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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 Oct 08. 2024

집에 갇혀 고립된 생활을 하다

외출을 잘 하지 않았고, 외출이 어려웠고, 외출을 할 수 없었다

원래 나는 어느 종교에 독실한 신자였고 그 종교 안에서 오랫동안 청년 단체 활동을 하면서 인간관계가 있었다. 그런데 2020년에 종교 생활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그곳에서 나오게 되면서 종교에서의 모든 인간관계도 끊어졌다. 종교 외의 인간관계는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 친구는 있었지만 학교에서만 만나고 그 외의 시간에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개인적으로 따로 연락하거나 만났던 친구들도 조금 있었지만 그 친구 관계들마저 하나 둘 끊어져 내겐 친구가 없었다. 대신 나와 연령대가 다른 엄마의 친구를 친구로 사귀었지만 언젠가부터는 그 친구도 연락이 끊어졌다. 어쩌다가 가끔 연락이 닿았는데 최근에는 연락도 끊기고 소식을 잘 모르겠다. 나는 동성보다는 이성이 편했고 내가 연락을 하면 받아주는 이성인 친구는 있다. 종교 생활에서 만난 친구인데 연락을 자주 나누지는 않고 두세 달에 한 번쯤 내가 그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다. 이렇듯 친구 관계가 대부분 끊어지고 없어지면서 외딴 섬처럼 홀로 지내게 되었고 그렇게 된 지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외로움을 타기도 했고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혼자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딱히 외롭지 않고 혼자서도 잘 지낸다.


그리고 내가 직장을 다니거나, 무엇을 배우러 다니거나, 어떤 모임에 소속되어 다니거나 하는 생활이 없다 보니 거의 집에 있게 되었고 만나는 사람도 가족뿐이었다. 내가 나루를 집에 두고 하루의 많은 시간을 어딘가에서 지낸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았고, 마음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서 지금으로서는 취업에는 뜻이 없었다. 무엇을 배우러 다니기에는 실행력이나 의욕이 부족했고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배우러 다니는 것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지도 않았다. 어떤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자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어느 모임을 찾아가야 할지 모르겠고 모임을 선택해서 나가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해서 늘 나의 인간관계 상황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새로운 인간관계로의 확장이 어렵고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관계 외에 다른 관계의 맺음이 없이 최소한의 인간관계로 고착화되어갔다.


그래도 과거에는 매일 한 번씩 외출을 다녀오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외출도 잘 하지 않는다.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다녀오거나, 엄마랑 같이 늦은 오후에 나루를 산책시키거나, 은행에 다녀오거나 하는 등 최소한의 꼭 필요한 용무 외에는 외출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집 앞에 복합 쇼핑몰이 있는데 구경도 잘 다니지 않고, 필요한 물건을 살 일이 있다면 병원에 가는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가지고 오곤 한다. 요즘 시대에는 온라인 스토어가 잘 되어 있고 꼭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아서 물건을 고르지 않는다. 쇼핑도 집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서 하기 때문에 더욱 나에게 외출을 할 일이 없다. 나의 외출은 꼭 필요한 경우 최소한으로 이루어졌다.


무엇 때문인지 외출이 어려웠다. 외출을 할 생각을 해보면 마음속에 어떤 막힘이 들었고 외출을 할 수가 없었다. 두려움이 해결되지 않았는지? 무엇 때문일까. 병원에 다녀오거나 꼭 필요한 용무가 있는 경우는 혼자서도 잘 다녔지만, 그 밖의 외출은 어째서인지 마음에 막힘이 들었다. 엄마가 나더러 집 앞 복합 쇼핑몰에 구경을 다녀오라고 혼자만의 시간을 지내고 오라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거절을 했다. 과거에는 꼭 필요한 용무가 아니더라도 내가 살기 위해서 나루를 집에 엄마랑 있게 하고 시간을 내어서 하루에 한 번씩 나갔다 오곤 했었는데 말이다. 지금의 나는 세상 구경에 관심이나 흥미가 적었고, 꼭 필요한 목적이 있었으면 외출을 했을 텐데 내겐 외출의 목적이 없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혼자서 외출하기는 어렵고 엄마와 함께 외출하는 시간들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집에 있다 보니 외출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았다. 집에서 있게 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바깥에 나가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았다. 외출이 어려워서 집에 있게 되고, 집에 오래 있다 보니 집을 나가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외출이 어려워지는 악순환 속이었다. 그렇다 보니 외출을 잘 하지 않았고 외출이 어려웠다. 그래도 가끔씩 어렵게 용기를 내어 외출을 나가고 나면 바깥공기를 마시며 집 안에서만 머무르던 고착화된 기분이 깨어져 전환되었고, 더욱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내게는 외출을 나갈 용기보다는 외출이 어려운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외출이 어려웠던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나루와 관련된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번에도 이야기를 했었지만, 나루를 집에 혼자 있게 할 수가 없어서 외출을 나가기가 어려웠다. 이 집에서 나랑 같이 폭력적인 층간 소음을 겪은 나루였기 때문에 나루를 집에 혼자 둘 수가 없다. 나는 항상 나루랑 함께 있어 주고 집에서 나루를 지킨다. 나루를 집에 두고 나 혼자 외출하여 지내지 않는다. 외출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하고, 나갔다가도 금방 집으로 돌아왔다. 외출이 필요한 경우에는 엄마와 시간을 맞추어서 엄마가 나루랑 집에 같이 있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래도 요즘에는 층간 소음이 많이 줄어들었고 가끔씩 나루를 집에 두고 엄마랑 한 시간 정도의 외출을 다녀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층간 소음 때문에 피신을 다니느라 나루를 데리고 외출을 잘 했는데, 요즘에는 나 혼자서 나루를 데리고 다니기가 힘들어졌고 혼자서는 나루와 산책을 나가지 않는다. 나루와 산책을 할 때 나루가 사람을 향해 잘 짖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나도 많이 지쳤고 이제는 나루와 둘이 산책 나가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해서 집에서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산책을 나간다. 나루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루가 밖에 나가자고 신호를 보내도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며 집에 머무른다.

어쩌다가 우리는 집에 갇혀서 엄마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엄마는 항상 바쁘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집을 떠나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더 많다. 성당 일이나 아파트 경로당 일로 바쁘고 사람들과의 모임도 만남도 많고 집 밖을 나가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나루랑 나는 집에서 긴 시간 동안 엄마를 기다려야 한다. 이젠 엄마 없이는 산책도 어려워서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엄마 없이는 산책이 어려워진 것, 그것이 우리를 집에 갇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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