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따라 아침에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왜 아직 4일 차야? 체감상 내일이면 부산에 도착해야 할 것 같은데.
하루에 60km씩 움직이는 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
아니, 가을에는 아닐지도. 이 땡볕에는 진짜 미친 짓임이 분명했다.
항상 이때까지 최단거리 경로로 다녔는데,
문경에서 구미까지 최단거리로 가려면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도로로 가야 했다.
경험상 도로로 가면 쉬지도 못하고,
뜨겁기는 미치도록 뜨겁고,
위험하기도 한데 그 길로 최소 4시간은 가야 했다.
그럴 자신이 없어서, 조금 더 둘러가더라도 상주를 찍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문경을 벗어나니 상주였다.
혼자 다니니까 나를 찍고 싶어도 셀카로밖에 못 찍어서,
저렇게 가다가 거울 보이면 몇 장씩 기록했다.
어제저녁도 편의점 음식으로 배 채우고, 아침도 제대로 안 먹고 나왔는데
또 덥기는 너무 더웠다. 아침 5시 반인데도 30도였다.
컨디션도 당연히 첫날 같지 않았고,
발 상태는 점점 심각해져서 신발 신는 것조차도 너무 아팠다.
이런 모든 내 상황과
남은 3일은 또 어떻게 가야 하나 막막해서 혼자 구시렁구시렁 걸으면서 가고 있었는데,
한 트럭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마치 방금까지 툴툴거리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머리가 띵했다.
'아, 그래. 내가 이걸 왜 하겠다고 했었는지 처음을 생각해 보자.
내 한계를 도전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했던 거고, 이건 당연한 과정 중 하나인데 왜 찡찡거렸지?
지금 이 건강한 두 다리를 가지고, 이런 도전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겐 엄청난 기회이자 행운이 아닌가?'
초심을 잃었던 나를 발견하고 부끄러워졌다.
어제 배달시켜 먹고 싶었는데 배달 지역 아니어서 배고프다고 찡찡거렸던 것도,
이 순간마저 즐기지 못하고 덥다고 찡찡거리고 있는 것도.
생각해 보면 내가 굶지 않고 편의점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저 문구 하나가 내게는 큰 깨달음을 줬다.
그래서 마음을 새로 고쳐먹고 오감을 갈아 끼웠더니
모든 세상이 예뻐 보였다.
길 가에 가다가 핀 꽃도, 어쩜 저런 색을 띠고 있을까
서울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별생각 없이 지나쳤을 풍경들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스스로도 생기가 돋아남이 느껴졌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서 상주에 도착했다.
써브웨이를 먹을지, 김밥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근처에 문을 연 김밥집이 없어서 그냥 샌드위치 먹기로 했다.
폴드포크 바비큐 콤보 메뉴가 할인행사 중이어서 이걸로 먹었다.
원래는 써브웨이 먹을 때 무조건 빵 파달라고 하고 소스는 소금후추에 가끔 스위트어니언 뿌리는데,,
이날만큼은 빵도 그대로, 소스도 스모크바비큐에 랜치로 뿌렸다 ㅋㅋㅋㅋㅋ
나름의 일탈(?) 소확행(?) 뭐 어쨌든 맛있었다!
서브웨이 들어갈 때 가방에 빨래집게로 양말 한 켤레를 고정시켜 놓고 갔는데,
여기서 한 짝을 잃어버렸다.
이걸 치우신 알바생 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죄송합니다 ㅠㅠ 깨끗한 양말이었어요! ㅠㅠ
밥 먹고 상주를 벗어나 선산을 향해 갔다.
사이클 훈련도 하고 계셨다.
이 땡볕에 나만 고생하는 건 아니구나 싶어서 위안도 됐다.
나는 그냥 걷기만 하면 되지만,
이분들은 이 더위에서 체력적인 훈련을 하고 계신 거니까 얼마나 더 힘들까 싶었다.
그리고 이런 건 매일 하실 테니,,
여러므로 존경심이 들었고 자극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자극이 팍 증발해 버리게 만들 수준의 태양열로 인해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정말 갑자기였다.
몸에 힘이 안 들어가고, 지금 쉬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정신력이 약해져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걸어가다가 근처에 마을회관이 있길래 그까지 열심히 갔다.
그러나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회관 건물이 두 채가 있었는데,
한 곳은 안 쓰시는 곳 같았다. 문을 열자마자 먼지가 폴폴 날렸고, 바닥에는 바퀴벌레를 비롯한 각종 벌레들의 사체가 있었다.
다른 한 곳에서 쉬려고 들어갔는데, 한 할머님께서 소파에 누워 주무시고 계셨다.
할머님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여기서 쉬길 포기하고 그냥 다시 걸어가기로 했다.
