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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랖 Nov 05. 2024

Round 11

울 아버님은 블랙리스트

그렇게 처음으로 본인 뜻이 좌절된(꽃뱀 여인과의 재혼?)아버님은 성격이 더 더더!!!...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자식들에게 진 것 같아 억울하셨는지 울분을 발산할 곳이 없었던 아버님은 본인 화에 못이겨 결국 입원을 하게 되셨고

그 병원에서도 마찬가지!

의사와 간호사분들과의 잦은 다툼으로

나와 남편은 병원 입구서부터  허리를 90도로 꺾고 들어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꾸벅거려야 했다.

간호사실에서는 아예 눈을 마주치지 않고 경과를 설명해 주시는 정도에 이르렀고 임신한 몸으로 거의 매일 아버님의 만행에 대한 사과를 하러다닐라니..

하~~힘들어 죽것다 진짜!

내가 뭔 죄를 지었다고 이리 굽신거리믄서 다니고 있냐 . 뱃속 아이는 또 뭔 죄냐.

아주 태교 한번 자~알 한다!!




아버님이 짠해서 ..

받아 먹은 돈(천 만원)이 마음에 딱! 걸려서

토닥토닥 어르고 달래기 전법으로 우회한 나는...

타고난 천성이 곱고 지나가는 어르신들은 백퍼 이뻐하실 상이라 ㅋㅋㅋ

울 아버님도 나에게 점점 스며들기 시작하셨다.

아버님과 지지고 볶고 했더니 나만의 공식이 생겼는데

그 이름하야 <아버님 달래기 공식!!> 빠밤!


1. 불같이 화를 내실 땐 입꾹 닫고 조용히 욕받이 되기!!

2. 조금 풀리셨을 땐 토닥토닥 어르기 전법!

3. 기분이 완전 좋으실 땐 서운했던 점 쬐끔씩 나눠 말하기!


수학이건 인생이건 역시 공식을 대입하면 어느 정도는 풀린다.  단! 가끔 어려운 응용문제가 나올 때는 공식 따윈 전~혀 들어먹질 않으니 주의요망!

자식들에게조차 받아보지 못했던 따스한 위로에 흠뻑 빠져버리신 울 아버님!

매주 나와 남편의 방문을 기다렸고 일이 생겨 못오는 날에는 아주 끔찍한 역정과 호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로 받는 것도 습관이다! 아~~~주 나쁜 습관!!


하~ 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 꽃뱀?시어미니 데꾸 올걸...이제라도 그 천 만원 에퉤 할까??

 에퉤퉤! 카~~악 퉷!!!

그 꽃뱀 아주머니 소개해주신 아버님 친구분께 넌지시 여쭤봤다.

같이 사는것 대신 가끔 만나 데이트 정도는 안되냐고..

그런 건 안된단다!!

그리고 그 꽃뱀 아주머니는 벌~써 딴곳으로 계약하고 입주하셨단다.

(진짜 이뿌게 생겼나? 엄청 빠르시네)


임신성 두통이 심했다.

속도 메스껍고 먹지도 못하는데 음식해서 아버님께 가져다 나를려니 진짜 딱 ! 죽을 맛이었다.

참다참다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님~ 제가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이번 주에는 못 내려갈 것 같아서요”


“오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아프다고 핑계를 대냐? “

대뜸 이리 말씀하시고는 또 뚝 끊어버리신다.


다시 걸지 않았다. 안 받으실게 뻔했고

배째라~나도 이젠 에라 모르것다!!


그리고 며칠 후..

이번엔 그 여러운 응용문제가 터지고 말았으니!!

딱! 일주일 뒤에 아버님이 또 입원하셨다고 연락이 왔다.

119불러서 본인이 혼자 병원으로 가셨단다. 야밤에 받은 전화라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마나 아프셨으면 119까지 불러서??

이번엔 집 근처도 아니고 아주 멀~리도 가셔서 입원을 하셨드랬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버님 병실로 찾아가는데..역시나 간호사 쌤들 눈초리가 따갑다.

이번에도 막캥이로 행동하셨나보다.

어라? 근데 이번엔 아버님 얼굴이 평온하시다? 2인실였는데 조금더 젊으신 어르신이 옆에 계셨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 어르신이 나와 같은 토닥토닥 위로 전법을 쓰시면서 울 아버님 말을 다 들어주시는거다.

평소 늘~ 화내는 목소리에 소리를 버럭 지르시는 스탈이라 짜증낼 만도 한데 전혀 그런 내색없이 아버님 마음의 가려운곳도 척척 긁어가면서

기분을 맞춰주시니 얼굴이 저리 좋으실 수밖에...

어르신! 감사합니다.

진짜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고 계십니다.


이것 저것 병원일 뒤처리하고 불편한점 체크하고 또 간호사쌤과 의사선생님께 사과드리고..

어디 특별히 아프신건 아닌데

 혈압이 조금 높고 허리가 아프시다고 해서 약간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허리는 고질병이라 뭐 특별할 것도 없고

암튼 그렇게 몇 주 입원을 하셨는데...



