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히스토리
서울의 중심부, 고급 호텔의 29층. 유리 벽 밖으로는 밤의 도심이 번쩍였고, 그 빛은 마치 새벽을 맞을 준비를 마친 별들처럼 아스라이 떠 있었다. 나는 오늘도 그 빛 아래,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내 디저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이 중요한 날이었다. 5코스로 구성된 나만의 디저트 메뉴를 선보이는 특별한 날. 각각의 디저트는 손님들의 삶 속 중요한 순간을 떠올리게끔 설계된 작은 예술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마지막 디저트 때문이었다. ‘루비의 이별.’ 내 과거, 그리고 상실감이 담긴 그 작품은 내게 너무나 개인적인 것이었다. 손님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나의 요리가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디저트가 완벽하게 준비될 수 있도록 몇 번이고 손길을 고쳐가며 작업했다.
첫 번째 디저트가 테이블로 나갔다.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함을 상징하는 이 코스는 솜사탕처럼 가벼운 텍스처로, 입에 넣으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캔디 구름’은 부드럽고 공기처럼 가벼운 머랭 위에 진주처럼 반짝이는 작은 구슬들이 뿌려진 형태였다. 마치 하늘을 날며, 손에 잡을 수 없었던 꿈을 떠올리게 하는 맛. 나는 손님들이 이 디저트를 한 입 베어 물고, 잃어버린 동심의 향수를 떠올리기를 바랐다.
서빙된 캔디 구름을 손님들이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한 중년 남성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정말 어릴 적에 먹었던 사탕 맛이 나네요."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연인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마음속으로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첫 번째 디저트는 성공적이었다.
두 번째 디저트는 청춘의 설렘을 표현한 ‘라즈베리 소르베’였다. 진한 라즈베리의 신맛이 입 안 가득 터지며 혀 끝을 찌르고, 상쾌한 민트 잎이 그 뒤를 따랐다. 섬세하게 깎은 얼음 조각이 마치 사각거리는 첫사랑의 설레는 감정을 전달하려는 듯, 손님들의 미각을 자극했다. 젊음의 순간이 입 안에서 펼쳐졌다. 테이블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첫사랑을 떠올리며 얘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혼자 온 듯한 여성 손님은 조용히 디저트를 음미했다. 그녀는 라즈베리의 산미에서는 얼굴을 잠시 찡그렸고, 이내 뒤따르는 민트의 청량감에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숙한 사랑을 상징하는 다크 초콜릿 무스는 그 자체로 깊고 진지한 분위기를 풍겼다. 다크 초콜릿의 농밀한 맛이 입 안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며, 한때 뜨겁게 타올랐던 감정이 점차 온화하고 성숙해지는 과정을 떠올리게 했다. 금빛의 캐러멜 소스가 흐르는 위에 얇게 조각된 정교한 초콜릿이 얹혀 있었고,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한 크런치가 섬세하게 깨졌다. 테이블마다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들은 이 디저트를 통해 깊은 사랑의 달콤한 어둠을 느끼고 있었다.
네 번째 코스는 평온과 안식을 상징하는 ‘허니 라벤더 타르트’였다. 얇게 구운 바삭한 타르트 안에 가득 찬 라벤더 크림은 달콤하면서도 미묘한 꽃향기를 퍼뜨렸다. 꿀의 부드러운 단맛과 라벤더의 은은한 향이 어우러져, 긴 여정을 마친 이들에게 주어지는 위안의 한 입 같았다. 이 디저트는 마치 황혼 속의 평화로운 산책을 연상케 했다.
한 손님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조용히 미소 짓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 내가 가장 고민하던 디저트. ‘루비의 이별.’ 이 디저트는 차갑게 식어버린 이별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로비 초콜릿은 달처럼 차갑고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었고, 그 위에는 얇은 금박이 올려져, 은은한 달빛처럼 빛나고 있었다. 안에는 크랜베리 젤리가 녹아들어 상실감 속에서 잔잔한 감정의 여운을 남겼다.
나는 마지막 코스를 내보내기 전에 잠시 손을 멈췄다. 내 디저트가 너무 슬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 이별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이었다. 식어버린 달과 별이 사라지듯, 떠나야 할 감정이 사라지고 나면 또 다른 시작이 있을 테니까. 손님들이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디저트가 테이블에 놓이자, 손님들은 한 입씩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반응을 기다렸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중년 여성이 그 맛을 보고 나서 가만히 손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오래된 이별의 감정이 한껏 식어버린 후, 조용히 남아 있는 고요한 평온함이 느껴지네요.”
곧이어 다른 테이블의 남성이 고개를 들고 미소 지었다.
나는 가슴 속에 맺혀있던 불안이 천천히 사라짐을 느꼈다. 결국 진정성을 담은 요리가 사람들에게 닿은 것이다.
이제 손님들은 퇴장할 준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나가던 여성 손님이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다가왔다.
“참 맛있는 맛이었어요. 위로가 되는 맛이네요.”
그녀는 내게 펜을 달라고 부탁하더니, 명함에 무언가를 적어 나에게 내밀었다.
"제 개인 휴대폰 번호에요."
명함에는 "이루나"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창밖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도시의 빛들이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달처럼 식어버린 별들이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