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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3일 차

by 라원

3일 차, 충남 충주에서 경북 문경까지 걷는 여정이었다.

이 코스로 짠 이유 중에 하나가 문경새재를 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는 2일 차 때 수안보온천역까지 갔어야 했는데,

늦잠 이슈로 3일 차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가는 길에 건국대학교 캠퍼스를 가로질러 갔다.

대학 캠퍼스가 주는 싱그러운 감성을 느끼며 즐겁게 떠났다.


계속 가다 보니 수안보까지 도착했다. 드디어 문경새재 입구까지 도착한 것이다.


사실, 문경새재가 예전에 선비들이 한양으로 시험 치러 가기 위해 꼭 넘어야 했던 산이었다는 사실만 알고 갔다.

그리고 처음 마주친 산길이었기에 좀 쫄았다. 엄청 힘들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근데 뭐든 마주해 보면 별 거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환경에서든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게 바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이틀 차 저녁을 편의점 음식으로 거하게 때웠더니 아침부터 속이 니글거렸다.

그래서 뭐 맛깔난 거 먹지 고민하다가 너무 배고파져서 그냥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왔다.

살면서 처음 먹어보는 묵밥이었다.

평소에 도토리묵 러버로서 맛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름에 살짝 이질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시도해 보자는 마음으로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미친 비주얼의 묵밥이 나왔다.


당시 갈증도 엄청났었고, 속은 니글거리고, 그냥 여러므로 묵밥이 내게 제격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이 맛을 잊지 못한다.


당시 너무 맛있다며 감탄을 자아냈더니

사장님께서 육수랑 밥도 리필해 주셨다 ㅋㅋㅋㅋ


사장님께 받은 응원의 메모.

언젠간 또 한 번 다시 가고 싶은 맛집이다.


직접 육수를 내셔서 그런지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문경새재 맛집리스트 저장!



그렇게 밥 먹고 쭉 가다 보니

조령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여기가 문경새재의 시작점이었다.


어떤 모임에서 오신 분들과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그분들께서도 나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으시다고 사진 같이 찍자고 하셨다.


칭찬도, 응원도, 위안도 얻었다.

응원의 메모도 받았다.

부부 동반 모임 같았는데, 너무 좋아 보이셨다.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나중에 꼭 성공해서 부모님과 좋은 곳 많이 다녀야지.


이걸 보고 계신 어무니 아부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호강시켜 드리겠습니다 꼭

문경새재 제3관문을 통과했다.

처음엔 뭔지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보통 사람들은 1,2,3 관문 순으로 등산하고 내려가는 거였다.

나는 산을 넘어가는 거니까 3,2,1 순으로 내려갔다.


산길이 오히려 편했다.

이틀 동안 계속 아스팔트길을 걸으니까 발도 너무 뜨겁고,

햇빛을 직빵으로 맞으니 열기에 지쳤었는데

나무그늘 덕에 오히려 더 행복하게 산행을 즐겼던 것 같다.


사실 나는 평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재미없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그냥 평지 러닝보다 트레일러닝을 좋아한다.(산악뜀걸음 하던 시절...)


이런 내 모습을 돌아보니 인생을 대하는 태도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평지보다는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즐기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누군가는 오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냥 나는 그렇다. 그게 내 가치관이다.


한번 사는 거 기왕이면 재밌게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2 관문 지나고 보이는 계곡에 잠시 들어갔다.

입수는 부산에서 하면서 짜릿함을 느낄지, 아니면 지금을 즐길지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했다.


내가 언제 또 여기를 올 지 모르는 거고,

일단 지금 안 들어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나마 앉아있었다.


저렇게 바지까지 다 젖었는데도 5분이면 다 말랐다.

제1관문까지 통과했다.

한 가족분들께서 사진을 찍고 계시는데, 다 같이 찍지 못해서 아쉬워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말 걸어서 찍어드리겠다고 했다. ㅎㅎ


혼자 와서 이런 식으로 말 걸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원래 완전 대문자 E였는데, 사회생활을 하며 e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렇게 국토대장정 하면서 다시 나의 본연의 모습을 끄집어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문경새재를 넘어 다시 평지로 내려오니 너무 뜨거웠다.

갑자기 에너지가 쪽쪽 빨리는 느낌이었다.


