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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랖 Oct 22. 2024

Round 8

노숙자 패션

퇴근한 남편을 끄집고 근처 백화점으로 향했다.

비록 나는 백화점 케이는 아웃렛만 댕겨도

그것도 아웃렛에서도 곱게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대신 얌전히 누워 있는 애들(기본 80%이상 세일)로만 사는 나다.

시아버지 입으실 옷인데 가장 좋고 비싼옷을 사드려야 하는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나름 패셔니스타

께서 입으실 껀데..


당연히 백화점 정문으로 들어가야지.


고르고 고른 끝에 여우표시(울0)가 그려진 점퍼로 픽했다. 비쌌다. 바람만 막아주는 요 점퍼 하나가 이 가격이라니...

후덜거리는 손으로 카드건네며 점원 언니에게

 몇 번이나 되물었다.

 분명 어르신들이 좋아할 옷이 맞냐고..

이거 사가면 지청구는 안먹을것 같냐며...


점원 언니는 옷 매장 경력 20년에 빛나는 자기의 센스를 믿으라며 지금까지 이 옷 선물해서

안 좋단 소리 들은 적이 없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이 언니의 패션센스가 울 아버님과 딱! 들어맞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다음 날,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여우 점퍼를 챙겨 시댁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아버님이 대뜸


“느그들이 도둑이냣!!!”


하고 냅다 고함을 치시는 거다.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님?

 무려 백화점까지 가서 고르고 골라 엄청 비싼 옷 사갖고 저녁밥도 스킵하믄서 이리 달려왔는데 도둑이라뇨??


갑자기 남편 손에 들린 쇼핑백을 훽~하고 낚아채시더니 바닥에 패대기를 ...



“내일 아침 날 밝거들랑 다시 들고 와라.“

하시고 그대로 방에 들어가 버리신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남편과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내팽겨쳐진 비싼 여우점퍼모시고 다시 집으로 왔다.


뭐지 이 상황은?

밥맛도 뚝 떨어져서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남편과 머리를 맞대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안나오길래 남편이 큰누나분께 전화를 해봤다


“야! 동네사람들한테 아들며느리가 옷 사갖고 왔네 하고 자랑해야되는데 남들 다 자는 밤에 사갖고 들어가면 아버지가 좋아라 하시것냐?


아들딸 내려올때 차도 마당에 못 세워놓게 하시잖냐. 입구에 떡~하니 세워놔야 동네분들 다 보신다고..."


그 말을 듣고 진짜 헉! 했다.

저녁도 굶고 달려온 아들 며느리의 정성은 날라가고 혈육도 아닌 아무관계도 없는 동네 사람들 이목이 더 중요하단 말씀이신가??


누군가 그랬다.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흠...근데 이거 하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나는 아버님 연세가 되어도 절대절대 자식들이 사온 선물을 던져버리는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맹세!

아무리 이해를 해볼라고 해도 화가 치밀었다.


다음날 새벽.

남편은 찌그러진 쇼핑백을 들고 다시 시댁으로 향했

그 여우옷을 입고 단풍놀이를 잘 댕겨왔는지 어쨌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과 놀러 갔다가 오일장을 방문하게 됐다

남성 티셔츠싸게 팔길래 남편이 아버님 집에서 입으시라고  몇  사다 드려야 겠단다. 

불안한데..이거...


주말에 평소 드실 반찬 바리바리해서 시댁  준비를 했다. 장에서 산 옷들은 검정 봉다리 대신 번듯한 쇼핑백에 얌전히 개켜 넣었다.

 거의 한달에 번 꼴로 가는 듯 하다


남편이 해맑은 얼굴로 옷을 드리자 갑자기 아버님 안색이 차갑게 변하기 시작했다.

눈칫밥 인생인 나는 바뀐 공기의 흐름을 감지했지만 눈치제로 남편은 시장에서 샀는데 질이 좋네 색깔이 이쁘네 하며 연신 침 튀겨가며 자랑질이다

멈춰라..제발...닫아라 그 입...


집청소까지 다 해드린 후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갈때까지 별말씀이 없으셔서 내가 너무 예민해졌나

싶었다.

