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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랖 Nov 12. 2024

Round 12

내 아들의 장례식

초음파를 보던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이

외마디 비명을 속으로 삼키더니 내손을 꼬옥 잡으셨다.


“안타깝지만 ..아이 심장이 멈췄어요. 지금 꺼내지 않으면 엄마도 위험합니다.“

소견서를 써주셨다. 큰병원으로 당장 가라신다.


가혹했다.

죽은 아이가 뱃속에 있거나 말거나 그 병원 담당자들은 간호사며, 인턴이며 담당 선생님이며..수십 장의 설문지에

내가 왜 이 병원에 왔는지를 물었고 급기야 내 아이가 뱃속에서 죽었다고요!! 포효 한 후에야 그 지옥같은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출산과정과 똑같았다.

두 번의 분만유도제를 넣고 6시간 진통후 나는..

심장이 멈춰버린 튼튼이를 출산했다.

태반이 자궁벽에 붙어있으면 개복수술까지 해야된다며 인정사정없이 내 위에 올라타 배를 눌러대는 의사선생님께 의지해

병원이 떠나가도록 소리지르고 목놓아 울었다.



회복실로 옮겨진 후는 더 끔찍했다.

아이 심박수를 체크하고 있는 산모들 사이에 나를 눕혀놓았고 그 소리는 듣는 내 머리는 터져버릴것만 같았다.

내 아이의 심장은 멈춰서 억지로 꺼냈는데 남의 아이의 심장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듣고 있을 엄마가 세상천지

어딨겠는가..

당장 병실을 바꿔달라고 난리를 쳤다.


겨우 안정을 찾고 누워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핸드폰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큰누나야. 누나가 자기한테 화 안낸다고 전화받으래.”


뭐? 화를 안 내? 이게 지금 지 새끼를 잃은 아비된 자가 맞는가 싶었다.


“화를 내?  왜!!  내가 뭘 잘못해서!! ”


진통 후 잠긴 목으로 낼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올려 퍼붓었다.이 여자가 미쳤나 했을 것이다. 그래~ 나 미쳤다.

지 엄마 돌아가실때는 잘도 울더니 생떼같은 지 새끼 보낸 뒤엔 아무렇지도 않아? 넌 아빠가 될 자격도 없다.

그 순간 남편 핸드폰에 문자가 띠띡~ 울렸고

큰형님이 약 먹고 몸 추스르라며 10만원을 입금했단다.

고작 10만원 보내며 생색내려고 아이 잃은 나에게 추모할 시간도 주지않고 전화를 해대? 그 10만원을 큰형님 얼굴에 갖다 던져버리고 싶었다.


잠시 후 병원관계자가 올라왔다.

나는 몰랐다.

성별이 확인된 후에 사산된 태아는 장례를 치뤄야 한다는 사실을...

채 회복이 되지 않은 어미는 지 살것다고 링거맞고 누워있는 동안 그렇게 7개월 내내 품은 내 아들의 장례식이 진행됐다.


튼튼아! 혼자 가는 그 길이 무섭진 않았니? 엄마가 같이 못가줘서 너무 미안해. 잘 도착했다고 엄마 꿈에라도  한 번 나와줄래?
튼튼이 무서울까봐 엄마도 따라가고 싶은데 모진 목숨 끊을수는 없고 먼저 가 있어~엄마가 곧 따라갈게. 나중에  튼튼이 얼굴을 몰라서 혹시나 머뭇거리거들랑 엄마!하고 한 번 불러줘~7개월 동안 엄마 아들해줘서 고마웠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사랑한다 내아들...



장례지도사가 장례를 잘 마무리했다며 서류를 들이밀었다. 사인 해달라며.

남편이 서명을 하고 있을 때


“난 이제 니네 집 안가.”


나지막이...그러나 결연하게 말했다. 순간 멈칫하더니 남편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늘 공경해야 한다고 배웠다. 남편의 부모에게도 그렇게 해야한다고..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길러주신 분이니 부모와 다를 바 없다고.

세상은 며느리들에게 늘 그렇게 요구한다. 시댁식구들이 한몸 한뜻이 되어..자기네들도 못할 그 엄청난 일들을 남의 딸들에게 마치 법에라도 정해져 있는것마냥 강요하고 가스라이팅 한다.

그게 진실인듯 믿으며 바보 병신같이 살다가 나는 내 자식을 잃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하.... 개뻥치고 있네!!!당신들은 살인자다!!!


이혼을 생각했다.

앞으로 똑같은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고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니까 너희들은 말대꾸도 하지 말고 무조건 나한테 잘해야 한다'

는 아버님 말씀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나..차마 이혼하자는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나는 시댁에서 종년이고 울 남편은 친정집에서 머슴이었으니까.

내 엄마와 새아빠도 남편을 맘놓고 부려먹고있는 마당에 이혼을 요구할 입장이 아니었다.


끊어내야 했다.

나를 낳아준 부모건 남편 부모건 성인이 된 자식에게 끊임없이 불합리함을 요구하고 자신들의 감정을 책임지라고 떠맡기는 부조리를 이제 그만 멈춰야 했다.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나의 희생을..이제는 멈추고 싶다.