이번 입원 이슈의 전말을 듣고 나는 또 기겁을 했다.


마을에 장애아들을 홀로 키우고 계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단다. 곱상하게 생기셨는데 갑자기 아버님이 그 할머니랑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다는 거다

본인 얼굴 어디에 그런 자신감이 있으셨을까?? 냅다 대문을 박차고 그 할머니 집으로 쳐들어가 우리 같이 삽시다!!라고 외치쳤다는 스릴러 같은 이야기를 듣고

나는...온몸에 힘이 쑤욱 빠져버렸다.


장애 아들은 시설에 넣고 같이 한 이불 덮고 살자고 3번씩이나 찾아갔는데 할머니의 반응은 이런 미친 영감탱이를 봤나 였고

마을에 이야기가 퍼지면서 노인정 출입까지 금지 당하셨다는 정말 놀랍고도 기가 막힌 이야기 였다.


할머니들 사이에서 우리 아버님은 블랙리스트 1호!!

하~ 나는 이제 얼굴 들고 마을로 들어가기는 글러먹었구나.

아니 근데! 울 아버님은 도대체 그 할머니한테 왜 그러셨을까? 무슨 자신감으로 ?

나 진짜 아무리 울 아버님 얼굴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요리봐도

도대체가 모르겠다.

키도 짤닥막하셔서는...에효~


심지어 그 할머니는 우리 작은형님 친구의 어머니시란다.

소식을 들은 형님들은 또 날뛰기 시작하셨고 제자리 뛰기만 하신 채 병원에는 찾아오질 않으셨다. 단 한 번도!

뒤치다꺼리며 온갖 잡일은 나와 남편의 몫이었다.


아버님은 임신한 며느리 앞에서 옥상에서 뛰어내릴까하다 말았다며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으셨고

아버님 마구잡이로  버리신 감정의 쓰레기들은

나와 내 뱃속 아기에게 오롯이 전달되었다.


남편이 동네 이장님께 전화드려 사과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드린 후에 마을분들의 원성은 조금 잦아드는듯 했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이 왜이리 무거운지..

집에 도착해 집정리를 해드리는 동안 아버님 친구분들과 이장님등  몇 분 찾아오셨고

아버님은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라네 내가”

하시며 멋쩍은듯 큰소리 쩌렁쩌렁 당찬 포부를 밝히셨고

내 두통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거의 매주 이렇게 아버님 뒷수발, 앞수발을 들고  다닐려니 심신이 정말 많이 피로했다. 결혼후 내 생활을 가만히 들여다 봤다.

이게 결혼을 한 건지 아버님 수발 들러 들어온건지.. 나 원 참... 횟수로 치면 아버님 수발건이 더 많았다.



아프지 말고 튼튼하게만 자라달라고 지어준 내 아이의 태명은  ‘튼튼이이다.

벌써 임신 6개월 막바지에 이르렀고 아버님의 생신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내가 진흙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꿈이었고 너무나 생생한 나머지 일어나 옷이 젖었나 만져볼 정도였다

남편한테 몸이 안좋아 이번 아버님 생신때는 내려가고 싶지 않다고 넌지시 말해봤다.

역시 우리의 효자남편!

자기 누나들한테 뽀로로~일러서는 큰형님께서 당장 전화를 하셨다.

임신 초기도 아닌데 뭔 몸을 그리 사리냐며..힘든 일 안 시켜 먹을테니 꼭 내려와라.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시아버지 생신때 안오면 되겠냐..


예~ 가야지요 며느리가 뭔 힘이 있것습니까 오라면 오고 까라면 까야죠.

당신들은 자기네 아버지 입원했을 때도 안왔으면서...친자식들이 말이야!


두통이 너무 심해서 산부인과에 들렀다 갔다.

의사선생님께서는 너무 심하면 타이레놀 정도는 먹어도 된다고 하셔서 1알을 꿀꺽 삼키고 시댁으로 출발했다.

온갖 비린 음식과 노린내 나는 육고기 파티였다

(임산부 기준에서 말씀드린겁니다)

입덧할 시기도 지났건만 속이 메쓰꺼워서 부엌에 있을 수가 없었다.

코를 틀어막고 냄새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음식을 하는

내 모습이 형님들 눈에는 꼴사나워 보였나보다

올케는 아직도 입덧을 하나봐? 가시 박힌 말들이 쏟아져 나왔고 타이레놀 따위로는 막아낼 수 없는 두통과 고통이 밀려왔다.

저녁상을 대충 마무리짓고 집으로 향했다.

내 뒷담화를 얼마나 하셨을지 관심도 없지만 귀는 심히 간지러웠고 그러거나 말거나

천근만근인 몸을 누여 내내 잠 잤다.

엄마가 힘든 걸 알아서 그랬는지 튼튼이가 잠잠했다.


너도 많이 힘들었구나 고생많았다 내 아들! 배를 쓰담쓰담 해줬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튼튼이의 태동이 느껴지질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산부인과로 향했고

.

.

.

그렇게 엄마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듯

튼튼이의 심장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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