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쉼 속에서 자연스레 나를 잃어버렸지만 나는 끊임없이 나답게 살기 위해 애썼다. 나의 본업인 디자인이 아닌 일들이었지만 나다움으로 만들어갔던 경험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하는 일이 잘 흘러가지 않아서 쉬었거나 층간 소음이 심해서 쉬어야 했거나 내겐 쉼이 많았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쉼의 이유가 있었지만 그 시간들은 내가 없는 시간들이 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시간을 나의 목표, 나의 노력, 나의 일 등 내 것들로 채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쉼의 시간이 답답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황 속에서 나의 다음을 기다려야 했다. 내가 언젠가는 다시 또 일어설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어쩔 수가 없는 쉼의 시간을 지냈다. 나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으로 쉼을 지냈다고 하지만 그 쉼의 시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길었고, 그렇기 때문에 견디기가 힘들었다. 언제쯤이면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내게 쉼이 많았고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만 때가 되면 또다시 나는 나로서 일어설 준비를 했다. 쉬다가 일하다가 쉬다가 일하다가 하는 식의 패턴으로 나는 늘 무언가를 했고 늘 쉬었다. 일하다가 쉬게 되는 경우가 잦았고 쉬다가 다시 일어나서 일하는 경우가 잦았다. 일이 한 가지로 지속적으로 흘러가지 않았고 끊김과 새로운 시작이 반복되었다. 나는 본래 디자인 전공자이고 17년 동안 그 분야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했는데, 그동안에도 나의 일은 끊김과 새로운 시작이 반복되었다.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디자인이라는 한 분야에서 있다가 2019년부터는 디자인이 아닌 다른 일들을 해봤지만 마찬가지로 끊김과 새로운 시작이 반복되었다. 일의 끊김이 있지만 어느 기간 동안 쉼을 지내다가도 다시 일어나 새로운 시작을 했다. 엄마도 내가 집에서 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보기가 답답했을 텐데 그러다가도 언젠가 내가 다시 또 무언가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다렸다고 한다.
내가 없었던 시간을 지내면서도 때가 되면 나는 다시 나의 일을 찾았는데, 2019년부터는 내가 하던 일이 아닌 처음 해보는 일 내 것과 다른 일을 했다. 그 첫 경험이 학습지 교사였다. 사회적으로 인식이 낮은 직업이었는데 가르치는 일이고 아이들을 만난다는 점에서 그 직업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하던 일이었던 북 디자인으로는 일감을 얻기가 어려워 돈을 벌기가 어려웠고, 내게는 돈을 버는 일이 중요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학습지 교사가 되었다. 나중에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스코리아도 그 일을 하기 위해 왔더란다. 나는 그 미스코리아가 이 일을 하기 위해 온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습지 교사가 사회적으로 인식이 낮은 직업이라고 하는데 일 자체가 어려웠다. 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처음 겪어보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았다. 일단 아이들을 만나러 집집마다 찾아 돌아다녀야 했고, 과목마다 다른 교재들이 있었으니 각 교재들의 특성을 파악해야 했고, 각 과목의 교재들마다 수많은 다른 단계들이 있었고, 아이들의 학습상태에 따라 맞춤형으로 교재를 선택하여 가르쳐야 했다. 우선 교재를 잘 알아야 하고 각 아이들 학습상태에 맞는 교재 선택을 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런 데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아이들 눈높이의 언어로 개념들을 가르쳐야 했고 학부모와의 상담도 있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안에 학습을 마쳐야 했다. 처음 수업을 나갔을 때 팀장님께로부터 듣기론 시간 맞추는 것만으로도 잘 한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처음부터 시간 맞추기가 어려운 일인가 보다.
