일 쓰는 것처럼요. 매일 안 잊으려고 외우는 것처럼요."

그때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먹먹해져서 울컥해졌다. 내 눈언저리가 빨개졌다. 눈물이 속에서 쏟아질 것 같아 울음을 삼켰다. 내 이야기를 숨죽이면서 듣고 있던 작가 선생님의 눈도 빨개졌다. 나는 나를 잊지 않으려고 쓰이지 않는 글 대신에 단어를 찾아 적고, 쌍점을 찍고, 초등학생 1학년처럼 짧은 글짓기를 했었다. 애써 나오지 않는 머리를 굴리면서 억지로라도 지어냈었다. 

그렇게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영영 나를 잊을 것 같았다. 


한 글자, 

한 글자, 

자판으로 한 글자씩 두드리고는, 

그냥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었어. 나는 글 가르치는 걸 좋아한 사람이었어.

가슴이 먹먹했다. 답답했다.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이 아픈 고통을 어떻게 표현해야 알아줄 수 있을까.


아무도 없는 센터 사무실, 내 자리, 내 컴퓨터 화면 앞에서 나는 나를 잊고 싶지 않아서 나만의 슬픔을 애써 삼켰다. 그렇게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내가 나를 영영 잊어버릴 것 같았다. 


모두가 퇴근한 곳에서 나는 이 사업을 지키기 위해서 이 사업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어르신 한 명을 더 유치하기 위해서 영업 공부를 하고, 행정업무를 배우고 익히고 수많은 서류 작업을 하면서 나는 내가 매일 죽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매일 나를 죽이면서 살아야 했다. 내 머리가 바보가 되고 퇴화가 되는 것 같았다. 


나를 매일 죽이는 여자.

나를 매일 죽여야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여자.

그게 나였다.


술을 먹을 수만 있다면, 술이라도 퍼먹고 싶었다. 그래도 술은 먹지 않았다. 

술 먹는 여자, 술 먹고 술주정뱅이처럼 구는 여자, 그런 여자까지는 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나를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었다. 나중에는 가끔씩 기웃거리던 브런치 플랫폼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마음껏 표현하는, 마음껏 쓰는 작가들이 미웠다. 그들이 너무 부러워서 나는 더 이상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도서관도  갈 수가 없었다. 책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책을 보면 이 사업장에서 버티는 것이 힘들 것을 알았다. 이 사업장에 나를 가두어 두려면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 나를 기억해 내려고 너무 애쓰지 말자. 그냥 포기하자. 남편과 죽을 때까지 살려면 마누라, 여편네로 너 죽고 나 죽고, 아웅다웅하면서 볶고 살자. 우리가 어떻게 예전의 우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사업장을 포기하고 팔아버린다고 우리가 다시 예전의 우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4년은 절대로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이미 타성에 젖어버린 우리들의 엉망진창인 시간들, 그 시간 속에 잠식되어 버려서 꼼짝없이 쇠바퀴에 끼여진 시간을 어떻게 꺼낸단 말인가.



예시로 나와 있는 사례글, 행정 업무를 위한 글은 아주 초라했다. 행정업무를 위한 글은 그냥 똑같은 말의 반복이고 가끔은 유치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고작 이런 글을 쓰려고 그렇게 오래 공부를 하고, 습작을 하고 글을 가르치고 했나? 마음이 비참했었다. 


이런 사례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 자식들 눈에서 피눈물 쏟게 하고 공부하고(일을 병행하면서 자식들을 키운 어미의 심정은 어미만이 안다.) 다녔던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를 우습게 보이게 했다. 


나는 지금 어쩔 수 없이 행정 업무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비밀, 나 혼자만 아는 비밀.

그게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를 모욕 주는 남편, 아무도 몰래, 알 수 없는 그의 말과 행동들, 풀 수 없는 수수께끼 앞에서 나는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몸무게가 39kg이 되었고 앞 머리는 머리가 많이 빠져 속이 허옇게 보였다. 식사를 하면 위에서 습한 무엇이 올라왔다. 위장에서 올라오는 습한 액체로 인해서 점점 밥을 먹는 게 힘들었다. 밥맛이 없어졌다. 그리고 살맛도 없어졌다. 죽지 못해서 산다,라는 푸념,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어릴 때 내 친정엄마가 한 번씩 허공을 보면서 했던 말, "훨훨 날아가고 싶다. 새처럼." 우리를 두고 그런 말을 하는 엄마가 미웠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무슨 의미인지 이 나이가 되니 알 것 같았다.

