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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5일 차

by 라원

5일 차, 경북 구미에서 대구까지의 여정이다.

5일차는 없던 힘도 막 생겼다.


4일차 저녁에 아버지랑 같이 맛있는 족발을 먹기도 했고,

오늘은 내 본가인 대구가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 친구 두 명을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났다.

다리 상태가 말이 아니다.

처음엔 풀독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햇빛 알러지였던 것.


여름에도 항상 밖에서 뛰어 놀았던 내가, 이렇게 될 수 있는 지는 몰랐다.

머리는 괜찮다고, 계속 가라고 부추기지만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더운 날 12시간씩 밖에 나가있으면 ... 당연한 결과였다.


타기도 정말 많이 탔다.


원래 타도 금방 돌아오는 피부를 갖고 있는 나지만, 진심으로 걱정 됐다.

과연 이게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피부 상태일까.

그렇게 계속 걸어서 공업 단지(?)처럼 생긴 곳을 지나 낙동강이 보였다.


지도 상으로는 낙동강을 따라 걷는다고 나와있어서 안전한 길일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낙동강 바로 위로 지나가는 차도였다.


또 하염없이 갓길로 다녔다. 이젠 위험하다는 생각도 안 들기 시작했다.

대구 표지판이 보인다.

'45km? 생각보다 가깝네' ->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 몰랐다.. ㅎㅎ


그리고 이어서 보이는 칠곡 표지판!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칠곡에 있었다.

그래서 그 때를 회상하며 차도를 걸어갔다.


친숙한 단어들이 나오니까 반갑기도 하고 힘도 났다.

나는 최단거리로 최대한 빨리 가는 걸 목표로 삼았기에, 계속해서 갓길로 다니고 있다.


솔직히? 진짜 재미없다. 그냥 차와 아스팔트밖에 안 보인다.

가끔 가다가 동물 사체 정도.

그리고 가끔 가다가 진짜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도파민 도는 정도.


내가 온전히 의지하는 건 내 가방에 달고 온 JBL 스피커가 다다.

이거 없었으면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을 것 같다.

(1일차에 포기했을 수도)

계속 걷다보니 드디어 서대구역이 보였다.

대구 20년 살면서 이 쪽으로 와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오다니

이것도 대단한 경험이다 싶었다.



오늘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름의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오늘은 친구 두 명을 만나는데, 첫 번째 약속장소까지 가야하는 시간이 있어서 타임어택을 해야했다.

그래서 퍼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조현진이다.

내가 중학교 때 동갑들보다 더 친하게 지냈던 동생인데,

같이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 사람이다.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가서도 종종 만나고,

나 자퇴하고 독서실 하루종일 박혀있을 때 매일 현진이 데리고 가서 같이 밥 먹고 공부하고 그랬다.

우리가 만나면 아직까지도 그 때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맨날 새벽 4시에 데리러 와서 공부하자고 했던 게 지금 생각해도 미친 짓이긴 하다.


현진이는 재수를 해서 간호사관학교를 갔다.


한 편으로는 내가 육사에 계속 있었으면, 현진이한테 힘이 되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 응원해주고 있다.

현진이랑, 현진이 어머니랑 같이 전원돈까스에 갔다.

전원돈까스 유명하댔는데, 난 대구 토박이 20년 생활동안 한 번도 안 먹어봤다.

먹어보니까 맛있네!

난 곱배기로 시켜주셨다. 그리고 다 먹음


이렇게 먹고 빙수까지 먹으러 왔다.

달달한 디저트까지 해치우고 나니까 진짜 살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먹는 보급과는 아주 다른 양질의 것들을 섭취했다.


먹는 행복이 이렇게 크다니. 다이어트는 못 하겠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


그리고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이번 약속은 용석이었다.

용석이는 장난끼 넘치고 엉뚱한 내 중학교 친구다.

+ 당시 기준으로 전역한지 얼마 안 됐었음


만나자마자 프로틴 주는 센스,, 완전 힘이 났다!

용석이랑 가창까지 같이 걸어갔다. 대략 8km를 같이 신천을 따라 걸었다.

힘이 남아 돌았다. 50km 걸은 상태였는데도 이전과 달랐다.

이게 바로 사람의 힘인가 싶었다.


같이 이야기하면서 걸으니까 땡볕도 덥지 않게 느껴졌고,

시간도 엄청 빨리 갔다.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구나!

가창에 도착해서 용석이가 수박이랑 파워에이드 사줬다.

그리고 어떤 다리 밑에서 수박 노상깠다.


진짜 청춘이구나 싶었다.

이 순간이 너무 소중했고 재밌었다.


내 최애 과일이 수박인데,

이때까지 먹었던 어떤 수박보다도 달았다.

고생하고 먹으면 돌도 맛있을 것 같은데, 수박이라서 더 그런 듯



오늘 왜 가창까지 왔냐 하면,

할머니 댁에서 잘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국토대장정을 시작할 때 가족에게 말하지 않았다.


무조건 말릴 것 같았기 때문에.

걱정하실 것 같았기 때문에.


근데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내가 숏츠를 유튜브에 올렸던 것..!!


출발하기 전에 올린 쇼츠를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보셨다.

할머니.png
할아버지.png
댓글까지 다심 ㅠㅠ

예상 외의 반응이었다.

무조건 말리실 줄 알았는데 완주를 응원해주셨다.

무조건적인 내 편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뭐 어쨌든, 알게 되시고 말씀은 안 하셨지만 엄청 걱정하고 계실 걸 알았다.

그래서 완전 밝은 모습으로 찾아뵙고 할머니 댁에서 자기로 했다.

매일 차 타고 다니던 가창 댐을 걸어갔다.


걸어보니 오히려 차 탈 때가 더 길게 느껴졌다.

걸으니까 오히려 재밌어서 짧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고?


열심히 걸어서 드디어 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할머니께서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시길래 바로 양념게장이 떠올랐다.

여담이지만 난 양념게장 있으면 밥 세 공기는 먹는다.


그래서 게장과 소고기를 엄청 많이 먹고 쉬었다.


5일차가 끝난 몸 상태.

진짜 최악이었다.


일단 피부는 점점 심해졌다.

아침보다 더 빨개지고 오돌토돌한 것들이 올라왔다.

근데 뭣도 모르고 그냥 풀독 연고 바름..ㅎㅎ 플라시보 효과로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몸에 열감이 있었다.


사실 난 일사병에 걸린 적 있었다.

중학교 때, 땡볕에서 하루종일 뛰어다녀서 그랬다.


살짝 그 때와 비슷하게 온 몸에 열감이 돌고 머리가 무거웠다.

밥 먹고 나른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익숙한 곳에 와서 그런지 마음도 약해졌고

내일 내가 과연 갈 수 있을까, 그냥 여기서 멈출까 정말 많이 고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약해졌고,

그의 연장선으로 해야할 이유보다 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아낸 거다.


그렇게 이 상황과 나에 대한 의구심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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