편의점에서 양갱이랑 프로틴 사서 먹으면서 가고 있는데, 건너편 평상에 앉아 계시던 한 할아버지께서 이쪽으로 와서 쉬었다 가라며 손짓을 해주셨다.

할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손녀분께서 나와 동갑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 땡볕에 걸어 다니는 게 걱정되셨던 것 같다.

이 더위에 왜 걸어가느냐고, 차 타고 가야지.


나에게 끝까지 존댓말을 하셨다.

보통 어르신들께서는 친근하게 불러주시곤 하는데, 뭐랄까,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어째서인지 지금 이 할아버님과 찍은 사진을 보면 뭔가 울컥한다. 왜일까?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눈빛에 선함이 가득하셨던 분이었다.


자리를 나서서 가는 길에 옥수수도 받았다.

배가 고팠던지라 옥수수를 들고 가면서 근처 그늘로 갔다.


앉은자리에서 옥수수 세 개를 다 먹고 다음은 어디까지 가서 쉴지 경로 체크를 하고 있었는데,

팔로워분께서 지나가는 길에 쿨링패치와 에너지젤을 나누어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문경에서 라이딩하고 계셨는데 내 인스타 스토리를 보고 근방인 걸 알게 됐다고 하셨다.

설마 볼 수 있을까 했는데 내가 떡하니 앉아있었다고 ㅋㅋㅋㅋ


누군가 나를 알아봐 준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 여정은 사실 혼자가 아님을 느꼈다.


더 가서 한 편의점에 들어갔다.

아이스크림만 먹으려다가 콘칩까지 먹고 빼빼로 두 통까지 받았다 ㅋㅋㅋㅋㅋ


쉬면서 사장님이랑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도 하고... 짧지만 깊은 대화였다.

사장님께도 응원 메시지 받았다!

"인생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소중한 경험이 될 멋진 여정을 응원합니다. 파이팅!"

아이스크림이 원쁠원이길래 하나는 편의점 안에서 먹고, 하나는 가면서 먹었다.

미친 햇빛 때문에 나온 지 5분 만에 다 녹아버렸다.

마지막에는 그냥 커피우유 마신 것 같다 ㅋㅋㅋㅋ!



계속 아스팔트 길을 걷다 보니 더위를 먹은 걸까,

저 멀리 보이는 카페 입간판이 "카페 소똥"으로 보였다.

(죄송해요 사장님 ㅎㅎ)

마침 화장실이 가고 싶었던 터라 조심스래 들어가 봤다.


넓은 정원이 있는 예쁜 카페였다. 부부 사장님께서 운영하고 계셨다.

알고 보니 오늘이 휴일이었는데, 잠시 가게에 나와 계신 거였다.

오늘 영업 안 한다고 말씀하시려다 내 옷차림을 보시고는 "잠시 쉴 곳이 필요하세요?"라며 친절하게 맞이해 주셨다.

나는 안 쉬어도 되는데 화장실 잠시 써도 되겠냐고 여쭤봤더니 너무나도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감사 인사 드리고 나가려고 하는데, 남자 사장님께서 수박과 식혜를 건네주며 응원해 주셨다.

어떻게 처음 본 사람한테 이렇게 호의적으로 대해주실 수 있으신지, 너무나도 감사했다.


내 최애 과일이 수박이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수박 한 통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좋아한다.

저 당시 목도 너무 마르고, 달달한 게 당겼는데 정말 내겐 가뭄에 단비처럼 느껴졌다.


정말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어떻게 이렇게 나를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들을 잘 만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너무 감사합니다!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런 정취

고요하고 행복하다.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은 알록달록한 세상들

너무나도 소중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당시 일요일이어서 식당가가 다 문을 일찍 닫거나 영업을 하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오히려 평일 중 하루를 쉬고 주말은 무조건 하는데,,,

이것도 시골과 서울의 차이점이구나 싶었다.


일단 빈손으로 점촌역 주변으로 왔다.

근처 숙소에서 시켜 먹으려고 했는데

배달가능 지역이 아니었다..!!


3학년 생도 때 백령도 가서 본 "배달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 문구를 또 볼 줄이야..

신기하면서도 재밌었다.


결국 다 씻고 나서 아픈 발을 이끌고 숙소 바로 밑에 있는 편의점에서 오늘 저녁도 해결했다.

3일 차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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