우리 엄마도 우리들을 이렇게 키웠구나. 우리 엄마도 하루하루를 버텼구나.




남편에게 아무리 물어도, 끈질기게 물어도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기본적인 행정업무를 10개월 이후에 알았을 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내가 해내기 위해서, 혼자 알아내 가면서 버티고 있었는데, 남편이 가르쳐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남편이 알아서 다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남편이 이쪽 방면의 전문가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남편은 온갖 해명과 변명으로 악착같이 가르쳐주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묻지도 않았던,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여직원한테는, 입사한 지 7일도 안된 초보 여직원한테는 열심히 설명해 주면서 가르쳐주고 있었다. 



내가 이 사업장의 주인이고 경영자이고 내가 이 사업장의 원장이고 모든 일을 관할하는 이 아내에게는 눈치 동냥으로 일을 배우게 하고 있었다. 

사업을 하자고 조를 때와 달리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려고 하는, 버티는 남자의 심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아무리 싸워도, 아무리 가정이 깨져도, 아무리 부부가 깨져도, 집에서 내보내도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려고 하는 남자, 

그것 모르면 원장 못하나? 


네, 원장 못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서류에 대해서 모르는 원장도 있습니까? 다른 센터에 가서 물어서 배우라는 남편, 내가 누구인지도 다 알고, 내 남편이 누구인지도 다 아는데, 다른 센터에 가서 가장 기본적인 서류인 행정업무를 배우면 된다는 남편, 나를 모욕하고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자식들이 오물오물할 때부터 공부를 했었다. 공부가 소원이었다. 자랄 때 나는 성실했었다. 책을 좋아했었고, 공부를 꽤 잘했지만 부모님의 지원을 받기가 어려웠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놓쳤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나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 우리 가족들은 살 수가 있었다. 동생들이 학교에 갖고 갈 육성회비, 교재비, 차비, 준비물품 등 동생들이 많았고, 동생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동생들과 나이 차이가 많았다. 나에게는 공부가 사치였었다. 한창 멋 부릴 나이였지만 나에게는 돈이 없었다. 


결혼한 이후에 결혼생활을 하면서 두 자녀를 키우면서 공부했었다. 글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자격 있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빌린 습작을 위한 책 몇 권을 읽고 습작을 했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나는 운 좋게 소설로 등단하였었다. 논술을 하는 선생으로서 나 스스로 자격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등단하였기 때문에 나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 쉽게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글을 가르치고 첨삭하고 책을 좋아했었던 나에게는 남편이 원하는 환경, 공간, 사람들로 인해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를 포기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더 쉬운 것 같았다.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해야 하고, 사투리를 써서 친근감 있게 들려야 했고, 억세고 거센 소리들을 하고 말을 빨리 했어야 했다. 


다른 센터 원장님들은 이런 식으로 한다, 는 남편의 말, 센터 원장님들은 대개 이래요, 직원들의 말, 부드럽고 여유 있는 친절한 말씨보다는 탁하고 거칠고 크게 고함치듯 해야 직원들도 만만하게 안 보고 사투리를 써서 말해야 어르신들도 친근하게 여긴다고 했었다. 어르신들처럼 몸빼바지 같은 옷을 입고, 돈을 잘 버는 다른 원장님들처럼 개량한복 같은 차림을 하고, 옷도 단벌처럼 갈아입지 않고 입어야 원장님 같다는 말들을 했었다. 완전히 가면을 쓰고 나를 포장해야 그들이 원하는 만만하지 않은 원장이 된다는 것,  그러면 원장의 말을 잘 듣고, 나는 비영리사업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도와주고 싶은 센터로 보인다. 좀 불쌍해 보이는 게 낫다. 일부러라도 그렇게 입고 다닌다. 내가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말들 뿐이었다. 불쌍하고 싶지 않아서 공부하고 돈을 벌고 배우려고 했었던 나에게 불쌍해 보이기 위해 연출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가혹했었다. 

속에는 억울함, 분노, 원한으로 가득 차었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일도 아니고, 내가 한 번도 하고 싶었던 일들도 아니었다.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다른 사업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정이 불행해서 행복을 찾아 시작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부부가 직업이 없어서, 직장이 없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순전히 남편이 원했다. 단 한 사람, 남편이 원한 일이었다. 그 남편을 위해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어야 했다. 내 자녀들은? 부모의 선택이니, 그냥 받아들여야 했었다.