그래도 하..이 찜찜한 기분은 뭐지...

.

.

하는 찰나에 아버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네. 아버.."


“니가 나를 도대체 뭘로 봤길래 이런 거지같은 옷을 사갖고 오는 거냐? 이런 지금 나보고 입으라는 거냐? 노숙자도 안입을 옷을 나한테 들이밀어?"


아주 노발대발 난리가 났다.

아니 아버님 그건 아버님 아들이 산 옷입니다..라고

정확하게 말했어야 했는데....난 또 욱 밀어 삼켰다.

죄송하단 말만 반복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솔직히 아버님 지금 입고계신 옷이랑 별반 다를것도 없어 보이던데..


“아버님 죄송하..“


뚜욱~ 전화를 끊어버리셨다.


나는 상대방이 말하고 있을 때 전화를 끊는건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이라고 분명 배웠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말하고 있을때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람 한 명도 없었다. 내 딴에는 충격이었다.


“원래 우리 아버지 성질나면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셔. 다시 걸지마 분명 안 받으실거니까.“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는 남편도 나는 신기하고 괘씸했다.

왜 그게 당연하단 말인가. 이건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인데...분명 잘못된 행동인데...

예절교육 때 나는 배웠다. 웃어른이 전화를 먼저 끊기전에는 먼저 지 않는게 예의바른 행동이라고.


웃어른에 대한 예의뿐 아니라 아랫사람을 대할때도  예의가 있을거다. 웃어른 공경만 배웠지 아랫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란 건 배우질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말하고 있는데 뚝 끊는 거는 절대 아니다내 왼쪽 손모가지 건다 진짜.




더 괘씸한 거는 지가 고르고 지가 사서 나를 욕 먹게 만든 남편은...끝까지 함구했다.

노숙자 패션을 픽한 사람이 본인이라는 그 팩트 지금까지도 입꾹 닫고 모르쇠다.

그때 내가 알았어야 했는데..

 이 인간은 평생 고쳐 쓸수 없다는 걸.

내가 잘한 것도 지가 잘한 거요 내가 못한 거는 내가 못한거다. 나쁜 인간은 아닌데 가만히 보면 그닥 착한것 같지도 않은 듯한..오묘한 경계선에 있다.


아무리 내가 잘해드려도 공을 지가 홀라당 가져가 버린다. 그래 재주는 내가 부릴테니까 니가 효자해라!

그러다 이 곰발바닥에 한번 크게 쥐어터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노숙자 옷 사건은 꽤나 오래갔다.

형님들한테까지 다 전화를 하셔서 이런 거지같은 옷, 노숙자 같은 옷으로 시작해서 내 흉을 얼마나 보셨을란지

귀가 아주 근질근질하다.


아버님! 도대체 어떤 노숙자가 그런 좋은 옷을 입는 단 말입니까? 예?

어쩜 그렇게 사람 마음에 대못 박는 말씀만 골라서 하십니까?



목이 점점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사혈침으로 코를 찔러 피를 내보라고 말씀해주신 그 한약사님을 또 찾아갔다.

스트레스를 해져 한약을 지었다. 가슴이 뜨거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헛구역질이 나와서 밥을 삼킬수가 없었다.

누워서 지내는 날들이 늘어났다.

중재자가 부재한 나의 구부갈등은 점점 깊어만 갔고 아무 방패막이없이 그 쏟아지는 화살을 맨몸으로 다 받아내며 버텼다.


한약을 목구멍에 들이 어가면서 2주에 한번씩은 꼭 시댁에 갔다. 그때 남편이 제대로 내편을 들어줬더라면..날아오는 화살 몇 개는 튕겨 가도록 막아줬라면..

 똥멍청이는 여전히...잘한 것은 다 본인이 잘해서 그런 거요 못한 것은 나 몰라라...

죽어야 고치지..죽일까  저 인간을??

차마 죽일수는 없으니 내 자신만 죽어가고 있었다.


이 와중에 그날이 다가오고 있...

설날!!! 또 명절!!!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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