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베터리 주식회사 (공포 점수 : ★★☆☆☆)

BETTERY, Inc.

by 미히

배고프지 않아도 먹는 사람이 있다. 배가 차도 먹기도 한다. 누군가는 정신적 허기를 먹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배고파도 먹지 않는 사람이 있다. 먹는 모든 음식의 칼로리를 측정하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기술은 그런 가운데 나왔다. 몸에 착용하는 작은 액세서리.


그 것은 팔찌일 수도, 반지일 수도, 렌즈일 수도 있다. 모두 배터리 측정 기계였다. 그 안에 작은 칩은 생체의 정보를 취합하여 스마트폰으로 그 정보를 전송한다. 스마트폰으로 ‘베터리’ 앱을 켜면, 수집된 다양한 내 몸에 대한 정보가 표시된다. 몸무게, 키, 호르몬, 영양분 균형 상태.


엡에 내장된 인공지능은 생활상을 추천해준다. 화면을 옆으로 스와이프하면, 여러 생활상에 대한 추천 정보가 표시된다.


“운동을 30분 늘리세요.”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세요.”

“최소 7시간 수면이 필요합니다.”


각 화면의 상단에는 배터리가 표시되어 있다. 스마트폰의 남은 전력량을 표시하는 배터리와는 다른 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생체 활력 징후를 배터리 형태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눈을 뜬다.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베터리’ 앱을 켠다. 화면이 깜빡이며 내 생체 정보가 떠오른다. 영양소 배터리는 55%. 나쁘지 않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우유 한 잔을 따른다. 차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가며 배터리가 살짝 오른다. 60%. 이 정도면 하루를 버틸 수 있다.


화면을 넘겨 보호자 기능으로 연결된 할아버지의 배터리를 확인한다.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3%.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할아버지가 들어온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온 것이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얇은 옷은 축축이 젖어 있다.


“할아버지, 마실 가기 전에 아침 먹고 가시라고 했잖아요.”

내 목소리에 잔소리가 섞인다.

“예전처럼 배터리 성능이 좋지 않으시다니까요. 저랑 똑같이 저녁 먹어도, 저는 아침에 50%가 차 있는데, 할아버지는 10%밖에 안 남아요.”


할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응, 뭐라고? 잘 안 들린다.”

그 목소리는 희미하다. 나는 앱 화면을 넘겨 할아버지의 청력 배터리를 확인한다. 12%. 어제보다 5% 줄었다. 목소리를 높인다.

“영양소 배터리가 3%예요! 제가 아침 먹고 다니라고 했잖아요. 이걸 좀 확인하셔야 한다고요.”

휴대폰을 할아버지 앞에서 흔든다.


할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한다.

“응? 아침 먹었어.”

나는 다시 영양소 배터리를 확인한다. 2%. 1% 더 줄었다. 당황스럽다.

“일단 이거부터 드세요.”

우유를 내민다. 할아버지가 꿀꺽꿀꺽 삼킨다. 나는 얼른 화면을 확인한다. 2%. 그대로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할아버지, 병원 가야 해요. 배터리가 방전되고 있어요.”

목소리가 떨린다. 할아버지는 나를 멍하니 본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다.


할아버지를 차에 태운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뚫고 병원으로 향한다. 손끝이 차갑고, 머릿속은 혼란스럽다. 할아버지는 조수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응급실에 도착한다. 간호사들이 할아버지를 데려가고, 나는 의사를 만난다. 휴대폰을 꺼내 앱을 보여준다.

“할아버지 영양소 배터리가 2%예요.”

화면을 다시 확인한다.

“아니, 지금은 -1%네요?”

목소리가 갈라진다.


의사가 책상 위 컴퓨터를 보며 말한다.

“신속 스캔 결과가 나왔어요. 오늘 아침 할아버님 배터리가 8%까지 떨어졌네요. 지금 100% 링거를 맞고 계시니 곧 차실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나는 숨을 내쉰다. 하지만 불안이 가라앉지 않는다. SNS를 켠다. 사람들이 떠들썩하다.

‘오늘 아침 강아지 배터리가 마이너스로 나왔는데, 뭐야 이게?’

‘앱 오류 때문에 아침부터 난리였음.’

‘업데이트 후 버그 생겼대.’


그 순간, 공지 알림이 뜬다.


더 나은 삶을 약속하는 베터리 주식회사 공지


2026년 오전 5시부터 치명적인 시스템 오류가 발견되어 긴급 조치 중입니다.


해당 오류는 영양소 배터리 잔량이 10% 낮게 측정되는 문제로, 구형 모델에서 발생했습니다.


복구가 완료되면 다시 공지드리겠습니다.


사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는다.

“휴, 오류였네요.”

의사가 미소를 짓는다.

“아침부터 심장이 철렁하셨겠어요.”


그는 책상 위 브로셔를 내민다.

“베터리 사에서 새로 나온 모델이에요. 이번 기회에 업그레이드 어떠신가요? 저희 병원과 제휴로 50% 할인됩니다. 검사 결과 청력과 시력도 많이 떨어지셨던데, Ear 2.0과 Eye 2.0 모델로 바꾸시는 걸 추천드려요.”


나는 한숨을 내쉰다.

“할부 되나요?”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6화수련회 (공포 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