내가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남편은? 내가 남편이 원하는 그 일을 그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나는? 남편은? 그곳에서 그런 악몽 같은 악인들을 연달아 만날 일이 있었을까? 

(어떤 한 사람이 살아서 죽을 때까지 겪지 못할 그런 일들을 많이 겪었다. 나는 그 가혹함을 여기에 다 담고 싶지는 않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피식, 할 일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처했었던 상황, 사람, 시간, 공간, 모든 것을 똑같이 겪지 않고는 공감도 이해도,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원한 그 사업을 중간에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편의 명예퇴직금 전부와 많은 대출금, 손을 놓을 수도, 계속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었다. 빚은 급속도로 불기 시작했다. 코로나 있기 전에 이 사업을 했어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사업은 더 어려워졌다. 망하는 센터도 있었고 남몰래 넘기는 센터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시작했었던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힘들었다. 


내가 그렇게 지키려고 키우려고 한 사업장, 그 사업장은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됐다. 그 4년의 기간 동안 나는 포기할 수도 없는 그 사업이 조금씩 성장할 동안에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사업이 안정화될 때쯤 나는 또다른 위기가 오고 있음을 느꼈다. 일촉즉발의 위기! 하루라도 여기에 더 있으면내게 또 사단이 생길 것 같았다. 이번에는 피하고 싶었다. 남편은 일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나를 자꾸 들쑤셨다. 남편과 인생을 같이 한다면, 남편과 이 사업장에서 이 사업을 계속 한다면 사단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떤 직감력이 생겼다. '무서운 공포심',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꽉 조여 오는 죽음의 손놀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많은 날, 잠 못 드는 날, 나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어떻게 죽으면 덜 고통스러울까? 죽는 방법을 생각하고 그렇게 살았었다. 내 얼굴은 웃고 있지만 내 속은 다른 영혼이 되어 있었다. 내 영혼까지 이미 죽어버린 빈 껍데기, 그게 나였다. 


그런데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무슨 큰 사단이 생길 것 같았다. 지난 4년 동안 사단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사단에 대해서 내가 앞으로 연재를 할 동안 내가 다 밝혀야 하는지, 덮고 가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죽음이 내 눈앞에 왔을 때 나는 피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죽음이 나를 덮치려고 할 때 그때, 나는 살고 싶어졌다.


나는 살고 싶었다. 남편이 없는 다른 세상, 남편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모든 게 남편과 남편의 주위 사람들로 인해서 그 문으로 나의 모든 무섭고 두려운 일들이 들어왔으니, 남편이 없는 곳에서 남편을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피해서 내가 만드는 세상, 나만 알고 있는 세상으로 나는 도망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숲에 갇혀 버린 나, 길을 찾기에는 너무 멀리까지 온 나, 내가 누구인지 이제는 모르게 된 나, 30년 함께 살았던 남편과 자녀들, 허깨비 같았다. 내 손가락 사이로 부서져서 먼지와 같이 떨어지는 흙부스러기의 잔상들,  내 손에 남은 것은 "0"이었다. 


나의 장례식, 

내가 죽으면 그들은 몹시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 속에 점점 나를 잊을 것이다. 그리고 원래 내가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일상에 적응해서 살아갈 것이다. 아내를,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죽음의 잔상만 기억하고. 지난 4년의 모습만 그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원래의 내가 아니라 타인이 된 나의 모습을 진짜로 여기고, 가짜의 나를 진짜로 여기면서. 

진실을 애써 외면할 것이다. 진실을 알면 그들이 너무 아프게 되니까. 진실을 모르는 게 더 속이 편할 것이다.


내가 그 사업을 위해서 얼마나 많이 노력했었고, 코로나에서 그 사업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나를 죽이면서 살았는지, 그 많은 악인들과 어떻게 처절한 전쟁을 하고 살아남았는지, 이 사업장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전투적으로 살았는지, 소중한 가치들을 다 잃어버리고 남은 사업장 하나, 나는 필요 없었다. 


(내가 왜 그 사업장을 지키려고 몸부림쳤을까? 내가 왜 무엇 때문에 나를 포기하고 살았을까? 어미라면 알 것입니다. 아내라면 알 것입니다. 여자라면 알 것입니다.)


나는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나를 찾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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