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
강당에는 50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나무 바닥은 오래된 세월의 흔적으로 삐걱거렸고, 창밖으로 스며드는 잿빛 하늘은 우중충한 기운을 더했다. 나는 마이크를 손에 쥐고 학생들 앞에 섰다. 아이들의 눈빛은 기대와 실망이 뒤섞인 채 나를 향해 있었다.
“오늘은 우천 때문에 간부 수련회가 취소되었어요.”
내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그래서 학교 강당에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간부 교육을 받고, 오늘 저녁에 귀가하게 될 겁니다.”
“1박 2일이 더 좋은데…”
한 학생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강당의 고요 속에서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간부 교육은 학생주임 선생님이 진행해 주실 겁니다.”
나는 옆에 서 있는 체육 선생님을 소개했다. 키가 크고 단단한 체격의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익숙한 존재였다.
“교육이 끝난 뒤에는 레크레이션도 준비되어 있으니 잘 듣고 참여해 주세요.”
마이크를 체육 선생님에게 넘기며 나는 강당을 빠져나왔다. 발걸음은 빠르게 복도로 향했다. 레크레이션을 준비할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는 ‘구슬 찾기’였다. 나는 근처 문방구에서 급히 산 빨간 구슬 30개를 들고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1층 복도 창틀, 2층 화분 밑, 3층 계단 난간 틈, 4층 화장실 타일 뒤, 그리고 5층 먼지 쌓인 모서리까지. 교실은 모두 잠겨 있었다. 방과 후가 되며 자물쇠가 채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숨길 장소를 찾으며 계단을 오르내렸다.
5층 복도에서 한 학생과 마주쳤다. 그는 창가에 멍하니 서 있었다.
“너 여기서 뭐해?”
내 질문에 그는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감정 없는 검은 눈동자가 꿈뻑였다.
“강당에서 교육 중인데 얼른 내려가.”
그는 말없이 나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요즘 애들이란 참…’
구슬을 모두 숨기고 나서야 나는 숨을 돌리며 강당으로 돌아갔다.
간부 교육이 끝난 뒤, 체육 선생님이 마이크를 나에게 건넸다. 학생들의 시선이 다시 내게 쏠렸다.
“자, 이제 레크레이션을 시작할게요. 이름은 ‘구슬 찾기’입니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빨간 구슬을 학교 곳곳에 숨겨놓았어요. 그걸 가장 많이 찾는 학생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걸 줄 겁니다.”
한 학생이 손을 들며 물었다.
“몇 시까지 찾으면 되나요?”
나는 손목시계를 흘끗 보며 대답했다.
“1시간 줄게요. 지금 6시니까, 7시까지예요.”
학생들은 우르르 강당을 나섰다. 발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치며 점점 멀어졌다. 텅 빈 강당에 남은 나는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지는 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저녁 8시에 귀가인데, 날씨가 이래서야…’
걱정이 밀려왔다.
체육 선생님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쌤은 얼마 전에 들어오셨다고 했죠? 전에 계시던 선생님이 육아휴직을 가셔서.”
“네, 맞아요. 여기가 첫 부임지예요. 쌤은요?”
“저도 쌤 오시기 몇 달 전에 왔어요. 그래서인지 골치 아픈 일을 떠넘겨받은 기분이네요.”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게요. 퇴근도 못하고…”
나도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저녁 6시 30분, 갑작스레 강당의 불이 꺼졌다. 순식간에 모든 조명이 사라지며 어둠이 우리를 삼켰다.
“뭐야, 이게…”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한 학생이 강당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쌤, 학교 모든 불이 꺼졌어요!”
그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나는 서둘러 방송실로 달려가 마이크를 켰다.
“경비 아저씨가 퇴근하시면서 불을 모두 끄신 것 같아요. 곧 다시 켜놓겠습니다. 그때까지 구슬 찾기 계속 진행해 주세요.”
목소리가 떨렸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체육 선생님에게 돌아와 물었다.
“오늘 방과 후에 수련회가 있다는 걸 전달받지 못한 걸까요?”
“그런가 봅니다. 제가 창고에서 휴대용 전등을 가져올게요.”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곧 그는 몇 개의 전등을 들고 돌아왔다. 우리는 급히 강당에 설치했다. 희미한 불빛이 공간을 채웠지만, 그 순간 복도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꺅!”
“뭐야, 놔!”
체육 선생님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구슬을 찾는 게 아니라 뺏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문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학년주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만 갈 뿐, 받지 않았다. 불안이 커져갔다. 이번엔 동료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연결되었다.
“학교에 있으세요? 갑자기 불이 다 꺼졌어요.”
“정말? 내가 경비 아저씨 번호를 아니까 전화를 해볼게. 기다리고 있어.”
그 목소리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전등 배터리가 다 되어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나는 암흑 속에 갇혔다.
7시가 되기 직전, 강당 문이 열렸다. 나는 조금 무서워지려던 중에, 안심을 했다. 그리고 경품을 손에 들어 등 뒤에 숨기고 학생을 불렀다.
“게임 재밌었니?”
어둠 속에서 한 학생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창밖에서 천둥이 쾅 울렸다. 번개가 번쩍이며 그의 얼굴을 비췄다. 피로 뒤덮인 얼굴이었다.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선생님, 다 모았어요.”
그가 나에게 구슬을 내밀었다.
“주신다고 했죠, 가장 귀한 거.”
나는 멈칫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며 그의 형체가 뚜렷해졌다. 검은 눈동자는 흥분으로 이글거렸고,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등 뒤에 있는 그건가요?”
그의 시선이 내 손을 향했다.
나는 벌벌 떨며 최애의 앨범을 그 애에게 내밀었다.
그 애는 잠시 물끄러미 그 앨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가 다시 나를 쳐다봤을 때, 그의 눈에는 다시 감정이 없어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