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6일 차

by 라원

6일 차, 대구에서 밀양까지의 여정이다.


어제는 할머니 댁에서 잤다.

어제는 오늘 걸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또 막상 걸으니 걸어진다. 어제 먹고 싶은 것들을 원 없이 먹었어서 그런가?

하지만 몸 상태가 안 좋긴 안 좋았다.

이제 더운 건 좀 적응이 됐는데, 종아리와 발바닥이 말썽이었다.

진짜 망가져가는 게 체감됐음...!


그래도 할머니께서 샌드위치라도 먹으라고 손에 쥐어주셨다 ㅎㅎ

사랑의 힘인가, 그걸 먹으니 진짜 힘이 났다.



걷고 있는 매일을 스레드에 기록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져줬다!


그중 한 분이 가창에서 가게를 하고 계시는데,

앞에 지나갈 일 있으면 들르라고 댓글 달아주셨다.

마침 지나가다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어? 저긴가?'


아침 7시도 안 된 이른 시간이라 당연히 안 계실 줄 알고 건물 외관만 기념으로 사진 찍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어떻게 나를 알아보시고 안에서 손을 흔들고 계시는 거다!

너무 신기하고, 반가웠다.

사장님과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고향친구를 본 것 마냥 반가웠고,

짧은 시간 이야기를 했지만 서로 내적 친밀감이 있어서 그런지 편해졌다.


사장님께서 참외와 커피도 주시고,

정성스레 응원의 메모도 남겨주셨다.


아직 세상은 따뜻하구나! 나중에 대구 가면 한 번 다시 찾아뵈어야겠다.

그렇게 먼 길을 계속 걸어서 팔조령이라는 고개에 들어섰다.

(팔조령은 가창에서 청도까지 가는 길에 넘어야 하는 고개다.)

땡볕에 걷는 건 힘들다. → 모두가 아는 사실

하지만 그늘도 힘들다. → 왜?


그 이유는 날벌레다. 사람만 땡볕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날벌레들도 싫어한다.

그래서 그늘에 가면 날벌레가 눈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어간다.


벌레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안 그래도 더운데 겨우 더위 피해서 간 그늘에서 짜증 나게 하니까...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시원해서 좋긴 했음)

팔조령 정상에 도착했다.

이 맛에 산 타는 거지! 내려다보는 초록 뷰는 안 예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산이 너무 좋다. 이런 풍경을 보면 행복하다.

이런 풍경을 한 번 보면 다시 또 갈 힘이 난다.

정상에 있던 고양이

정상에 있던 정자 밑에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며칠째 굶었는지 앙상했다.

그래서 아침에 할머니께 받은 샌드위치 나눠주고 왔다!

내려가는 길에 자전거 타고 올라오시는 분을 뵀다.

(여기가 의외로 자전거 성지인가 보다.)


파이팅 하시라고 인사드렸더니

나도 응원받았다 ㅎㅎ


스포츠가 이래서 좋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서로 응원하는 마음을 표현하거나 모르는 사람과 인사조차 하지 않지만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람들끼리는 그렇게 한다.

이게 스포츠 정신인가 보다!


한국인의 정도 정이지만,

나는 이런 스포츠 정신이 좋아서 평생 이렇게 살아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찌어찌하며 팔조령을 넘어 내려오니 청도였다.

가장 먼저 보인 큰 건물은

“한국 코미디 타운”이었다.

23년 살면서 처음 들어본다.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거기엔 유재석 씨(?)도 계셨다.

계속 걸어 쉬기 위해 군자정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여긴 또 사진가들에게 핫한 장소인가 보다.

사진가들이 엄청나게 무거운 카메라들을 들고

찰나의 순간을 찍기 위해 땡볕에 서 계셨다.


그런 분들 사이로 내가 들어갔다.

그러자 한 선생님께서 다가오시며 말을 거셨다.

“국토종주 하고 계세요?”


그렇게 대화를 트며 이야기하다가,

내가 가려는 목적지까지 가기 편한 길을 알려주셨다.

알고 보니 경찰관이셨다.


발에 물집이 생기지 않는 법 등의 걷는 팁도 많이 알려주셨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뵙고싶다!
오늘의 점심

청도역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솥에 들렀다.

원래 같으면 칼로리 걱정 때문에 제일 작은 거 시키고, 현미밥으로 바꾸고, 소스도 반씩만 넣을 텐데


제일 큰 거에 소스도 다 넣었다.

이렇게 먹어도 되잖아 솔직히?


거기에 팔로워 분께서 보내주신 깊티로 포카리까지 사서 갔다.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청도역을 지나갔다.

이 외에도 나를 본 사람들이 꽤 많다.

난 은근 관종인가 보다. 관심받으니까 더 즐겁게 걷게 됐다.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22.

심심해지고 지루해질 때쯤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고,

친구가 재밌는 이야기 풀어줘서 거의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갔다.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래서 다음에 한 번 더 이런 도전을 하게 된다면,

꼭 누군가와 같이 가야지 생각했다.

힘듦의 절반은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재밌게 걷다 보니 밀양까지 20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어제 걱정을 많이 하셨나 보다.

(근데 걱정하실 만도 함. 어제 상태가 누가 봐도 메롱 이었으니까)


내가 청도라고 말씀드리자, 시원한 빙수 사주시겠다고 한 시간 가량을 운전해서 와주셨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의도치 않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런 추억도 남길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2-30분가량 앉아있었는데,

제대로 충전이 됐다. 사랑의 힘이다 정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했던 두 번의 자퇴 모두 반대하셨다.

하지만 막상 하고 나니,

지금은 누구보다도 나를 응원해 주는 아주 든든한 지원군이다.


국토대장정도 처음엔 엄청 걱정하셨겠지만,

내가 미리 말씀드리면 절대 반대하실 것 같아서

출발하고 유튜브로 소식을 전해드렸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도움을 받고 있다.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33.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즐거운 수다타임을 마무리 짓고,

바이바이 했다.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뭔가 울컥하기도 했다.

나와의 30분을 위해 왕복 두 시간을 운전해서 와주시다니.

정말 효도해야겠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걷다 보니 닭장도 나왔다.


육사 2학년 때의 유격 생식주가 생각났다.

정말 어디 다른 데서는 잘 못해볼 경험이었다.


닭 목 잡고 비틀어서 죽이고,

가죽 벗기고,

내장 빼서

반합에 끓여 먹었다.


처음에 조교님의 시범에는 너무 충격받아서 눈물이 찔끔 났는데,

막상 해보니까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나의 이중성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밀양강도 지나서

어떤 문도 지났다.


사실 마지막에는 폰 배터리도 거의 다 나가고,

(배터리 성능 78 퍼임)

보조배터리도 다 쓰고,

여기서 미아 될까 봐 정말 조마조마하면서 걸었다.


그것보다도 마지막에 끝날 듯 안 끝나는 길이 나를 미치게 했다.

그래서 진짜 정신줄 반쯤 놓고 걸었다.


배터리 2 퍼에 숙소에 겨우 도착했다.

하루 빼고 다 손빨래했다. (하루는 세탁기)

매일 저 옷을 입고 길바닥에 막 앉으니 저렇게 될 수밖에....

늦게 도착해서 주변 식당도 다 닫았다.

멀리만 열었길래...

그냥 근처 편의점에서 짜파게티랑 닭가슴살 사서 먹었다.

(근데 제일 맛있었음)

뭐 어찌어찌 6일 차도 끝났다.

하루만 남았다.


몸상태는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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