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문득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뭇가지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가 떠올랐다. 나비는 번데기에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리다가 너무 늦어지는 것 같아서 허리를 굽히고 입김으로 열심히 데워주었다. 그래서였는지 내 눈앞에 빠른 속도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며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왔다. 날개가 뒤로 접히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그때의 공포를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날개를 펴기 위해 애썼고, 나는 입김을 불며 나비를 도우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기 위해 날개를 펴는 일은 태양 아래서 서서히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내 입김이 때가 되지도 않은 나비를 집에서 나오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몸을 떨며 몇 초 뒤에 내 손바닥 위에서 죽었다.
가녀린 나비의 시체만큼 내 양심에 무거운 가책을 주는 것 없었다. 오늘에야 비로소 나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달았다. 서두르지 말고, 안달하지도 말고, 자연의 리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새해의 아침을 생각했다. 그 가엾은 나비가 내 앞에 나타나 날개를 파닥이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청설모인지 무엇의 울음소리인지 알 수 없는 동물의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호텔 바로 위를 날아가는 듯 가깝게 들리는 비행기 소음도 님만해민의 아침을 알리는 소리 중 하나다. 두 번의 새해 아침을 맞이하고 어느새 1월 마지막날이다. 이렇게 하루하루의 시간이 흘러가면 한해 마지막을 맞이하고 그 시간만큼 우리는 죽음에 가까워질 것이다.
누구도 생로병사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기 위해 날개를 펴는 과정에 억지로 입김을 불어서는 안 된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내 앞에 펼쳐진 조건과 환경에 굴복하며 살아야만 할까. 여기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유의지를 불사른 인물이 있다.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조르바이다.
조르바는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다. 어릴 적 버찌가 먹고 싶었던 그는 아버지의 돈을 훔쳐 버찌를 사다가 배가 터질듯할 때까지 먹어 버찌에 대한 욕망을 끝까지 채워 없애버린다. 또한 감정에 충실하며 산투르를 켜고 춤을 추고 먹고 마시며 마음껏 사랑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욕망하지만 채우지 못할 때 갈망한다. 죽을 때까지도 욕망을 다 채우지 못한 채로 고뇌하다 사라지는 존재가 인간일지 모른다. 형이상학적인 고민에 골몰하는 보스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일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조르바가 욕망을 채우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대리 만족의 짜릿함마저 느껴진다.
남자들의 마음을 앗아간 과부를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죽이려 할 때 유일하게 달려든 사람이 조르바였다. 과부를 짝사랑하던 보스도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조르바는 인간으로서 과부 한 명을 온 마을 사람들이 죽이려 하는 것에 개탄하며 몸을 던진다. 조르바는 군중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성을 불태웠다. 인간으로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마음은 무엇이며 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 결국 과부는 사람들에게 살해되었지만 조르바는 인간이고자 최선을 다했다.
무엇보다 조르바가 죽음을 맞이한 순간이 놀랍다. 그는 죽기 직전 두 발로 일어나 창가로 가서 먼 산을 바라보며 울다가 웃으며 손톱을 창틀에 박은채 서서 죽는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두 발로 굳건히 서겠다는 의지를 떨치다가 죽어갔다. 죽는 순간에는 누구나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르바는 달랐다. 목숨이 붙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그는 살면서 했던 모든 행적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며칠만 지나도 후회할 일들이 생기는데 인생 전체를 후회하지 않는다던 조르바의 자기 삶에 대한 자신감이 부럽다.
죽음을 기억하고(메멘토 모리),
나의 운명을 사랑하고(아모르파티),
지금 여기를 사는(카르페 디엠)
지혜와 용기를 실현하며 살 수 있는가.
세계를 누비며 글을 썼다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떠올린다. 그가 이곳 치앙마이에 왔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글을 썼을까. 치앙마이에서 그를 생각하고 그가 쓴 소설을 읽으며 삶에 대하여, 자유에 대하여 곱씹어보고 있는 오늘이 나에겐 전부인듯한 하루다.
-치앙마이 올드타운 Fun Forest Cafe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