보통은 그 일을 습득하려면 1년 정도가 걸린다고 들었는데 나는 감사하게도 수업을 나간 지 한 달쯤 되어 익히게 되었다. 매달 팀장님이 모든 선생님들로부터 그 달에 학습을 그만두는 아이들 목록을 수집했는데, 나는 학습을 그만두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고 팀장님은 그것을 이상하게 보았다. 그리고 처음 아이들을 만날 때는 팀장님이나 선배 선생님의 동행으로 미리 아이들 집을 찾아가 보는 과정을 거쳤는데, 나는 수업 첫날부터 지도 앱에 아이들 집 주소를 입력해 놓아서 그것을 보고 찾아갔다. 수업은 교육과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로 다녀보니 오히려 빠르게 습득이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보통의 일반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자 지점의 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지점에 가게 되면 사람들의 시선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고 팀장님은 나의 일을 방해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썼다. 나는 지점에 가기를 꺼려 했고 사람들은 내게 견제를 보내며 일을 방해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지점의 출입문 번호를 바꿔버리고 나에게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일을 계기로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3월부터 10월까지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경험이었다. 사회적으로 인식이 낮은 바닥 일이었지만 그 직업에 대한 인식에 끌려다니지 않았고 나다움으로 일하며 당당하게 나의 직업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쉬었다가 약국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보았는데 잘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9년 말에 우연히 법률사무소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았고 그곳에서 이사님 명함 정리를 했다. 그곳에서는 인연이 두 달밖에 이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법률사무소 아르바이트를 짧게 마친 후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쉬었거나 구움과자 판매를 위한 브랜딩 작업을 했거나이다. 2020년 말부터는 구움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오빠와 카페 운영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것이 없던 일로 되면서 나 혼자 구움과자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우선 미니 오븐을 구매했고 베이킹의 기본 단계인 스콘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그 당시 유행하고 있던 디저트인 마들렌과 휘낭시에를 주로 만들었다. 마들렌은 굉장히 섬세함이 요구되는 작업이었고 쉽게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둥글게 올라온 배꼽을 만들기 위해 열 번 정도의 테스트가 필요했다. 영상 콘텐츠를 보며 레시피 초안을 짜고 몇 차례 실험을 거치며 레시피를 완성했다. 베이킹 작업은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학원에 가서 배우지는 않았고 혼자서 영상을 보며 습득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연구와 실험을 거치며 나만의 레시피를 완성해 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손이 많이 가고 힘들었지만 섬세함이 요구되고 창의적인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적성에 맞았다. 그렇지만 판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온라인 스마트 스토어에서는 한 건도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엄마를 통해서 주변의 지인들께 판매를 하게 되었다. 판매량이 많지 않았고 또 나는 쉬게 되었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할 생각에 2023년 초에 온라인에서 반려견 사료 판매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한 주소지에 두 개 이상의 사업자를 등록할 수 없다기에 구움과자 판매는 정리를 했다. 반려견 사료 판매를 위한 사업자 등록을 하고 한두 달 정도 온라인 스마트 스토어에 상품 등록을 했다. 원래는 꾸준히 지속적으로 상품 등록을 해주어야 하는데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쯤 되자 마음이 접혀지면서 상품 등록을 그만하게 되었다. 해서 일의 초반에 등록한 상품들로 판매를 해 갔다. 어느 책에서 보기로는 첫 주문은 보통 한 달쯤 되었을 때 온다고 했는데 정말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첫 주문이 들어왔다. 주문이 조금씩 들어오기는 했지만 많지는 않았고 순수익이 적었다. 이 일은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주문은 지금도 어쩌다가 한 번씩 들어오고 있고 거의 없는 일이나 다름이 없는 정도이다. 해서 나는 또 쉬게 되었다.
반려견 사료 판매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거의 없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고 또 나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해서 2024년 초에 오빠의 권유로 수익형 블로그 운영을 해보기로 했다. 주제는 과거에 경험이 있었던 홈베이킹으로 하기로 했다. 홈베이킹 관련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기존에 발행된 포스팅 수와 사용자의 검색 수가 높았기 때문에 주제를 홈베이킹으로 정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함정이었다. 기존에 발행된 포스팅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경쟁이 심한 상황에 뛰어든 셈이 되었다. 블로그는 에세이 보다 사람들이 검색하는 정보성의 글을 올려야 했다. 그리고 블로그가 좋아하는 글쓰기 방법들이 있었고 하면 안 되는 금기 사항들도 있었다. 또 글을 씀에 있어서 키워드가 중요했다. 나의 블로그 크기에 맞는 키워드를 분석해서 포스팅을 해야 글이 상단에 위치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수익형 블로그 운영은 처음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알아가 보기로 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반복적인 수정이나 한 번에 대량의 삭제 행위 그리고 카테고리의 이동으로 이미 나는 저품질이라는 나락에 떨어지게 되었다. 아무리 공을 들여 포스팅을 해봐도 포스팅의 지수나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고 박스권에 갇혀서 하루에 방문자가 5명을 넘는 적이 없었다. 결국에는 좌절감만 맛보게 되는 경험이 쌓이게 되면서 수익형 블로그 운영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또 쉬게 되었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글을 쓰고 싶었는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던지, 조회수나 방문자 수를 상관하지 않고 내 글을 써보자며 블로그에 일기와 에세이 중간쯤 되는 글을 조금 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2024년 6월 중순이다. 그런데 에세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보다는 “브런치 스토리”와 어울린다는 오빠의 말에 따라서 브런치 스토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게 되었다. 7월 즈음부터 브런치 스토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고, 브런치 스토리는 작가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아야 공개 글을 발행할 수 있었으므로 작가 신청을 위한 준비를 했다. 작가 소개 글과 활동 계획에 대한 글 그리고 책 한 권의 목차를 준비했고 샘플 글 두 편을 제출했다. 그것이 8월의 끝이었고, 9월 2일부터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아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는 지금 브런치 북 연재를 진행 중이다. 실질적인 수입은 없지만 직업처럼 생각하며 임하고 있다.
나의 일이었던 디자인을 떠나고 다른 분야에서 일을 찾기 시작했던 2019년부터 2024년 지금까지를 돌아보니, 하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결과가 좋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쉬게 되었다. 그렇지만 또다시 일어나서 무언가를 찾아 했고, 그 일이 또 잘되지 않아 쉬게 되었고, 쉬다가 또 다른 일을 찾아 했고 그러기의 반복이었다. 쉼과 새로운 일의 시작의 반복으로 할 이야기는 늘어난 것 같다. 각각 다른 일들을 경험했지만 시작함에 있어서 도전하는 나의 모습이 있었고, 실패하지만 언젠간 또다시 일어나 나를 찾았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니 애썼고 이제는 정착을 이루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