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할 그 시절의 사실주의

by 현율


쓸쓸한 빗소리는 굵었다 가늘었다 의연히 적적한 밤 공기에 더욱 처량히 들리고 그림자진 등피(燈皮) 속에서 비추는 불빛은 구름에 가린 달빛처럼 우는 듯 조으는 듯 구차히 얻어 산 몇 권 양책(洋冊)의 표제금자(表題金字)가 번쩍거린다.

- 현진건, <빈처> 중


현진건<빈처> <운수 좋은 날>, 김동인<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등은 책과 멀리하는 사람들조차 알고 있는 작품들이다. 여러 교과서에도 전문 또는 일부가 실렸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 오페라(운수 좋은 날) 형식으로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이 소설들을 제대로 접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저 오래된 문체로 쓰인 우울한 서사와 남녀 간 낡은 감정 묘사들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내가 속한 독서모임에서 이 소설들을 주제로 골랐다.(한국단편문학선 1, 민음사 2023 1판 66쇄) 이 작품들이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백여 년이 되었다는 문학사적 의미 탓이 아니다. 이 소설들의 문학적 가치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것에 비해 훨씬 탁월하기 때문이다.


<빈처>에서 성공을 꿈꾸는 무명작가인 ‘나’는 궁핍하기만 한 현실을 짐짓 외면한다. 아내는 살림가지를 하나씩 전당포에 내다팔며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소설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내’가 가진 말라버린 자존심, 성공에 대한 조바심과 타인에 대한 열등감들은 소설의 전반에서 미묘한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독자는 ‘나’의 마음속에 들어앉아 연민과 갈등, 우울과 위안들을 현실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화자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를 묘사하는 문장들은 감탄사가 절로 날 정도로 유려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운수 좋은 날>의 인력거꾼 김첨지는 하루 종일 이어지는 손님들과 매출에 마치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기막힌 시간들을 보낸다. 하지만 그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이미 병든 아내가 사망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들이닥칠 (아니 이미 와버린) 불행을 목격하기 두려운 마음에 어떻게든 현실을 외면한다. 그리고 김첨지의 이런 심리는 작가의 촘촘하고 농밀한 묘사 속에 소설 내내 독자의 눈을 잡아끈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이 가까워올수록 그의 마음조차 괴상하게 누그러졌다. 그런데 이 누그러움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요,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을 빈틈없이 알게 될 때가 박두한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에 다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리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에 가까운 벌이를 하였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 현진건, <운수 좋은 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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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백조> 창간호에 20살의 나이로 등단했던 나도향(1902-1926)은 어땠을까. 그는 이 시기 한국문단에 본격화된 사실주의로 돋보였던 작가이다. 가난 때문에 경성의과전문, 와세다 모두 중퇴해야만 했다. 한 번도 결실을 맺어본 적 없는 사랑은 작가의 인생에 짙은 구름을 드리웠고, 24세에 이 천재 작가는 요절하고 만다. 나도향의 소설에서 쉬지 않고 직선으로 이어지는 서사들은 군더더기 없는 묘사들로 가득한데, 그 농축된 간결함은 독자로 하여금 한 숨에 작품을 읽도록 만든다. 그의 단편 <물레방아> 마지막 구절은 이런 문장으로 맺는다.


칼자루를 든 손이 피가 몰리는 바람에 우르르 떨리더니 피가 새어나왔다. 방원은 그 칼을 빼어들더니 계집 위에 거꾸러져서 가슴을 찌르고 절명하여 버리었다.

- 나도향, <물레방아> 중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단편소설은 1920년대 김동인을 필두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1919년 3.1운동으로 촉발된 민족의 거센 저항에 직면한 일제는 회유적 문화정책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문인들이 동인지나 신문 등을 기반으로 왕성한 창작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때 한국 문단은 황금 같은 문학 천재들을 폭포처럼 쏟아냈다. 일제의 수탈에 척박해진 이 땅에 낭만주의가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1910년대 계몽주의에 기반을 둔 글들이 태동했다면, 이른바 ‘이야기’를 좋아하는 대중들을 향해 작가들은 처절한 현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단편소설 내에 민중들의 가난과 사랑과 희망과 고통의 서사를 담아냈다. 그런 역사가 꿈틀거리며 시작된 시기가 1920년대였으니, 이 소설들이 어떻게 그저 ‘추억 속의 옛날 문학’일 수가 있겠는가. 김동인에서 시작되어 현진건, 나도향, 염상섭 등으로 이어지던 그 시절의 사실주의 문학들은 한국 문학의 굳건한 뿌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실린 한국 단편소설들은 지난 시대의 삶을 재생시켜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보편적 문제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 이남호, 민음사 한국단편문학선 ‘엮은이의 말’ 중(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IMG_0828.jpg 요절한 천재 나도향을 추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