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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 아웃

by 무아

'번아웃'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떤 활동이 끝난 후, 심리적이거나 육체적으로 지쳐버린 상태를 뜻하죠.


최근에는 '토스트 아웃'이라는 표현도 쓰입니다.

오랜 시간 구워 까맣게 타기 직전의 토스트처럼, 아직 완전히 번아웃된 것은 아니지만 그 경계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대부분이 그와 비슷한 상태에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해야 할 일은 계속 쌓이고, 몸과 마음은 작은 일에도 쉽게 타버릴 것만 같은 순간들 말이에요.


늘 열정적이고 성실한 사람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런 쪽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무기력함과 귀찮음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차지할 때가 많으니까요.

가끔은 농담처럼 “숨 쉬는 것도 귀찮다”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들숨과 날숨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지요.


스무 살, 스물한 살 무렵엔 하루하루가 참 바쁘게 흘러갔습니다.

학교에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정신없이 지냈지요.

그러다 문득,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도, 관계도, 심지어는 나 자신까지도요.


학교와 직장을 제외한 시간은 대부분 침대에서 보냈습니다.

몇 달에 한 번, 친한 친구를 만나고, 그 외에는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조차도 오래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집안일은 미루고, 식사는 거르고, 그저 침대에 누운 채 하루를 흘려보내는 날이 반복됐습니다.

아마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내가 번아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럴 때면 우울한 기분이 불쑥 찾아오곤 했습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아무 맥락 없이 극단적인 상상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대로 평생 쳇바퀴처럼 살아가는 걸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저는 완전히 번아웃된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토스트 아웃'—그 정도의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무기력한 날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통학으로만 하루 네 시간을 보내며 학교에 다녔고, 일도 병행하면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으니까요.

남는 시간은 느슨했지만 나름대로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기로 했습니다.

더 깊은 우울에 빠지기 전에 지금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고요.

“나는 나를 책임져야 해.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고양이도 있는 걸.”


‘토스트 아웃’.

이 표현, 어쩐지 조금 귀엽게 들리지 않으시나요?

살짝 탄 토스트가 오히려 더 고소하고 바삭하듯 삶도 가끔은 지쳐 있는 순간들 속에서 더 깊이를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저는 적당히 구워진 바삭한 토스트 같은 상태인 것입니다.


사람마다 삶의 속도는 다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도 저만의 속도와 호흡으로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쉬는 날이면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충분히 쉰 뒤에는 서서히 몸을 움직입니다.

방을 정리하고, 간단하게 요리를 하고, 가끔은 귀찮음을 이겨내고 사람도 만나보려 합니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작은 기쁨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랜만에 여유롭게 바라보는 저녁노을이나 걱정 없이 잠든 고양이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순간들처럼요.


이렇게 저는 토스트가 타버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혹시 언젠가 걷잡을 수 없는 번아웃이 찾아오더라도 저는 다시 극복해 낼 수 있을 거라고요.


저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바삭하게 구워지고 있는 모든 토스트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타버린 토스트도, 그 탄 부분을 살짝 긁어내면 여전히 맛있게 먹을 수 있듯 우리도 잠시 멈춰 쉬어가도 괜찮습니다.


다른 이들이 앞서간다고 해서 조급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속도와 길이 있으니까요.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라 하지요.

조금 늦어도, 느려도, 충분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 모든 바삭한 토스트들이 오늘 하루만큼은 부디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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