얼마 못 가 진짜 어지러워서 발을 질질 끌면서 가고 있었는데,
이런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한 기사식당 사장님께서 말을 걸어 주셨다.
"안에 시원한 음료수 있는데 먹고 가요"
그 말을 듣자마자 너무 반가워서 감사인사를 몇 번이나 드리고 들어가서 벌컥벌컥 마셨다.
와, 정말 살 것 같았다.
가방 안에 물이 있었는데 몇 시간 동안 걸으니 물도 미지근을 넘어 따뜻해져서 마시기가 싫었는데
얼음이 동동 띄워져 있는 달달한 음료수라니..!!
갑자기 어지러웠던 게 괜찮아지고 몸에 에너지가 다시 충전됐다.
뭐가 문제였던 걸까??
예쁜 자연을 보면서 걸었다.
푸른 하늘과 생동감 넘치는 초록 잔디의 조화가 너무 예뻤다.
대구?? 대구???!?!?!
대구가 다 와간다니.. 말도 안 된다.
오늘 하루를 시작할 때는 어느 세월에 가나 막막했는데,
막상 하루가 끝나가니 진짜 얼마 안 남았구나 싶었다.
지인분께 받은 CU 기프티콘으로 단백질 하나 마셨다.
제일 좋아하는 편의점 단백질 = 테이크핏 군고구마
투쁠원 하길래 하나는 마시고 두 개는 키핑 해놨다 ㅎㅎ
알뜰한 소비!
국토대장정 한다고 하니까 주변 지인들에게도 선물을 많이 받았다.
편의점 쿠폰, 음료 쿠폰, 카페 쿠폰 등등...
다들 너무 감사합니다!
또 조금 더 가서는 목이 너무 말라서 메가커피에 갔다.
이것도 육사 동기가 준 기프티콘으로 갔다. ㅎㅎ
메가커피 최애 메뉴인 헛개리카노를 마셨다.
목이 너무 말랐기에 메가헛개리카노로 시켰는데도 5분 만에 다 마셨다!
사실 얼마 못 쉬다가 가는 이유는,
오늘 디엠으로 한 작가님께서 연락을 주셨기 때문이다.
구미에서 스냅사진 촬영하고 계시는 분이셨는데, 나를 기록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심지어 너무 감사하게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와주시겠다고 하셨다.
태어나서 처음 찍어보는 스냅사진이라, 조금 긴장하기도 했지만 작가님께서 완전 열과 성을 다해서 찍어주셔서 덜 어색하게 나온 것 같다!
몇 장 더 있긴 한데, 이게 내 최애 사진이다!
뭔가 순딩하게 나와서 그런가,, ㅎㅎ 맘에 든다.
나중에 또 스냅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지금처럼 찍지 못하지 않을까?
이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내 표정에서 행복함이 보인다.
촬영지도 예뻤고, 이 순간을 기록해 주시는 작가님께도 너무 감사했고, 많은 분들께 응원을 받으며 4일 차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사실도 너무 행복하고 감개무량했기 때문인듯하다.
작가님께도 메모를 받았다.
"여름 날씨보다 뜨거운 열정! 응원합니다. 파이팅!"
그런데... 즐거움도 잠시,
종아리가 따가우면서도 간지럽길래 봤더니 저렇게 됐다.
아까 사진 찍을 때 잔디 위에 앉아서 풀독이 오른 것 같다.
1일 차에도 풀숲을 헤쳐 다니다가 저렇게 빨갛게 올라왔는데, 이번에도 갑자기 이랬다.
얼른 숙소 가서 씻고 알로에 발라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내 본가는 대구다.
도착지인 구미와 차로 30분 거리다.
내가 오늘 구미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께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
아버지를 19시에 뵙기로 했는데, 사진을 찍고 나니 19시가 다 돼갔다.
그래서 논밭을 가로질러 열심히 뛰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숙소 근처였다는 것!
이 고생 중에 아버지를 뵐 생각에 벌써 설렜다.
무슨 얘기를 해드려야 좋아하실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갔다.
숙소 도착해서 씻고,
20시가 넘어서야 저녁을 먹었다.
아버지께서는 더 맛있는 걸 먹자고 하셨지만,
나는 이때 족발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솔직히 정말 피곤했고, 다리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아버지랑 수다 떠니까 힘들단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이게 사랑의 힘인가 ㅎㅎ
4일 동안 있었던 일들, 내가 받은 도움들을 말씀드리며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오히려 더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알아주는 딸바보이시기에... 나를 걱정하시는 마음의 크기는 내가 감히 알 수 없다.
그래도 씩씩한 딸내미 두니까 좋지 아빠?? ㅎㅎ 사랑합니다!
4일 차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