혼인 서약인줄 알고 덥석 맹세를 했더니 노비문서였다니..기가 찼다.

비록 남편은 나를 노비에서 해방시켜 주지 못할망정 나라도 내 남편을 친정집 머슴에서 해방시켜줘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안다.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걸. 그렇다면... 내가 변할 수밖에!!!!



부모도 비빌 자리를 보며 자식들을 대한다. 본인이 더 편하고 이용해먹기 편한 자식에게 더 요구한다.

다른 부모는 모르겠고 내 양가 부모는 그랬다. 여럿 자식들 중에 순종하고 뭐든 척척 해다 바치는 나와 남편이 집중 타깃이었다

쌓였던 울분이 폭발하면 엄청난 용기로 발현된다고 했던가.


한 번도 말대꾸란걸 해보지 않던 내가 엄마에게 우리 남편 그만 부려먹고 엄마 아들 시키라며 눈 까뒤집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엄마는 급기야 집을 나가버렸다.(유산하기 한 달 전 난 엄마집 2층으로 이사를 했다. 내 인생 최악의 실수)

입에 도끼가 달린 내 여동생은 계속 참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언니가 참으라는 어이없는 말을 해댔다.

새아빠랑 다툰 일도 있고 해서 여차저차 나간거지만 결국은 내 말대꾸에 대한 충격이었다며 엄마는 아직까지도 얘기한다. 사춘기도 없던 니가 나이먹더니 이렇게나 변했다며 엄마는 노랫가락처럼 지겹게도 읊조린다.

사춘기가 없었던게 아니라 나보다 저 지랄맞았던 엄마인생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줄까싶어 내 상처는 언제나  뒷전이었고 속으로 꾹꾹 참고 버텨냈던건데.

헛수고였다.

부모 입장에서 나란 존재는 키우기 편하고 맘대로 부리기 좋은 아이였고 나에게 부모란 지옥불구덩이 그 자체였다.

그 지옥불구덩이를 피해 도망나왔더니 시아버지라는 이름의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아버지 사랑은 며느리? 헛..개 풀 뜯어먹는 소리!!!




어릴 적 나는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쓰며 살았다. 사랑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그렇게 살아온 내 인생에 ‘나’는 없었다.

내 자신한테는 그렇게나 막 대하면서 남들에게는 왜 사랑받을려고 죽을만큼 힘들게 발버둥을 치며 살아왔을까...어쩌면..그런 내 자신이 가장 최고의 빌런인지도 모르겠다.

나 조차 나를 사랑해주지 않고 위해주지 않는데 내 부모며 남편의 부모가 어찌 나를 사랑해주겠는가.

무조건 참고 억누르는 것이 큰딸이로서, 며느리로서 마땅히 해야될 일인줄 알고 살았다. 그것이 나를, 그리고 내 아들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짓인 줄도 모르고..





몸이 조금 회복될 무렵 시어머니 추모관을 찾았다


어머님! 튼튼이 만나셨지요? 어머니 손주에요 잘 돌봐주세요. 그리고 어머님..혹시 바쁘지 않으시거들랑 아버님 꿈에 나타나서 아버님좀 때려주세요. 이왕이면 세게요!!“

미친년처럼 울었다 웃었다 혼자 끅끅거리며 어머니 사진을 어루만졌다. 어머님! 전 더이상 잘해드릴 용기가 없어요. 살아갈 힘도 없어요 제 마음 이제 그만 다치고 싶어요.



앞으로도  바보 멍청이처럼 양가 부모에게 질질 끌려다닐 바에야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상태는 심각했다.

내 아들을 죽인 사람들에게 잘하라고 ? 나와 남편을 노비 취급하는 엄마와 새아빠를 공경하라고?

그건 안될 말이었다.

당신들이 기억하는 예전의 '착한' 나는 죽었다. 튼튼이 화장할 때 바보 천치같은 나를 같이 불태웠다.




매일 밤이 눈물이었다.

출산을 했으니 미역국을 먹고 한약을 먹으란다. 엄마라는 것이 저 혼자 살아보것다고 아들을 보내고 미역국을 먹고 한약을 먹고 있었다.

창문을 보면 뛰어내리고 싶었고 벽을 보면 머리를 들이 박고 싶었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그말을 믿는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내 눈에 눈물나게 한 사람들 눈에 피눈물 흘리는 것까지는 보고 가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가슴이 아파 밤마다 울고 있는 내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편 등을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보잘것 없는 존재지만 내가 주인공인 내삶을 타인으로 인해 망치고 끝낼수는 없었다.내 아들을 먼저 보낸 걸로 족했다.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시작했다.

출산 후 책을 보면 눈이 나빠지네 손목이 시큰해지네 하며 친정부모님과 남편은 뜯어말렸다.


그렇게..

이듬 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내 아들이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남의 가슴에 대못 박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는 10년이나 흐른 후에야 남편에게 내뱉었다.


"그때 아버님 생신 때만 안갔어도 튼튼이는 괜찮았을지 몰라. 튼튼이가 죽은 건 다 아버님 때문이야!!"


남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며.. 그땐 차마 하지 못했던 그말..

우리 아버지 때문에 미안해~


때늦은 사과를 받았다.

아버님이 아닌 남편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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